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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더 사려 깊게 살겠습니다" 하정우는 고개를 숙였다

입력 2022-09-1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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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하정우. 사진=넷플릭스배우 하정우. 사진=넷플릭스
배우 하정우(44·본명 김성훈)는 먼저 고개부터 숙였다.

2020년 2월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가 알려진 후, 오랜만에 인터뷰 자리에 등장한 하정우는 누가 묻기도 전에 5분간 사과의 말을 쏟아냈다. "직접 기자들을 만나 사죄의 말을 하고 싶었다"면서 차분하고 조리 있게 그간 들었던 고민과 깨달음에 관해 이야기했다.

하정우는 2년 만에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으로 돌아왔다. 지난 9일 공개된 '수리남'은 남미 국가 수리남을 장악한 무소불위의 마약 대부로 인해 누명을 쓴 한 민간인이 국정원의 비밀 임무를 수락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시리즈다. '용서받지 못한 자'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군도: 민란의 시대' '공작'을 연출한 윤종빈 감독의 첫 시리즈 연출작이다. 극 중 국정원 작전에 투입된 민간인 강인구 역할을 맡은 하정우는 전요환 역 황정민을 비롯해 박해수, 조우진, 유연석, 장첸 등과 호흡을 맞췄다.

'히트'(2007) 15년 만에 드라마를 선보이게 된 하정우. '수리남'이 지난 14일 14개 국가에서 1위를 차지, 3위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드라마 컴백 무대를 꾸몄다. 그럼에도 사건 이후 첫 작품 공개라는 이유로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배우로서의 본질에 관해 고민했다"는 그는 "시청자가 어떻게 받아들여 줄지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수리남' 포스터. '수리남' 포스터.

-프로포폴 불법 투약 사건 이후 오랜만에 돌아왔다.
"오랜만에 나와서 일전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을 언급하고 사죄했어야 했는데, 그 자리('수리남' 제작발표회)보다 인터뷰를 통해서 말씀드리고 싶었다. 이 자리에서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많은 분들에게 불편한 사건을 접하게 해드려서 사죄드린다. 앞으로는 모범이 되고, 그런 일에 연루되지 않도록 더 조심스럽고 사려깊게 살아가겠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고 싶다. 1년 반이란 시간이 금방일 수 있는데, 저에겐 태어나 처음 겪는 일이었다. 상당히 긴 시간이었다. 십몇 년간 영화를 찍고 이런 작품 홍보가 친숙한 일이었는데, 오늘 집을 나설 때는 마음이 정말 낯설고 이상하더라."

-그간 어떻게 지냈나.
"지난해 같은 경우엔 거의 도를 닦았다. 엄청나게 돌아다녔다. 그땐 코로나19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던 시기라 여행도 못 가고, 한강에 가서 걸었다. 그 시간을 통해 제가 살아온 배우의 생활을 돌아봤다. 그간 겪은 시간도 정확히 알게 됐고, 단순히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많은 잘못을 해왔구나'라며 깨닫는 시간을 가졌다. 정말 40대 아저씨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냈다."

-이렇게 돌아오게 돼 각오가 남다를 것 같다.
"함께 했던 모든 분들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일부러 피하거나,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으려 했던 건 아니다. 피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그저 지금 내리는 소나기를 맞고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깨달았나.
"모든 사람에게 어떤 형태로든 시련을 겪게 하는 것 같다. 저에게도 그런 일이 벌어진 거다. 그러면서 조금 더 본연의 본질적인 생각을 많이 했다. 배우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배우가 연기를 표현하고 영화 작업에 참여하는 데 있어서 어떤 마음으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본질적인 것에 대해 생각했다. 바쁘다는 게 능사가 아니다. 열심히만 달리면 되는 줄 알았던 자신에 관해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조금 더 사려 깊고 조심했어야 했다."
배우 하정우. 사진=넷플릭스배우 하정우. 사진=넷플릭스

-긴 호흡의 작품을 오랜만에 선보인다.
"영화와 드라마가 크게 다르진 않다. '양이 많다' 정도다. 찍을 게 너무 많다. 너무 각박하다. 영화는 한 회차에 20컷~30컷을 찍는데, 이건 쉬운 컷이 없다. 체력적으로도 쉽지 않았다."

-정주행으로 시청한 소감은 어떤가.
"사전에 1, 2, 3부를 봤다. 4, 5부는 밀도가 너무 높으니까 힘들더라. 그래서 4, 5부는 건너뛰고 6부만 봤다."

-시청자 반응을 찾아봤나.
"다 '재미있게 봤다', '몰입력 있게 봤다'는 반응이더라. 물론 나쁜 댓글이 있으면 굉장히 기분 상한다."

-윤종빈 감독은 엔딩 맛집을 자신하던데.
"1부는 괜찮았던 것 같고, (이후에도) 대체로 괜찮았다. 맛집까지는 잘 모르겠다. 6회를 쭉 이어보는 그 맛이 있다. 다음 회를 위한 엔딩의 맛은 잘 못 느꼈다. 영화 같은 묵직함이 여섯 시간 동안 잘 이어진다는 게, 힘이 있다는 게 장점인 것 같다."

-'수리남'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처음에 열다섯 페이지짜리 이야기가 있었다. 8년 전에 개발하고 있던 프로듀서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제작사 퍼펙트스톰에서 제안이 들어와서, 이 이야기를 누구와 함께하면 좋을지 찾았다. 그러던 중 집 가까운 윤종빈 감독에게 먼저 말했다. 처음엔 영화로 제작하려고 했다. 윤 감독이 이야기를 보고선 '분명 두 시간으로 다 담을 수 없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절당했다. 그 후 몇년간 표류했다. 다른 감독님도 만나고 제안을 했는데 결국 다 거절하더라. 영화 '공작'을 끝낸 윤 감독이 '시리즈물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해서 시작하게 됐다. 그것이 2017년 정도였다."

-본인이 연출할 생각은 하지 않았나.
"제 스타일 작품은 아니다. 저는 영화 '롤러코스터' 스타일이다. '허삼관'으로 상업 영화의 맛을 봤지만 안 된다는 걸 단번에 깨달았다.(웃음)"

배우 하정우. 사진=넷플릭스배우 하정우. 사진=넷플릭스
-전 세계에 공개됐는데, 실감 나나.
"수치를 알 수가 없다. 조금 더 기다려봐야겠다. 수치를 나타내는 사이트가 있다고 하는데, 체감이 안 된다. 얼마나 '핫'한 건지 모르겠다. 모든 것이 다 생소하고 낯설다."

-주변 반응은 어땠나.
"응원이 90%다. 오랜만에 작품을 들고 나왔으니, 나쁜 말은 안 할 거다.(웃음) '힘내' 이런 말을 하더라."

-지금까지 해왔던 캐릭터와 비슷하기도 한데.
"전요환이나 변기태, 박해수가 맡은 역할을 연기하는 맛도 있었을 거다. 근데 극을 이끌어가는 1번 주인공의 어려운 고충의 하나다. 튀어 보이거나 하면 안 된다. 스토리를 잡고 가는 인물이라서, 샛길로 새거나 뭔갈 강조하기 힘들다. 윤종빈 감독이 하정우란 사람, 김성훈(하정우의 본명)이란 사람을 보면서 '이런 캐릭터를 가지고 이야기를 끌고 가면 강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캐릭터는 식상할 수 있지만,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있겠다'는 안전한 선택이었다."

-대사 처리도 하정우식대로 하더라.
"일상에서 쓰는 것처럼 대사했다. 말이 빠른 사람이 임기응변이 좋을 확률이 높은 것 같다. 그래서 '멋진 하루'나 '비스티 보이즈'에서 연기했던 캐릭터를 떠올렸다. '백두산'에서의 어떤 부분도 있었을 거다. 어렸을 때 즐겨했던 연기 표현법이나 대사, 행동을 강인구에 다 녹였다. 감독님이 그걸 원하기도 했다."

-잘할 수 있는 작품과 캐릭터를 선택하는 편인가.
"잘할 수 있는 캐릭터를 선택해왔던 것 같다. 영화는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 관객을 많이 만나고 시청자의 관심을 끄려면 재미가 0순위다. 어떤 대단한 생각은 아니지만, 영화 전체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선택하는 게 주연배우로서 맞는 일 같다."

-실화를 접했을 때 어땠나.
"모티브가 된 인물이 남미에 가서 마약 비즈니스를 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다. 그 외엔 다 재구성했다. 모델링이 됐던 인물은 원래 목사도 아니었고 사업가였다. 강인구 역할도 많이 달랐다. 실화 베이스에 대한 생각은 별로 없었다. 그들의 동선 정도, 수리남이란 나라에서 해왔다 정도다."
배우 하정우. 사진=넷플릭스배우 하정우. 사진=넷플릭스

-민간인으로 국정원 작전을 함께한 강인구라는 인물이 이렇게 행동하게 된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 사람은 기본적으로 가진 선한 의지다. 갈등을 엄청나게 많이 하지 않았을까. 전요환의 제안이 있었고, 그 안에서 갈등이 엄청나게 있었을 터다. 어쨌든 선한 선택을 한 거다. 전요환의 조직 안에 들어가서의 활약상이 회차가 더 길었다면 소개됐을 텐데, 컴팩트하게 6부작으로 되면서 스킵됐다. 개인적으론 아쉬운 부분이다."

-대학생 시절 열애설까지 난 윤종빈 감독과는 여전히 잘 맞나.
"그땐 윤종빈 감독과 같이 살았다. 경제적 형편이 안 좋았다. 그래서 외부 시선이 그랬다.(웃음) 라이프 스타일은 정반대다. 근데 영화 이야기할 때만큼은 잘 맞는다. 추구하고 좋아하는 것이 잘 맞는 것 같다. 그거 외에는 딱히(맞는 면이 없다). 작품을 볼 때나 연기를 볼 때의 기준점이 비슷하다."

-윤종빈 감독은 하정우라는 배우의 진가를 어떻게 끌어내나.
"무장해제된 일상을 통해 보며, 그는 영화감독이기 때문에 영화적 모멘트를 많이 담았을 거다. 윤 감독만큼 저를 많이 찍은 사람이 없다. 감독님이 저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다. 제 설명서를 정확히 알고 있다. 진짜 화난 얼굴을 알고 있고, 그런 감정의 얼굴을 많이 담아봤다. 그걸 끌어내려고 하는데, 불편하다.(웃음)"

-곁에서 지켜본 윤종빈 감독은 어떤가.
"영화를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을 알아낸 것 같다. 그리고 집요함이 생겼다. 귀차니즘 스타일인데, 이번엔 끝까지 얻어내더라. '수리남'을 보며 '영화를 재미있게 만드는 레시피가 다양해졌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보편적인 맛을 잘 알아낸다. 이전엔 독특하고 실험적 맛을 냈다면, 이젠 모두가 다 좋아하는 맛도 낼 줄 안다."
〈사진=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사진=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
'수리남' 스틸. 사진=넷플릭스'수리남' 스틸. 사진=넷플릭스
'수리남' 스틸. 사진=넷플릭스'수리남' 스틸. 사진=넷플릭스

-황정민과 처음 연기 호흡을 맞췄는데.
"운이 좋게도 지방 촬영이 많았다. 집에 가지 못하고 숙소 생활을 오랫동안 했다. 촬영 후, 정민이 형, 윤 감독 그리고 또 다른 배우들이랑 시간을 많이 보냈다. 서로에 대해 편안함을 느끼며 적응해 나갔다. 20대 중반에 (황정민) 형을 처음 만났지만, 그땐 막연하게 '무서운 선배. 다혈질 형'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위상은 엄청난 차이였다. 저는 신인배우였고 정민이 형은 밥상 멘트하면서 국민 배우로 거듭나던 시기였다. 너무나 높은 존재였다. 살갑고 따뜻한 면이 있다. '용서받지 못한 자' 저예산 학생 영화 시사회에 찾아와서 '나도 다음에 꼭 참여시켜달라'고 하더라.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서도 저를 데리고 다녔다. 감사한 마음이 늘 자리 잡고 있었다. 그간 왜 한 번도 호흡을 못 맞췄을까. '수리남'으로 만나서 서로에 대한 기대감과 정이 더 쉽게 작업하는 밑거름이 됐다. 형은 워낙 배려심이 많다. 다른 배우 후배들에게도 조금의 불편함을 줬다면 꼭 다시 연락을 해서 '오해하지 말아달라'며 이야기한다. 세심하게 후배들을 감싸준다. 나이를 떠나 배우를 존중해준다. 나이를 떠나서, 경력을 떠나서 같은 배우면 '나는 너를 존중한다'고 한다. '다혈질이지만 상당히 섬세하구나'라고 생각했다. 하하하."

-그렇다면 하정우는 어떤 선배인가.
"무뚝뚝하다. 현장에서 상대 배우가 후배인데, 다른 길로 가고 있다고 해도 제가 말을 할 건 아니다. 그 친구가 제자리에 올 수 있게끔 기다려준다. 조금 뻣뻣하다고 해야 할까. 근데 정민이 형은 세심하게 하나하나 불편하지 않게 이야기해준다."

-조우진이 정말 잘하더라.
"조우진이 고생을 많이 했다. 일단 기본적으로 세 시간 전에 와야 한다. 문신도 해야 하고 털도 붙여야 했다. 전주 세트 촬영할 때 폭염을 통과하는 계절이었다. 아침에 와서 항상 수염 붙이는 걸 보면서 늘 안타까워했다. 그런 고생과 노력이 보답 받는 것 같다. 좋은 일이다. 매력적 캐릭터이고 폭발적 모멘텀을 가지고 있다."

-'오징어 게임'이 에미상까지 휩쓸었는데, '수리남' 팀도 기대가 있나.
"너무 기대한다. 8위를 하고 6위를 했다고 하기에 '이게 맞는 속도인가'란 생각이 들었다. 황동혁 감독님, (이)정재 형 (에미상 수상을) 정말 축하드린다. '오징어 게임' 행사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수리남' 팀도 이런 투어를 다니고 좋은 추억을 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오징어 게임' 팀이) 쾌거를 이룬 걸 보고 나서 정말 부러웠다."
배우 하정우. 사진=넷플릭스배우 하정우. 사진=넷플릭스

-일련의 사건 이후 연기하는 재미를 더 느끼게 됐나.
"제가 마주한 일과 현실이 너무 힘들었다. 근데 촬영장에 와서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엔 숨을 쉴 수 있었다. 집중하고 몰입하며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옛날에 내가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몰입도가 이랬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잃어버린 걸 찾은 것 같다. 초심을 찾았다. 그 캐릭터를 바라보고 연기에 집중하는 걸 다시 찾은 것 같아 좋다."

-소재가 예민한 작품이고, 주연배우로서 많은 걸 설득해야 하는 시기다.
"컴백작이 '수리남'이 될 줄은 몰랐다. 너무 낯선 감정이다. 예전 같으면 신작이 나와서 관객을 만나는 설렘이었다면, 이번엔 그것에 더해진 복잡한 마음이 있다. 어떤 긴장감도 들었을 테고, 걱정도 들었을 테다. 설렘보다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낯섦이었다. 관객을 설득할 작품이라고 판단하기엔 시기상조다. 시청자가 어떻게 받아들여줄지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현재로선,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한 걸음 한 걸음 다시 시작하는 것인데, 이걸로 다 판단할 순 없을 거다. 나아가며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시즌 2도 나올까.
"강인구가 국정원과 공조해서 시즌 2가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긴 하더라. 근데 윤종빈 감독이 하나를 더 찍을 의지가 있을까.(웃음) 글쎄. 물론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넷플릭스가) 한다면 가능할 것도 같다."

박정선 엔터뉴스팀 기자 park.jungsun@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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