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서울의 한가운데 커다란 호텔 옆에는 응달만 남은 곳이 있습니다. 가난의 냄새가 쉬이 지워지지 않는 이곳은 누군가에겐 첫 보금자리이고 평생의 사연이 담긴 곳이기도 합니다.
체감온도 영하 22도의 한파가 휩쓴 날 이선화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기자]
고속철도가 전국으로 이어지고 밤에는 힐튼호텔이, 또 국보 숭례문이 환하게 불을 밝히는 곳.
그곳 언덕길에 쪽방촌이 있습니다.
볕이 잘 드는 곳이라 '양동'이라 이름이 붙었지만, 재개발 바람에 이젠 응달만 남았습니다.
그저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홈리스'라고 부르기엔 저마다 사연이 있습니다.
가족에게 상처를 입고 무작정 서울로 왔다가 명의를 도용당해 주저앉은 사람부터,
[장영철/(가명) 주민 : 인감도장 이런 거 해달래서 해줬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앞으로 해먹으려고 했더라고요. 8억9천만원하고. 지방세가 3600만원 나왔더라고요.]
넝마주이로, 구두닦이로 쉴 새 없이 일했지만 평생을 정처없이 떠돌아야 했던 사람까지.
[이석기/(가명) 주민 : 목포 신안군 태평염전에 있었습니다. 10년 가까이 있었는데 돈을 한 푼도 못 받고. 얼어 죽지도 않고 살아가지고 내가 이런 고생을 하냐고.]
게을리 살지 않았는데, 이젠 재개발로 또다시 터전을 옮겨야 할 처지입니다.
[최현숙/구술생애사 작가 : 만에 하나 이분들이 재개발 상황에서 흩어지더라도 이분들의 삶의 기록을 남기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삶의 궤적을 좇은 기록들이 스스로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방 한 칸이 갖는 의미를 짚어보게 합니다.
[이석기/(가명) 주민 :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내 방이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다, 먹고 싶은 것 사먹고…]
(화면제공 : 홈리스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