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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호국영웅 끝까지 찾는다

입력 2022-09-0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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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2일) 밀착카메라는 70년 넘은 한을 파헤치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6·25 전쟁 이후 아직까지 찾지 못한 전사자 유해가 13만 구 정도 남아있다고 하는데요.

유해 한 구, 유품 하나라도 더 찾기 위해 애쓰는 현장에 밀착카메라 이희령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기자]

충청남도 금산군에 군인 70여 명이 모였습니다.

가파른 산을 10분 정도 오르자 발굴 구역이 나옵니다.

이곳이 유해 발굴 작전이 진행되고 있는 413고지입니다.

지금도 한창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제 뒤로 보이는 돌들이 원래 이 곳에 있던 게 아닙니다.

저 높은 곳에 있었는데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직접 돌들을 내려두고 있습니다.

공비 토벌 작전이 진행됐던 현장, 당시 2000명 넘는 적이 사살됐지만 우리 군과 민간인도 300명 가까이 숨졌습니다.

[강신권/육군 32사단 중사 : 빨치산 인원들이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돌탑처럼 이렇게 쌓아놓은 겁니다. 여기 있는 돌들을 저희가 다 뺀 겁니다.]

땅에 박힌 돌도 꺼내 옮깁니다.

[양종희/육군 32사단 병장 : 밑에 묻힌 분들이 저희를 위해서 희생되신 분들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흙이 드러난 곳은 지뢰탐지기로 살핍니다.

소리가 나는 곳을 자세히 파보지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김현건/육군 32사단 중위 : 돌에 철 성분이 있다 보니까 돌이 모여 있으면 금속으로 인식해서…]

다른 곳을 살펴보는데

[여기 있다, 여기 있다. 찾았다.]

탄피가 나왔습니다.

[김현건/육군 32사단 중위 : {M1 탄피 나왔습니다.} 국군이 사용한 탄이 나왔으니까, 좋은 소식인 것 같습니다.]

찾은 유품들은 매일 꼼꼼히 확인하고 기록합니다.

[최호연/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병장 : 아군이 썼던 탄인지, 적군이 썼던 탄인지 구분을 계속해 나갑니다.]

이곳은 또 다른 발굴 지역입니다.

6.25 전쟁 당시의 땅 높이까지 땅이 깊게 파여 있는데요.

이렇게 파여 있는 구역에 혹시나 유해나 유품이 있진 않을지 모두 살펴보는 전면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 마을 주민의 제보로 발굴이 시작됐습니다.

[박종안/충남 금산군 발굴지 제보자 : 뼈는 이쪽에 다 있었어. 조금 파서 삽으로 떠넘기고 묻은 거야.]

[김병찬/육군 32사단 예비군 기동대장 : 정말 간절한 마음이죠. 연고도 없는 곳에 묻혀서 술 한 잔도 따라주지 못하는 이런 곳에 있다는 자체는 슬픈 일이잖아. 발굴해서 정말 좋은 곳으로 모신다 그러면 그보다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2000년부터 발굴된 전사자 유해는 모두 1만 2천여구입니다.

이 중 195명의 유해만 가족을 찾았습니다.

김석만 씨의 아버지 고 김종술 일병도 발굴된 지 10년 만인 지난 5월, 아들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김석만/고 김종술 일병 아들 : 아버님이 행방불명이었기 때문에 이북 같은 데 끌려가신 거 아닌가 생각도 해봤고,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가 70년이 넘었는데 그 유전자 감식이 된다고 하는 건 그래도 안 믿었거든요.]

4살이었던 아들은 어느새 70대 노인이 되었습니다.

[김석만/고 김종술 일병 아들 : 어떨 땐 꿈인 것 같기도 하고. 돌아가신 분 찾는 데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고마운 걸 말할 수도 없는 거죠.]

[양범석/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계획운영처장 : 발굴된 유해와 유품만으로는 신원을 확인할 수가 없기 때문에 유가족들의 유전자 시료 채취가 정말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고 김종술 일병은 전쟁이 끝나고 70년이 지난 뒤에야 가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잠들어 있는 전사자들은 세상의 빛을 봤지만, 아직 가족을 만나지 못한 전사자들도 많습니다.

이들의 긴 외로움이 하루 빨리 끝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VJ : 김원섭 / 영상그래픽 : 박경민 / 인턴기자 : 성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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