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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현, 시청률 무서움 깨닫게 한 '재벌집 막내아들'

입력 2023-01-0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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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판타지오 제공김현, 판타지오 제공
배우 김현(51)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만났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32년 동안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김현. 지난해 최고 흥행작인 JTBC 금토일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이필옥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저 인자한 할머니인 줄 알았던 이필옥은 반전 캐릭터였다. 자신의 남편과 손주의 살인을 사주할 정도로 내면에 큰 야망을 품고 있었다. 연극 무대로 탄탄하게 다져진 연기력은 작품과 만나 시너지를 이뤘고 배우 이성민과의 부부 호흡 역시 흠잡을 곳 없이 안정적이었다. 대중은 '김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관심이 반갑긴 하지만 들뜨지 않으려고 애쓰는, 이 타이밍을 무리하게 이끌고 가려고 하지 않는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평정심이 돋보였다.

-종영 후 결말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나 역시 마지막 회를 봤다. 13부로 내 분량이 끝나서 그 이후 대본을 받았지만 한번 봐서 기억이 잊힌 상태였다. 난 분명 대본을 읽은 사람인데 방송을 보니 되게 새롭게 느껴졌다. 우선 난 원작 웹툰을 읽다가 혼돈이 와서 중간에 멈췄다. 웹툰 자체는 재밌는데 아무래도 드라마와는 차이가 있지 않나. 원작의 끝은 해피엔딩이라고 하더라.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개운 했겠지만 작가님의 창작 욕구가 있을 것이지 않나. 그 부분에 대해 당연히 작가님의 생각을 존중하고 그 속에서 배우들의 역할은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기를 실감하나.

"평소엔 워낙 소탈하게 하고 다니는 스타일이라 사람들이 잘 못 알아본다. 근데 최근에 혼자 카페에 갔는데 사람들이 알아보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더라. 아무래도 마스크를 벗고 음료수를 먹고 그러면 얼굴을 알아보거나 목소리로 알아보는 경우들이 있다. 친한 동료 언니가 보통은 작품을 하면 그냥 축하한다고 문자 보내고 그러는데 전화를 하면서 약간 울더라. '네가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런 게 물밀듯 밀려와서 방송을 보니 눈물이 많이 났다'라고 했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맙더라. 나도 약간 울컥했다. 눈물을 참아내는 게 좀 힘들었다."
김현, 판타지오 제공김현, 판타지오 제공

-본인도 그런 부분에 있어 감회가 새롭겠다.

"관심을 받는 게 좋고 잘 된 것에 연연하지 않을 수 없지만 무슨 일이 있든 일희일비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그냥 '감사합니다' 정도로 표현하지 들뜨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오랫동안 함께해왔던 동료들은 날 통해 뿌듯하게 생각하니까 그런 부분이 부담되면서도 감사하다. 근데 배우는 워낙 롤러코스터 인생이 아닌가. 이전과 똑같이 공연하고 영화든 드라마든 내게 들어온 작품을 잘할 수 있는, 그런 생각만 하고 있다. 무리하게 많은 작품을 하고 싶지는 않다."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오디션을 본 케이스다. 정말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오디션을 안 보는 배우가 되고 싶다. 평소 오디션에 잘 떨어진다. 그런데 '재벌집 막내아들'은 한 번에 합격했다. 정대윤 감독님이 좋게 봐서 뽑아줬는데 중간 이후에 약간 빌런이 되는 역할이니 준비를 잘하면 될 것 같다고 해서 대본을 많이 보고 주변에 연기 잘하는 친구들과 연습하고 의견을 나누곤 했다. 나만 대본을 보면 시야가 좁아질 수 있다. 그래서 대본을 잘 보거나 내가 좋아하는, 존경하는 후배들에게 부탁해서 연습실에 나가 연습했다."

-방송 보면서 아쉬움이 남는 지점이 있었다면.

"감독님이 약간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시대극이라서 분장을 통해 젊다가 나이가 듦을 표현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필옥을 소화할 배우의 나이가 50대가 적합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더니 백발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연히 한다고 했는데 분장 팀과 의논 결과 자체가 흰머리가 많아 계속 길면 굳이 염색하지 않고도 가능할 것 같다고 하더라. 내 머리를 기르라고 해서 1년 반 이상 길렀다. 근데 방송을 보면 볼수록 아예 백발로 염색을 할 걸 그랬다는 약간의 후회가 남는다."

-노역이 어색하지는 않았나.

"연극을 30년 이상 해왔다. 내 키가 작고 그러다 보니 연극에서 노역을 세, 네 번 정도 했었다. 그래서 노역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란 사람을 가져다가 특수 분장이나 의상, 헤어가 50% 이상 만들어주지 않나. 그걸 믿고 갔다. 작품도 이미 나와있고 나만 얹어서 잘하면 되니까 큰 부담은 사실 없었다. 다만 기존 선생님들이 봤을 때 '웃기고 있네' 그럴까 봐 하는 부담이 있었다. 이성민 선배님도 다른 작품에서 이미 노역을 해봤기 때문에 융화되기 쉬웠던 것 같다."

-특수 분장 과정이 굉장히 험난하다고 하더라.

"나야 누워있으니까 안 힘든데 훈장이 하나 생겼다. 실제로 없던 주름살이 생겼다. 이렇게 눈가를 찌푸리고 10시간 정도 있다 보니까 세 군데 정도가 쫙쫙 주름이 갔더라. 이전엔 흐릿하게 있었는데 이젠 진해졌다. 영광스러운 훈장인데 속상하긴 하다. 분장을 지우고 나면 당연히 내 상태가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1년 동안 33~34번 정도 반복한 것 같은데 결국은 그 주름이 자리를 잡더라. 보톡스를 할까 하다가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웃음)"

-시청률(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26.9%)이 대박이 터졌다.

"사실 그전에 작업할 때 좋은 역할을 맡은 적도 없긴 하지만 시청률에 개의치 않는 배우 중 하나였다. 그냥 내 할 일 하고 빠지면 된다는 생각을 가졌다. 근데 이번엔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더라. 시청률이라는 게 어마어마한 힘을 가졌더라. 나란 사람에게 관심을 주는 시선이 많아지기 시작하지 않았나. 그래서 '시청률이 높으면 좋은 거구나!' 그런 걸 느끼기 시작했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처음에 대본 봤을 때부터 대박이 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1부, 2부는 무서워서 본 방송을 못 봤다. 무서웠다. 근데 재방송을 보고 나니 그다음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본 방송 시간에 챙겨봤다."
김현, 판타지오 제공김현, 판타지오 제공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

"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다루지 않나. 주인공이 회귀해서 다시 시작하는 부분 자체도 재밌고 재벌가에 들어가서 전지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웃기더라. 평소 경제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는데 이 작품은 두루두루 다루고 있어 성별을 가리지 않고 좋아할 수 있겠다 싶었다. 기본적으로 웹소설, 웹툰의 마니아층도 있고 배우 송중기, 이성민 선배님 조합이니 되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후배 송중기와 호흡을 맞춰본 소감은.

"지금까지 해왔던 역 중에 가장 큰 것도 있지만 이렇게 반전을 주는 것도 처음이었다. 송중기 씨랑 붙는 신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베테랑 면모를 봤다. 매체 연기에 있어서 나보다 훨씬 더 유연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닌가. 난 방송 쪽 베테랑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감독님한테 내가 어떤 얘기를 하고 싶어도 '나 때문에 괜히 민폐 되는 거 아니야?'란 생각 때문에 아이디어가 있어도 적극적으로 얘기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송중기 씨는 상대 배우가 부드럽게 연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더라. 덕분에 수월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주인공은 확실히 전체를 보면서 연기를 하더라."

-남편 역의 이성민과의 호흡은 어땠나.

"선배님과 2014년 영화 '방황하는 칼날'을 같이 찍은 적이 있다. 난 피의자 엄마 역할로 잠깐 나왔고 선배님은 형사였다. 마주해서 울부짖는 한 신이 있었는데 대본 리딩 첫날 가서 인사를 드리니 '인상 깊었었지!'라고 표현을 해주더라. 감사했다. 영광이었다. 선배님과 함께한 신 중에 대본을 보니 좀 헷갈리는 신이 있었다. 굉장히 중요한 신이었는데 선배님의 산 같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런 모습으로 날 바라보는데 눈물이 나지 않더라. 그래서 촬영하며 그러면 안 되는데 선배님한테 '선배님 저 안 보면 안 돼요?'라고 그랬다. 흔쾌히 웃으면서 그렇게 해줬다. 상대 배우한테 그런 요구를 하는 게 조심스러운 것인데 정말 감사했다."

-본인이 나온 신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는다면.

"마지막에 윤기랑 대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도 이필옥의 참회였을까란 생각이 든다. 감독님이 제일 마지막에 찍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대본을 보면서도 많이 울었는데 현장에서도 그 감정이 나올 수 있도록 집중했다. 이필옥은 자기 자식들을 위해 살인 교사까지 저지르는 희생을 했는데 결국엔 외면받는다. 자기 자식이 아니라 결국엔 윤기에게 위로를 받는다. 그게 좀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실제로도 힘들 때 친한 지인보다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사람과의 이야기에서 봇물이 터지는 순간이 있지 않나. 그런 느낌이었다."

-살인교사 진범이었다.

"약간 천성이 정이 많고 유약한 편이라서 악한 역할을 악하게는 못하는 것 같다. 작가님이 잘 써준 덕분에 그래도 잘 표현이 된 것 같다. 사람들이 빌런이란 사실을 알고 놀라는 모습을 보니 짜릿했다. 주변에서도 '너 아냐?' 혹은 '진영기인가?' 그런 반응을 보였는데 끝까지 얘기하지 않고 그저 흐뭇하게 웃었다."

-중후반 빌런 역할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을 것 같다.

"베테랑 배우들이 너무 많은 작품이지 않았나. 그 배우들 틈에서 누를 끼치지 말아야 하는데, 빌런으로서 역할을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난 상상력이 많은 배우는 아닌 것 같다. 대본에 충실한 스타일이다. 대본에 충실하고 혼자 버거우면 주변 동료들에게 물어보곤 한다. 그런 방식으로 풀어갔던 것 같다."

-빌런 사실이 공개된 후 시청자 반응을 접한 게 있나.

"실시간 드라마 톡을 봤는데 내 욕을 너무 많이 하더라. 아주 난리도 아니더라. 처음엔 어리둥절했는데 3, 4일이 지나니 상처가 됐다. 상처가 돼 배우 김재화 씨에게 물어봤다. 그 친구는 멘털이 강하고 개인적으로도 너무 좋아하는 친구다. 너도 이런 걸로 상처받은 적 있느냐고 물으니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3, 4일 딱 그러고 훌훌 털어버렸다. 그게 맞는 거란 생각을 했다. 욕조차도 관심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매체 연기에 들어온 이후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이 전초전을 해줬다면, 그다음이 '재벌집 막내아들'인 것 같다. 그리고 '시청률이 이렇게 무섭구나!' 이런 걸 느꼈다."
김현, 판타지오 제공김현, 판타지오 제공

-배우로서 오랜 무명의 시간을 겪었다.

"당연히 경제적으로 어렵기도 했지만 감사하고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그때도 나고 지금도 나이지 않나. 그리고 난 아마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또 대학로에 갈 것 같다. 단 지금은 30년이 넘어 관심을 받은 것이니 그때는 15년 만에 관심을 받았으면 좋겠다. 회귀한다면 다시 대학로를 갈 것 같고 그때 지냈던 시간들, 동료들, 작품들 그게 내 역사이기에 그 자체가 되게 감사하다. 나쁜 일도 감사하다."

-1992년 극단 '모시는 사람들'에 들어가면서부터 배우 생활이 시작된 것인가.

"고등학교 때부터 끼를 펼치기 시작했다. 극단에 가서 6개월 정도 일하다가 메이크업 배운다고 2년 정도 그렇게 시간을 보낸 뒤 92년도에 극단에 들어간 것이다. 연극의 경우 1년에 많이 해봐야 4~5편을 하지 못한다. 그럼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데 난 웬만하면 연극과 관련된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노력했다. 30년 넘게 다른 일은 안 한 것 같다. 계속 무대에 섰던 것 같다. 그게 연기 인생의 구력이 되어서 지금 이필옥까지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연기로만 돈을 벌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

"45, 46살 때부터 매체 연기를 시작했다. 연기로만 돈을 벌기 시작한 건 드라마 '아이가 다섯' 때부터인 것 같다. 물꼬를 튼 작품이었다. 영화 '카트' 속 내 대사가 딱 한 마디였는데 감독님이 그걸 보고 캐스팅해줬다. 물론 대단한 분량의 역할은 아니었지만 그때 나는 주말극에 대한 개념자체가 없던 시절이다. 50부작이 돈과 연결되지 못했던 때다. 근데 하다 보니 '50부작이면 내가 일주일에 한 번만 나와도 장난이 아니겠네?'란 생각이 들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친구가 넌 가사 도우미 역할이니 실내에서 찍어 춥지 않고 의상도 하나지 얼마나 좋으냐고, 50부작 중에 절반만 나와도 좋은 거라고 하더라. 그때 당시 경제적으로 빚도 있던 시절이었는데 다 갚았다. 그게 스타트였던 것 같다. 김정규 감독님께 다시금 정말 감사하다."

-배우로서의 목표는.

"아까 말한 것처럼 오디션 안 보는 배우가 되고 싶다. 대사를 외워 가서 덜덜 떨면서 오디션을 보는 게 너무 고통스럽다. 물론 그것조차도 부러워하는 배우들이 있으니까, 더욱 조심스럽고 오디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시간이지만 아무래도 부담감이 엄청나다.(웃음) 내년에도 한 작품을 하더라도 지금처럼 했듯 욕심부리지 않고 지금처럼 똑같이 살 것 같다. 성실하게 작품에 참여하려고 한다."

황소영 엔터뉴스팀 기자 hwang.soyou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사진=판타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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