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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백령도 마지막 약국도 폐업…"약 사려면 배 타야"

입력 2022-10-14 20:45 수정 2022-10-14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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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당장 약이 필요한데, 구할 수가 없어서 배를 타고 몇 시간 나가야 한다면 어떨까요. 서해 최북단 섬, 백령도에 딱 하나 있던 약국이 얼마 전 문을 닫으면서 섬 주민들의 어려움이 커졌다고 합니다.

밀착카메라 이희령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기자]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4시간 달려 가는 섬, 백령도를 찾았습니다.

서해 가장 북쪽에 있는 섬, 백령도에서 유일하게 영업하던 약국입니다.

안을 보면 불이 꺼져 있고 안에 아무도 없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건강이 악화되어 잠시 휴업한다'고 써 있지만 결국 문을 닫게 됐습니다.

폐업 신고가 접수된 건 지난 8월 말입니다.

[김후람/인천 백령초등학교 5학년 : 할아버지 약 사오려고 왔는데 잠겨 있어서 못 샀어요.]

주민들은 하나같이 걱정입니다.

[김수상/인천 백령도 주민 : 일하다 말고 어디 다치면 연고 하나를 바르더라도 없잖아. 간단한 것도 보건소나 병원으로 가야 하는 거야.]

[정안수/인천 백령도 주민 : (처방받은 약이) 떨어져서 지금 할머니가 고생을 많이 합니다. 육지에 가서 몇 군데 가서 물어봐도 '약 봐선 뭐가 뭔지 모른다'고 해서 몇 번을 못 사고.]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은 육지에 나갈 때마다 약을 사 옵니다.

[정지혜/인천 백령도 주민 : 아기가 먹는 물약은 약국에서만 팔거든요. 그래서 이건 일부러 사서 온 거예요.]

백령도 주민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필요한 약을 급히 구하는 글들이 올라옵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한 공부방엔 비상약이 종류별로 가득합니다.

[이연희/공부방 운영 : 주민들이 다 같이 힘을 모아서 한 아이의 열을 떨어뜨려야 하고, 이런 건 사실 요즘 시대랑도 맞지 않고…불편한 일이죠.]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사장님도 약을 모으고 있습니다.

[공미정/숙박업소 운영 : 상상도 못 했어요. 도시에서는 약국이란 게 쉽게 저희가 갈 수 있는 곳 중 하나잖아요. 대한민국 땅이 맞나…]

백령도에 있는 유일한 종합병원, 백령병원입니다.

섬에 있던 약국이 문을 닫으면서 약이 필요한 주민들은 이곳에 와서 진료를 받고 처방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의약분업 예외지역으로 지정돼 병원에서도 약을 살 수 있지만 절차가 까다롭습니다.

[심효신/인천 백령도 주민 : 딸이 생리통이 심해서 약국을 찾아야 하는데, 병원에 와서 진료받고 처방까지 받아야 한다는 게 굉장히 속상한 일이죠.]

주말에는 보건소도 문을 닫아 약을 구하려면 응급실로 가야 합니다.

편의점 상황은 어떨까.

백령도에 있는 점포 4곳 중 두 곳은 약을 취급하지 않습니다.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만 안전상비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전상비의약품이 진열된 편의점 매대입니다. 지금은 발주한 물건이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수량은 어느 정도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유형으로 묶어 보면 소화제, 감기약 등 4종류뿐입니다.

[최석태/편의점 운영 : 손님들이 급하게 찾는 겔포스(위장약)라든지 빨간약 같은 건 (규정상) 우리가 갖추지 못합니다. 없어서 못 파는 거죠.]

백령도를 비롯해 섬으로만 이뤄진 인천 옹진군엔 약국이 단 세 곳뿐입니다.

세 곳 모두 육지와 다리로 연결된 영흥면에 있고, 배로 들어가야 하는 섬엔 한 곳도 없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 : 사람이 없는데 얼마큼 올지도 모르는데…누군가가 공공적으로 운영하는 약국을 둔다든지 하는, 아직까지는 그런 시스템은 없거든요.]

백령도처럼 약국 또는 병원 등 의료기관이 없거나 두 시설이 1km 이상 떨어진 '의약분업 예외지역'은 읍면 단위 기준으로 전국 1,272곳.

의료 여건이 열악한 도서산간 지역 주민들에게 약국 한 곳도 절실합니다.

[심효신/인천 백령도 주민 : 약국 자체는 기본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주민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지 않습니까. 행정력을 동원해서라도 조치를 취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이 배를 타고 섬을 떠나 약을 구할 겁니다.

어디에 사는지에 따라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의 크기가 달라지는 일 더 이상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 

(VJ : 최효일 / 영상디자인 : 송민지 / 영상그래픽 : 김정은 / 인턴기자 : 박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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