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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소나무관 안치 뒤 매장"…유해 찾을 수 있을까

입력 2022-10-26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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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왼쪽), 여순 감옥. 〈사진=독립기념관, 안중근의사기념관 제공〉안중근 의사(왼쪽), 여순 감옥. 〈사진=독립기념관, 안중근의사기념관 제공〉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소나무관에 안치돼 뤼순 감옥 공동묘지에 묻혔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국 언론의 옛 보도가 공개됐습니다.

오늘(26일) 국가보훈처는 안 의사의 유해가 하얼빈산 소나무로 만든 관에 안치됐다는 순국 직후 중국 현지 신문 기사를 최초로 발굴해 공개했습니다.


공개한 내용은 중국 만주지역 발행신문인 성경시보(盛京時報)가 안 의사의 순국(1910년 3월 26일) 4일 뒤인 1910년 3월 30일 보도한 기사에 담겼습니다.


기사에는 안 의사의 둘째 동생인 안정근 지사가 유해를 한국으로 옮겨 매장할 수 있도록 요청했으나 일본당국이 거부한 사실과 당시 정황이 상세히 담겨 있었습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유해를 옮겨 매장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안 지사의 요청에 일본 당국은 "유해는 다른 사형수와 동일하게 감옥이 관리하는 사형수 공동묘지에 매장될 것"이라며 거절했습니다.


요청이 거절된 직후 안 지사는 안 의사와 친분이 있던 감옥 관리자에게 부탁했고 감옥 관리자는 고심 끝에 하얼빈의 소나무로 만든 관에 유해를 안치하고 조선 풍속에 따라 관 위에 흰 천을 씌우도록 했습니다.


또한 영구(靈柩·시신을 넣은 관)를 감옥 내의 교회당에 둔 뒤 우덕순 등 3명의 죄수에게 조선 예법에 따라 두 번 절을 하게 해 고별식을 치르도록 허락했습니다.


성경시보, 안중근이 사망한 후의 이야기 1910.3.30. 〈사진=국가보훈처〉성경시보, 안중근이 사망한 후의 이야기 1910.3.30. 〈사진=국가보훈처〉
보훈처는 "이는 안 의사의 유해가 당시 여순감옥 내 공동묘지에 매장됐을 것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해준다"며 "안 의사의 유해가 하얼빈 소나무로 제작된 관에 안치됐다는 내용은 물론 여순감옥이 위치한 중국 만주 현지에서 당시에 이를 보도한 기사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안 의사 유해 발굴을 위해 중국 정부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유해 매장지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관련국 주요 문서보관소 등에 대한 조사를 함께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이번 안 의사의 순국 관련 기사와 관련 자료를 집중적으로 수집함으로써 안 의사의 유해 발굴이 하루라도 더 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편 안 의사는 1910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일본 총리와 조선 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저격해 사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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