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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에너지전환은 글로벌 스탠다드…정치화의 책임은 누가 지나?

입력 2022-08-01 08:00 수정 2022-08-01 08:03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42)

그래픽으로 보는 새정부 기후·에너지 정책 방향 (중)

미래 먹거리 좌우하는 '백년대계' 기후·에너지 정책
에너지전환 놓고 글로벌 패권 경쟁 본격화했지만
국내에선 이념화, 정치화에 빠져버린 에너지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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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42)

그래픽으로 보는 새정부 기후·에너지 정책 방향 (중)

미래 먹거리 좌우하는 '백년대계' 기후·에너지 정책
에너지전환 놓고 글로벌 패권 경쟁 본격화했지만
국내에선 이념화, 정치화에 빠져버린 에너지전환

이번 주도새정부 기후·에너지 정책 방향을 짚어봅니다. 앞선 연재를 통해, 하나의 정책 방향 속 충돌하는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드렸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에너지전환은 글로벌 스탠다드…정치화의 책임은 누가 지나?
화석연료의 수입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담겼습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탈탄소 에너지원의 확대 방안은 찾아보기 어려웠죠. 기존의 2030년 에너지믹스에서 원전의 비중은 높이고,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낮추겠다고 명시한 겁니다. 탈탄소 전원을 가능한 한 최대로 늘리겠다고 해도 '2030년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 60%대'는 달성하기 쉽지 않음에도 말이죠. 또한, 유전과 가스전 등 해외 자원개발에 대해 정부가 대(對) 민간 지원에 나서겠다고도 밝혔습니다. 화석연료 비중을 줄이겠다는 계획과 화석연료를 찾아 나서겠다는 계획이 뒤섞인 겁니다.

또한, '5대 에너지정책 방향' 중 첫 번째인 '실현가능하고 합리적인 에너지 믹스의 재정립'에 있어 '불편한 내용'은 최소화한 모습도 엿보입니다. 정부는 “국민안전을 위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방안을 실행하겠다”며 “처분을 위한 절차, 일정, 방식을 규정한 특별법을 마련하고, 컨트롤타워로 국무총리 산하 전담조직을 신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얼핏, 법에 의거한 '고준위 방폐물 처분장'을 마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하지만 곧이어 나온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지역과 소통하면서 원전 내 한시적으로 저장시설을 확충하는 것을 추진하겠다.”

원전 부지 내에 고준위 방폐물을 보관하는 일은 사실상 '꼼수'와 같은 일입니다. 때문에 '한시적'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죠. 문제는, 영구 처분장의 건설 시점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한시적'이라는 보관 기간은 '반영구적'으로 길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시적 보관이기에 그 시설은 '영구 처분장'과 같은 안전성을 요구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한시적으로 저장시설을 확충하겠다”면서 그 기간을 밝히진 못 하고 있습니다. '한시적'이라는 표현을 쓰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바로, 그 기간을 명확히 하는 일입니다. 이를 명확히 하지 않고서 저장시설 확충에 나서진 않을 거라고. 특별법이 '한시적 시설'을 '반영구적 시설'로 쓰는 '법적 근거'로 활용되는 꼼수를 부리진 않을 거라고. 사용후핵연료의 처분과 노후원전의 해체라는, 원전 생애주기 전반에 걸친 계획 없이 '원전 산업 생태계'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 거라고 믿어봅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새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에서 이전의 계획과 새정부의 계획을 비교하는 표를 담기도 했습니다. 만약 '차별성'을 나타내려던 의도였다면, 그 시도는 잘못된 것으로 보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에너지전환은 글로벌 스탠다드…정치화의 책임은 누가 지나?
2017년 10월에 나온 〈에너지전환로드맵 지역·산업 보완 대책〉과 2019년 6월에 나온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5대 중점 추진과제〉, 그리고 올해 7월에 나온 〈새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 5대 정책 방향〉은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2017년 10월 이후, 우리나라가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앞으로의 방향도 지난 5년과 비교했을 때, 크게 진일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당장, 최근 정부의 움직임을 보면 '진일보'를 넘어 '퇴보'를 우려하게 됩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에너지전환 지우기'에 돌입했습니다. 에너지전환정책과는 에너지정책과로, 에너지전환정책관 역시 에너지정책관으로 바뀌었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2030년 국가 R&D 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에서 수소 관련 예산의 증액을 최소화했습니다. 〈초격차 국가전략기술〉로 분류된 5대 분야, ① 반도체·디스플레이, ② 2차전지, ③ 차세대 원전, ④ 수소, ⑤ 5G·6G 가운데 수소는 예산 증가폭이 가장 낮았습니다. 예산 증가폭이 가장 큰 순서로 이를 나열하자면, 차세대 원전(50.5% 증가), 2차전지(31.1% 증가), 반도체·디스플레이(8.5% 증가), 5G·6G(4.3% 증가), 수소(0.5% 증가) 순이었습니다.

정부의 움직임뿐 아니라 대통령의 말을 통해서도 이러한 인식은 명확히 나타납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지난 7월 18일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념과 구호가 아니라 과학에 기반을 둔 합리적 환경 규제를 마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온실가스 감축에 있어 감축수단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가장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한' 수단을 찾으라는 주문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에너지전환은 글로벌 스탠다드…정치화의 책임은 누가 지나?
무엇이 가장 합리적이고, 어떤 것이 실현 가능한지는 이미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IEA(국제에너지기구) 등 글로벌 석학들이 모여 과학적으로 분석을 마쳤습니다. 또한, 그 분석 결과가 무엇인지 지난 연재를 통해서도 모두 소개해드린 바 있습니다. 그리고 국제사회는, 이러한 분석에 기반해 이미 변화를 시작한지 오래입니다. 우리나라가 기존 2030 NDC를 통해 정한 산업부문의 감축률은 14.5%입니다. 과연, 이념에 휩싸여 비합리적으로 결정된 숫자였을까요.

IEA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선진국과 개도국이 각각 부문별로 얼마나 감축을 해야 하는지 살펴봤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제기구의 연구 인력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물이죠. 선진국의 경우, 2030년까지 산업부문 배출을 2020년 대비 26% 줄여야 합니다. IEA 역시, 2030년의 경우 최대한 감축폭을 좁혀놨습니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는 속담처럼, 일찌감치 최대한의 감축을 이끌어낸다면 추후 부담이 줄어들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론 쉽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감안한 결과입니다. 산업구조의 변화가 빠르게 이뤄지기 어렵고, CCUS(탄소포집, 이용 및 저장) 기술의 대규모 상용화에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에너지전환은 글로벌 스탠다드…정치화의 책임은 누가 지나?
현재 우리나라의 2030 NDC에 따르면, 산업부문의 감축률은 14.5%에 불과합니다. 이미 산업부문의 감축 부담을 크게 낮춰준 상태인 것이죠. 산업부문의 감축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다른 부문이 그 부담을 대신 지고 있습니다. 폐기물부문에선 46.8%, 전환(에너지)부문에선 44.4%, 수송부문에선 37.8%, 건물부문에선 32.8%를 줄여야 하죠. 이러한 감축계획에 대해 과연 '이념과 구호'라는 꼬리표를 달 수 있을까요. '산업부문의 감축 부담을 더 줄여야 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새정부의 '에너지전환 지우기'는 에너지전환을 '전 정권의 잔재'로 보는 시각에 기인합니다. 에너지전환이라는 표현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죠. 하지만 에너지전환은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용어입니다. 이를 두고 정치적 해석을 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에너지전환의 정의가 무엇인지, 국제사회가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다시 살펴봤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에너지전환은 글로벌 스탠다드…정치화의 책임은 누가 지나?
UN뿐 아니라 S&P와 같은 글로벌 신용평가기관 역시 에너지전환을 중요한 의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미 기후변화 대응을 넘어 '글로벌 경제의 흐름'으로 자리잡은 것이죠. 그 어디에도 '정치적 해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쓰이는 용어로서의 '에너지전환'은 '재생에너지로 중심으로 한다'는 것이지, '원전을 완전히 배제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일각에선 이를 '탈원전 지우기'라는 표현으로 윤색하곤 합니다. 블룸버그NEF의 글로벌 에너지전환 투자 분야에도 원전은 그 목록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탈원전 지우기'가 '에너지전환 지우기'의 이유가 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에너지전환에 투입된 돈은 7550억달러에 달합니다. 코로나19팬데믹으로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었음에도 이 분야로의 투자는 도리어 크게 늘었습니다. 이러한 상승세를 견인한 것은 재생에너지와 수송부문 전동화라는 두 축이었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에너지전환은 글로벌 스탠다드…정치화의 책임은 누가 지나?
국가별로 살펴보면, 중국의 에너지전환 투자가 전년 대비 60% 늘어나며 '세계 1위' 타이틀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2위는 미국으로, 1140억달러를 투자했습니다. EU 회원국을 통틀어 따졌을 때, 유럽의 투자규모는1540억달러에 달했습니다. 한국과 인도는 처음으로 '글로벌 Top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고요. 이렇게 투자가 몰리는 에너지전환은 말 그대로 '미래 먹거리'인 셈입니다. 세계 각국은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투자가 자국을 향하게 하려고 고군분투 중이죠. 이중 특히나 투자가 몰리는 두 축(재생에너지, 수송부문 전동화)은 국제적으로 '신 성장동력'으로 인증받은 것과 다름 없는 셈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에너지전환은 글로벌 스탠다드…정치화의 책임은 누가 지나?
'과거의 에너지'인 화석연료를 포함, 전체 에너지 공급 분야에 투입된 투자액을 살펴봐도, 이러한 흐름은 분명해 보입니다. 원자력의 경우, 2019년 390억달러, 2020년 420억달러, 2021년 440억달러로 정중동의 행보를 보였습니다. 반면, 재생에너지의 경우 2019년 3360억달러, 2020년 3590억달러, 2021년 3670억달러를 기록했고, 전력망은 2020년 잠시 투자 규모가 감소하다 2021년 2930억달러로 전년 대비 280억달러나 늘어났죠. 투자의 규모 면에서나, 성장세 면에서나 재생에너지와 전력망이야 말로 '돈이 모이고 있는 분야', '신 성장동력'인 겁니다.

새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에선 '에너지 신(新)산업의 수출산업화 및 성장동력화'에서 1순위로 언급한 것이 “원전산업 생태계 복원, 수출산업화 및 유망기술 확보”였습니다. 글로벌 에너지전환 투자규모에서 그리 크지 않은 부분을 최우선순위로 놓은 셈이죠. 글로벌 투자현황 분석은 이러한 정책 방향을 정하는 데에 있어 가장 먼저 살펴봤어야 할 부분입니다. 진짜 새로운 산업이 무엇이고,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숫자로 명확히 판가름되기 때문입니다.

에너지전환을 전면에 내세웠던 이전 정부 역시,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에너지전환 정책을 홍보했던 것에 비하면 '행동'은 부족한 면이 많았습니다. 여기서 '행동'이라 함은, 에너지 분야의 RD&D(연구, 개발 및 실증)에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입했느냐를 의미합니다. 정부의 말이 향한 곳이 아니라 예산이 향한 곳을 살펴보겠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에너지전환은 글로벌 스탠다드…정치화의 책임은 누가 지나?
IEA(국제에너지기구)가 발표한 국가별 공공 에너지 RD&D 예산을 그래프로 정리했습니다. 총액 기준, 우리나라는 미국과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캐나다를 이어 7위를 차지했습니다.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것 아닌가' 싶을지 모르겠지만, 각국의 경제규모를감안해 이를 GDP로 나눠보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그간 이전 정부가 에너지전환을 외쳐왔던 것과 달리, 에너지 분야의 RD&D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여실히 드러납니다. 한국의 GDP 당 공공 에너지 RD&D 예산 비중은 불과 0.43‰(퍼밀, 천분율)에 불과합니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총액 기준으로도 세계 2위였지만, GDP 당 예산의 비율로 봐도 세계 4위로 상위권에 있었습니다. 총액 기준 세계 1위인 미국의 경우, GDP에서 에너지 RD&D가 차지하는 비율로 봤을 땐 세계 중위권으로 밀려납니다만 워낙 총액 자체가 다른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새정부가 이전 정부와 달리 성공적인 에너지 정책을 설계하고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충분한 실탄'을 공급하는 일입니다. '에너지전환 지우기'나 '탈원전 폐기'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요. 에너지 분야를 향하는 예산에 변화가 없다면, 새정부 역시 말만 있을 뿐, 행동은 없는 셈입니다.

에너지전환은 긴 호흡으로 이뤄져야 할, 국가 차원의 장기 정책입니다. 이전 정권이 에너지전환에 대대적으로 나섰고, 대선 국면에서 상대당 후보가 RE100과 에너지전환을 외쳤다고 한들, 그 키워드는 특정 정당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이전 정권조차 탄소중립 기본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라 명명한 바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로 지워졌던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을 유지한 겁니다. 탄소중립의 성패를 가르는 이 시점에서 '에너지전환 지우기'에 나서는 것은, 과거 국제사회에서 선도적으로 '녹색성장'에 나섰던 정부의 정책을 '창조경제'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지워낸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에너지전환은 글로벌 스탠다드…정치화의 책임은 누가 지나?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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