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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면]이래도 괜찮을까? '자유의 여신상' 꺼낸 이란 축구의 분노

입력 2022-09-26 15:55 수정 2022-09-2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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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될까요. 팔에 '자유의 여신상' 문신을 새긴 사진을 올렸습니다.
이래도 괜찮을까요. 찰리 채플린 영화 '위대한 독재자'의 독백 영상을 올렸습니다. 그 안에는 '여러분은 기계도, 가축도 아닙니다. 자유를 위해 싸웁시다'란 내용도 담겨 있죠.
이란 축구 선수 사이야드마네시는 국민들의 시위에 동조하듯, '자유의 여신상' 문신 사진을 올렸습니다.   (사진=사이야드마네시 인스타그램 캡처)이란 축구 선수 사이야드마네시는 국민들의 시위에 동조하듯, '자유의 여신상' 문신 사진을 올렸습니다. (사진=사이야드마네시 인스타그램 캡처)

물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면 누구나 어디서든 올릴 수 있는 사진이고 영상입니다. 그러나 이란이라면 말이 달라집니다. 특히 요즘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란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축구 선수들이 그 주체라면 또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이래도 될지, 이래도 괜찮을지.

이란의 축구 선수 자헤디는 찰리 채플린 영화 '위대한 독재자'의 영상으로 이란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사진=자헤디 인스타그램 캡처)이란의 축구 선수 자헤디는 찰리 채플린 영화 '위대한 독재자'의 영상으로 이란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사진=자헤디 인스타그램 캡처)
축구 선수들도 한두 명이 아닙니다. 이란 축구의 현재와 과거를 상징하는 선수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목소리를 냅니다. 이미 이란의 전설 알리 카리미, 알리 다에이가 나섰고 월드컵을 두 달 앞두고 축구대표팀의 중심인 사르다르 아즈문(레버쿠젠)도 가세했습니다. 아즈문이 참다못해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은 비장합니다.

이란 축구의 상징 아즈문이 올린 글은 삭제됐습니다. 이란 여성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절규가 담겨 있었습니다. (사진=레딧 캡처)이란 축구의 상징 아즈문이 올린 글은 삭제됐습니다. 이란 여성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절규가 담겨 있었습니다. (사진=레딧 캡처)
“축구대표팀 규정상 현재 소집이 끝날 때까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지만 더는 침묵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내가 대표팀에서 잘려나간다면 그것은 이란 여성들에게 머리카락 한 가닥을 바치는 희생이 될 것입니다. 얼마나 쉽게 사람을 죽이는지 당신들 모두가 부끄럽습니다. 이란 여성들을 오래오래 사랑합니다."
(아즈문의 글은 지금은 지워져서 인스타그램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란이 평가전에서 우루과이를 꺾어 파란을 일으켰지만 아즈문은 마냥 환호할 수 없었습니다. 축구를 축구로만 볼 수 없는 시간에 살고 있으니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혹여 그 승리가 지금 이란에서 행해지고 있는 참상과 분노를 덮는 데 쓰일까 봐 걱정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란 여성이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돼 숨졌습니다. 호주 시드니에서도 이란 정부를 향한 규탄이 이어졌습니다. (사진=EPA연합뉴스)이란 여성이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돼 숨졌습니다. 호주 시드니에서도 이란 정부를 향한 규탄이 이어졌습니다. (사진=EPA연합뉴스)
2009년이 떠오릅니다. 당시 우리나라와 치른 최종예선전에서 이란 선수들은 손목에 녹색 밴드를 차고 뛰었습니다. 대통령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차원이었죠. 13년이 흘러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월드컵을 두 달 앞두고. 여성을 억압하는 제도의 철폐, 다름 아닌 자유를 위한 그들만의 신념이 담겨 있습니다.

그만큼 이란의 분노는 곳곳에 퍼지고 있습니다. 스물두 살 여성 마흐나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돼 의문사하자 이란이 들끓고 있죠. 시위가 전국 80여개 도시로 번졌고, 이란 국영 TV 집계 결과 최소 41명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이어집니다.

이란 축구 전설 카리미도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분노로 들끓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동조하며 폭력적 진압을 비판했습니다. (사진=카리미 인스타그램 캡처)  이란 축구 전설 카리미도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분노로 들끓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동조하며 폭력적 진압을 비판했습니다. (사진=카리미 인스타그램 캡처)
페르시아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이란 축구 대표팀도 동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란 정부는 축구를 통해 모두가 하나가 되는 것을 꿈꾸며, 두 달 남은 월드컵에서 특히 미국 잉글랜드 웨일스와 맞서 '이란다움'을 보여주길 바라겠죠. 그러나 지금 이란 선수들의 적은 내부로 향합니다. 이란 사회의 오랜 모순에 대한 반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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