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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들 재료로 표현할 뿐" 견고한 하정우 전성시대(종합)

입력 2022-10-14 07:00 수정 2022-10-14 08:28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액터스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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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액터스 하우스

배우 하정우가 13일 부산 해운대구 KNN타워 KNN시어터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액터스 하우스에 참석했다. 〈사진=JTBC엔터뉴스〉배우 하정우가 13일 부산 해운대구 KNN타워 KNN시어터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액터스 하우스에 참석했다. 〈사진=JTBC엔터뉴스〉

견고하고 탄탄하게 구축한 필모그래피를 바탕으로 건재하게 돌아온 하정우다. 오로지 '배우 하정우' 한 명에만 집중하는 시간. 수 많은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 속, '하정우 전성시대'를 되돌아 보며 쉴 틈 없이 작품 이야기를 쏟아냈다.

하정우가 13일 오후 부산 KNN타워 KNN시어터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BIFF)에서 진행된 액터스 하우스에 참석해 최신작 '수리남'부터 지금의 하정우를 있게 한 필모그래피를 훑으며 작품마다 경험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디테일하게 털어놨다.

액터스 하우스는 한국영화계 아이콘과 같은 최고의 배우들과 관객이 만나 그들의 연기 인생과 철학을 직접 나누는 스페셜 토크 프로그램. 지난해 신설된 후 뜨거운 호응을 얻으면서 올해는 한지민 강동원이 전반부, 하정우 이영애가 후반부 일정을 소화하게 됐다.

영화제에서 선보였던 작품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기존의 관객과의 대화 등과 같은 프로그램과 달리, 액터스 하우스에서는 배우가 생각하는 연기의 의미, 직접 손꼽는 명장면 등을 비롯한 연기 인생 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함을 배가 시킨다.

최근 넷플릭스 '수리남'으로 컴백한 하정우는 충무로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한 동시에 '롤러코스터'(2013) '허삼관'(2015) 등 작품을 연출하기도 한 감독이다. 올해 부국제에 특별히 초청 받은 작품이 없음에도 부산을 방문한 하정우는 "황금의 목요일, 불목에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배우 하정우가 13일 부산 해운대구 KNN타워 KNN시어터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액터스 하우스에 참석했다. 〈사진=JTBC엔터뉴스〉배우 하정우가 13일 부산 해운대구 KNN타워 KNN시어터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액터스 하우스에 참석했다. 〈사진=JTBC엔터뉴스〉
배우 하정우가 13일 부산 해운대구 KNN타워 KNN시어터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액터스 하우스에 참석했다. 〈사진=JTBC엔터뉴스〉배우 하정우가 13일 부산 해운대구 KNN타워 KNN시어터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액터스 하우스에 참석했다. 〈사진=JTBC엔터뉴스〉


-부국제에 오랜만에 방문했다.
"정말 오랜만이다. '용서 받지 못한 자'로 처음 초대를 받아서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영화 활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래서인지 부국제는 나에게 고향 같고 의미 있는 영화제인 것 같다. 처음 왔을 땐 영화제 기간 내내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윤종빈 감독과 내가 '용서 받지 못한 자'로 상을 4개 부문이나 받기도 했고, 기라성 같은 감독님, 배우들, 많은 영화 관계자 선배님들을 눈 앞에서 만날 수 있었다. 꿈만 같은 시간들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최근작 '수리남' 이야기부터 해 보겠다. 강인구 캐릭터는 어떻게 구축했나.
"'수리남'을 6시간 짜리 영화라고 생각했다. 이야기가 방대했고, 그것을 정해진 기간 안에 소화해내야 했다. 영화는 2시간~2시간 30분 안에 이야기를 담는데, 드라마의 다른 점은 6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서사를 떠나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 보다 더 디테일하고 밀도 있게 표현된다. 때문에 가장 걱정했던 지점은 '6시간 동안 지루하면 어쩌나. 과하다고 생각하면 어쩌나'라는 것이었다. 특히 강인구는 전체 서사를 끌고 가는 롤이었기 때문에 3, 4부쯤 캐릭터가 발을 담고 있는 드라마가 오히려 캐릭터로 인해 지루해질 수 있지 않을까 경계하고 더 절제하면서 임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인데, '진짜 실화 맞나' 싶을 정도로 영화 같은 현실을 그렸다.
"어떤 작품을 하든 초반에 중요하게 확인하는 부분이 '이게 말이 되냐'는 것이다. '수리남'도 실제 인물을 모델링한 강인구라는 캐릭터를 보면서 솔직히 너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인간이니까. 요원도 아닌 민간인이기 때문에 그 안에 들어가 '어떻게 고군분투하면서 생존하고 작전을 성공해 냈을까' 싶었다. 근데 실제로 그 분이 그렇게 하셨더라. 도리어 작품에서는 명분과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주기 위해 이 사람이 학창 시절에 유도를 했고, 민간인으로서 어떤 능력치를 쌓았는지 초반 1부를 통해 친절히 보여준다."

-그 동안 아버지 역할을 안 했던 것은 아니지만, 과거보다 나이를 먹기도 했고…. 받아 들이거나 이해하는 입장에 변화가 생겼을 것 같기도 하다.
"'범죄와의 전쟁' 최익현과, '수리남'의 강인구가 그려낸 아버지 상은 윤종빈 감독님의 아버지 상과도 흡사하다고 생각된다. 최민식 선배가 연기한 그것을 봤고, 당시 윤종빈 감독이 어떻게 유년 시절을 보냈고, 아버지와 관계가 어땠는지 듣기도 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내가 아직 미혼이지만(웃음) 아버지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가 됐다. 대리 경험을 한 셈이다."

-하정우의 대표작으로 '터널'(2016)을 빼 놓을 수 없다. 사실상 원맨쇼를 하는 작품인데, 독특한 촬영 방식으로 신선한 재미를 선사했다.
"지나고 보니까 연출자가 개입해 이끌어가는 리얼리티 예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널 안에 카메라를 군데군데 숨겨 놓고 하나의 미션을 던져주고 수행하는 것. 혼자 연기하는 건 '더 테러 라이브'(2013) 'PMC'(2018)와도 앞 뒤로 연관성이 있다. '터널'을 찍을 당시 제일 우려했던 건 '혹시나, 너무나 나를 계속 봐 지루해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감독님도 그런 부분을 생각하고 다양한 촬영을 시도했던 것 아닐까 싶다."

-그야말로 어려운 미션을 수행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현실성 없는 장면을 연기할 때 너무 힘들다. 시나리오가 1부터 100페이지까지 완벽할 수는 없지만 70점만 돼도 촬영은 시작한다. 그 정도면 굉장히 훌륭한 시나리오다. 그리고 30점을 현장에서 채워 나가는 것이다. 근데 끝까지 안 채워지는 날이 있다. 그 땐 굉장히, 굉장히 괴롭다. 특히 '이게 가짜라는 걸 관객들이 알텐데. 말이 안 된다고 느낄텐데'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연기할 때가 제일 어려운 것 같다."

배우 하정우가 13일 부산 해운대구 KNN타워 KNN시어터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액터스 하우스에 참석했다. 〈사진=JTBC엔터뉴스〉배우 하정우가 13일 부산 해운대구 KNN타워 KNN시어터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액터스 하우스에 참석했다. 〈사진=JTBC엔터뉴스〉


배우 하정우가 13일 부산 해운대구 KNN타워 KNN시어터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액터스 하우스에 참석했다. 〈사진=JTBC엔터뉴스〉배우 하정우가 13일 부산 해운대구 KNN타워 KNN시어터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액터스 하우스에 참석했다. 〈사진=JTBC엔터뉴스〉


-'터널'은 원작이 있는 작품이지만, 스토리와 엔딩은 원작과 다르게 구성됐다.
"'스토리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 상업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재미가 없으면 가치가 없다. 사실 원작은 너무 비극이었다. 비극 중에서도 그런 비극이 없었다. 감독님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100분에 가까운 시간을 주인공이 고통만 받다가 끝나는 이 영화를 누가 보고 좋아할까. 여름방학이든 겨울방학이든 추석이든 구정이든 언제 개봉을 하든 좋아할 관객이 있을까. 아파하고 그저 어두컴컴한 이 작품이 상업 영화로 가치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톤앤매너를 조절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안에서도 낭만은 있을 것이고, 인물은 생존 본능이 강하고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멘탈을 잡았을 것이다 .그 안에서 적응하고 살아남으려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 결말은 살아 나왔으니까, 그 안에서 잘 버텼을 것이다' 싶었다. 그 때 참고한 영화는 '캐스트 어웨이'였다. 톰 행크스가 배구공 윌슨과 같이 놀고 뛰어다니고 불 지피고 하는 것이 블랙 코미디이기는 하지만 관객들이 생존 재난 영화에서 보고 싶은 부분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더 테러 라이브'는 비슷하지만 사뭇 다른 상황과 인물이다. 굉장히 바쁜 시기에 출연을 결심했던 작품인데.
"여러 작품을 이야기 하고 있었던 시기, 고(故) 이춘연 대표님께서 찰나의 시간을 딱 파고 드셨다.(웃음) 처음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김병우 감독님의 전작을 봤는데 어려웠다. 괴상하고.(웃음) 근데 '더 테러 라이브' 시나리오를 받아 봤더니 희한하면서도 너무 재미있었다. 마치 어떤 영화의 설계도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주 촘촘히 세밀하게 잘 짜여진 설계도를 보는 느낌. 밀도 있게 한 장 한 장 넘어가는데 출연을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제의를 주신 이춘연 대표님께 너무 너무 너무 감사했다.

그 작품도 한 공간에서 찍어야 했기 때문에 연습을 많이 했다. 김병우 감독님 성격이 낯도 많이 가리고 수줍어하고 표현을 잘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 이경영 선배, 전혜진 선배 다 같이 모여 리허설을 많이 했다. 나는 일주일에 5일 씩 아침에 출근해서 감독님과 이야기를 주고 받고, 그의 숨은 뜻을 알아내려 놀겨햇다.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 사실 감독님들이 그 부분에 대해 쉽게 이야기를 안 한다. 어느 정도 친해져야 '거기에서 사실은~'이라면서 말을 꺼낸다. 그러한 과정에서 캐릭터 포인트를 표현함에 있어 힌트들을 갖게 되는데, 그 시간을 많이 가졌다.

그리고 난 느꼈다. '아, 감독님은 이 역할을 한석규 선배한테 주고 싶었구나. 근데 본인의 뜻을 펼치지 못했고 대세를 따랐구나!' 하하하. 또 손석희 앵커, 선생님 연구를 많이 하셨더라.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속보 방송을 여러 번 봤는데, 생중계니까 대본에 없는 이야기를 해야 했고, 그래서 말이 반복된다. 잘 짜여져 있는 대사들은 아니더라. 그래서 잘 짜여져 있던 대사들을 생중계처럼 함께 바꿔나가기도 했다. 무엇보다 분량이 너무 많아 제작진이 처음엔 프롬프터를 준비해줬는데, 그렇게 하다가는 기계처럼 연기할 것 같아서 통으로 암기했다. 생중계 하는 느낌의 속도, 완급 조절을 위해 준비를 많이 했다."


-나홍진 감독과는 두 작품을 했다. '황해'와 '추격자'. 특히 '황해'의 김구남도 만만치 않은 캐릭터였다.
"좋은 작품에서 내가 그러한 연기를 펼칠 수 있었고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건 감독님들의 취재력과 그것을 만드는 능력과, 편집을 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 테러 라이브'는 김병우 감독님이 5년 동안 썼다. 나홍진 감독님의 '추격자'도 그렇고, '황해'도 마찬가지다. '황해'는 나홍진 감독님이 중국에 가서 직접 관련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를 하고 어마어마한 이야기 보따리를 가져 온 후 시나리오 쓴 작품이다.

"나는 그렇게 만들어진 시나리오를 받고 '김구남은 어떤 인물인가요'라고 물어보면 감독님이 쭉~ 이야기를 해준다. '어떤 남자를 만났는데, 도망 다니는 남자더라. 아내는 한국에 돈을 벌러 갔고' 식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렇게 들은 것 만으로 '아, 어떻게 연기를 해야 되겠구나'라는 감이 첫 번째로 온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보면 정확한 디렉션과 방향성이 나와있다. 나는 완급 조절과 연기적인 재미를 고민하면 된다.

'멋진하루'는 일본 단편 소설이 있었지만, 원작은 사실 남자 캐릭터가 하는 일이 별로 없다. 기능적인 역할 밖에 없었다.근데 우리 영화 속 조병훈이라는 인물은 실제 이윤기 감독님의 절친이다. 감독님이 그 분의 일화들을 이야기 해주셨다. '그 친구가 얼마나 엉뚱하냐면, 어떤 사람이냐면, 어딜 가도 살아남을 사람이다. 무슨 짓을 해도 미움을 받지 않을 사람이다' 감독님의 말을 들으면 들을 수록 그 분에 대해 공감도 되고 이해도 되고, 이야기만 들어도 조병훈이라는 분이 너무 매력적이더라.

그래서 그 땐 정말 아예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분처럼 쿠션 좋고, 이해심 많고, 사람들과 사회성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가 갑자기 와서 이유 없이 얼굴을 쳐도 농담 칠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 싶었다. 현장에 가서도 그런 마음으로 연기를 하니까 뭔가 달라지더라. 난 감독님들의 좋은 재료를 갖고 표현하는 사람이다. 지금의 나와 내가 받은 모든 덕은 감독님들의 공이 크다."

-촬영 난이도가 굉장한 작품이기도 했는데.
"출근 시간은 알았지만 퇴근 시간은 몰랐던 시절이다.(웃음) 지금은 52시간이라는 법적 규정과 제한이 생겼지만 그 땐 아니었다. 그리고 '황해'는 나에게 마지막 필름 영화였다. 아마 기네스북 2위에 올라있을 것이다. 필름 많이 쓴 것으로. 하하. 제일 많이 쓴 영화가 '청연', 2위가 '황해'였다. 공식적으로 210회 차를 찍었고, 날 수로는 11개월을 찍었다. 찍는 동안 변수도 너무 많았고, 사건 사고도 많았고, 심지어는 날씨조차 도와주지 않았다.

조성하 선배와 (김)윤석이 형, 내가 만나는 장면은 8월이었는데, 이례적으로 그 해에 8월 장마가 와서 8월 내내 비가 내렸다. 당시 상황이 버스 차고지라고 하나? 버스가 휴식하는 곳에 막차가 들어와 첫 차가 나가기 전까지만 촬영이 허가됐다.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만 그 장소에서 찍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럼 나는 오후 7, 8시쯤 촬영장에 가서 준비를 한다. 피분장을 했는데 2시간이 걸린다. 특히 나홍진 감독님이 미대를 나와서 피 레이어드에 상당히 예민한 분이다. '옷깃에 피가 묻어 있었다. 몇 방울이 튀어 있었다'는 연결을 계속 맞춘다.

준비를 끝내면 하늘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비를 뿌려 주신다. 새벽 3시까지 버티다가 '오늘 촬영 못한다. 귀가!'라면서 보냈다. 거짓말 안하고 한 달을 그렇게 살았다. 많이 알려졌지만, 연변에서는 출입 금지를 당해 하얼빈이라는 곳에 가서 찍고, 하얼빈에서 기차로 3시간 더 들어가는 지역에서 촬영했다. 그 여정이 총 11개월이었다. 집에서 출 퇴근하는 것은 어불성설, 해외·지방 로케이션을 다니면서 '오늘 찍을 수 있을까?' 걱정하는 것이 태반이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우리는 몰랐는데 그 기간에 나, 윤석이형, 나홍진 감독님을 만난 사람들은 쉽게 말을 걸지 못했다고 하더라.(웃음)"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의 전성 시대' 최형배도 보기 드문 캐릭터로 사랑 받았다.
"촬영 전 실제 조폭을 만났다. 만나서 점심을 먹었다. 일식집에서 먹었는데 그 분이 사줬다.(웃음) '우리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데, 인터뷰를 해주실 수 있냐' 여쭤봤더니 흥미로워 하더라.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해줬다. 그 때 윤종빈 감독님은 옆에서 작품과 캐릭터의 재료로 쓸만한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고, 나는 옆에서 그 분의 행동을 유심히 봤다. 조직에 계신 분들이 더 깍듯하고 예의 있고 반듯하고 잘 차려 입고 그런 인상을 주려고 노력을 하는 것 같더라.

그래서 너무 단순하게 '난 영국 신사가 돼야겠구나' 생각했다. '흐트러짐 없고, 건강하게, 반듯한 느낌으로 연기해야겠다' 싶었다. 늘 반대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추격자' 같은 경우도 캐릭터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지만 '아이 같은 순수함을 어딘가 표현해야겠다' 고심하면서 연기했다. 그럼 원래 모습을 드러낼 때 극대화 될 수 있으니까. 최영배도 연약하고 나약한 부분의 뉘앙스를 주고 싶었다. 결국 최익현(최민식)에게 당해 뒤통수를 맞고 교도소에 끌려지만, 그 이전에 아버지를 통해 최익현을 받아 들이지 않나. 조폭 건달이지만 인간적이고 느슨한 부분을 보여줌으로 입체감을 주고 싶었다."

배우 하정우가 13일 부산 해운대구 KNN타워 KNN시어터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액터스 하우스에 참석했다. 〈사진=JTBC엔터뉴스〉배우 하정우가 13일 부산 해운대구 KNN타워 KNN시어터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액터스 하우스에 참석했다. 〈사진=JTBC엔터뉴스〉


-'군도: 민란의 시대'는 민머리 하정우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중대 시절 연극 '오델로'에서 민머리 스타일링을 했던 하정우를 보고 윤종빈 감독이 아이디어를 얻은 케이스라고 하던데. 윤종빈 감독과는 너무 절친한 사이로 잘 알려져 있지만, 함께 작업하면 어떤가.
"맞다. 연극 '오델로'가 시작이었다. 나에 대한 첫 인상이 윤종빈 감독에게 강렬하게 남아있었던 것 같다. '용서 받지 못한 자'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을 하면서도 ''오델로'와 같은 인물, 캐릭터를 만들어서 영화를 찍으면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를 계속 해왔다. 그러다 '군도'라는 작품이 탄생했다.

윤종빈 감독은 나의 모든 것을 잘 안다. 표현법에 있어서. '아, 진짜 화났네? 진짜 재미있어서 웃네? 지금은 좀 짠하네?'라는 것을 명확하게 안다. 오랜 시간 봐 왔기 때문에 덜 하게 되면 들킨다. 연기를 할 때도 '형 더. 더 해주세요'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면 연기하는 입장에서 되게 신경이 쓰인다. 잘 되는 날이 있지만, 어떤 날은 잘 안 될 때도 있지 않나. 근데 귀신처럼 알아서 끝까지 몰아 부쳐 찍게 한다…. 되게 불편하다. 하하. 친한 사이이고 영화를 찍는 시간보다 사적으로 만난 시간이 더 많지만, 어떤 작품보다 윤종빈 감독과 작업하는 것이 긴장되는 작업 아닐까 싶다."


-두 분이 '용서 받지 못한 자'로 처음 칸 영화제에 갔을 때, '꼭 성공해서 경쟁 부문으로 다시 오겠다'는 약속과 다짐을 했다던데.
"주요 부문으로 초청을 받았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는 것에 의의가 있었다. 칸도 아니고 니스에 2성급 숙소를 잡아 기차로 1시간 20분을 왔다 갔다 했다. 그 땐 스타일리스트 등 스태프들과 함께 갈 수 있는 여력도 안 되니까 나 혼자 바리바리 옷 싸 들고, 비비크림 정도 챙겨서 갔다. 그리고 아침마다 짐 가방을 들고 칸으로 향했다. 그렇게 기차를 타면 겨드랑이가 젖는다.(웃음) 재킷 한 번 갈아입고, 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 짐을 내려 놓고 땀을 식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이다.

당시 현지에 봉준호 감독님의 '괴물' 팀이 계셨고, 최민식 선배님이 계셨다. 거기 붙어 먹으면서 공짜 술과 밥을 얻어 먹었다. 마켓을 위해 영화사에서 오신 분들에게 끼어 다니기도 했다. 행사도 굉장히 많았는데, 그렇게 시간을 떼우다 어느 날 기차를 놓친 것이다. 애프터 파티까지 따라갔다가 새벽 1시 반, 두 시 쯤에 뤼미에르 근처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었다. 그 때 나와 윤 감독 말고 서장원 배우도 함께 있었다.

'비열한 거리'(1973)로 로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로버트 드 니로가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 받았을 때 '꼭 성공해서 이 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 것이다'는 말을 하고 고성방가를 지르고 하지 않았나. 그걸 윤 감독과 내가 이야기 하면서 '나중에 꼭 성공하고 자리 잡아서 제대로 경쟁 부문에 오자. 스태프들도 좀 데리고 오고, 칸 인근에 숙소 잡아서 걸어 다니고 그러자'라고 말했던 추억이 있다.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윤종빈 감독은 '공작'으로 칸에 다시 갔는데, '공작'도 나에게 캐스팅 제의가 왔었던 작품이다. 어떻게든 좋은 추억과 작품을 남기고 싶어서 메인 캐스트는 아니었지만 '뭐라도 좋으니 주셔라'라고 했는데, 대만에서 촬영하는 바람에 스케줄상 내가 가지 못했다."

-최근에는 배우 출신 감독들이 많아졌지만, 일찌감치 메가폰을 잡았던 감독이기도 하지 않나. '수리남'도 공동 제작에 참여했고. 스크린 외 OTT 등 플랫폼이 많아지면서 도전의 창구도 넓어졌는데.
"영화를 사랑하고 좋아하면 그 끝은 결국 영화를 만들게 되는 것 같다. 변화하는 상황에서 더 뚜렷해진 부분이 '더 더욱 즐겁고 재미있고 참신한 영화를 만들어내야겠다'는 것이다. 조금 더 깊어졌으면 좋겠고, 발전 됐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이 내 간절한 마음이다. OTT 플랫폼이든, 극장이든. 코로나 시대 때문에 최근 몇 년 간 극장이 많이 침체돼 있다고 하는데, 기다리다 보면 또 어떤 작품이 나와 환기를 시켜주고,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문화가 다시 뜨거워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근황과 계획은 어떤가. 뉴질랜드로 걷기 예능도 찍으러 다녀 온 것으로 안다.
"최근까지 김성훈 감독과 함께 한 '피랍'이라는 작품을 모로코와 이태리를 오가면서 마쳤다. 실화다. 1987년도를 배경으로 레바논 주재원이 이슬람 무장 단체에 납치되면서, 한국에서는 주재원 대사관님을 구출하기 위해 돈을 들고 들어가고 최종적으로 그 분을 구출해 고국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내가 외교관 역할을 맡았다.

SNS에 사진이 발각되는 바람에 알려졌는데, 뉴질랜드에 가서 예능을 촬영하고 왔다. '걷기 예능'이라고 볼 수 있다. 선택한 이유는 '577 프로젝트'에 대한 향수도 있었고, 걷고, 뛰고, 자전거를 타는 것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결정했다. 뉴질랜드 남섬에 다녀왔다. 나와 주지훈, 샤이니 민호, 여진구 넷이서 뉴질랜드 남섬을 종단하는 이야기다. 1000km를 걷고, 자전거를 타면서 다닌다. 아마도 내년 구정 쯤 8부작 정도로 만나 보실 수 있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곧 '하이재킹' 촬영에 들어가서 올해 하반기는 대전 세트에서 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오랜만에 만난 관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면.
"부국제가 나를 너무나 감사하게 초대해 주셔서 이렇게 만날 수 있게 됐다. 3년 만에 정상 개최되는 부국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과, 여러 분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이 자리에 오게 됐다. 불목에, 황금의 목요일 저녁에 귀한 시간 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반가울 따름이다."

부산=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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