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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현존하는 최고의 영화적 상상력 '로키' 그리고 MCU

입력 2021-11-17 08:04 수정 2021-11-17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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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현존하는 최고의 영화적 상상력 '로키' 그리고 MCU


| MCU 새 페이지 멀티버스 담은 '로키' 리뷰
| 글로벌 OTT 디즈니+ 국내 상륙 후 첫 론칭 콘텐트
| 영화관 정복 넘어 지구 정복 꿈꾸는 마블

출연: 톰 히들스턴, 오웬 윌슨, 소피아 디 마티노, 구구 바샤로
감독: 케이트 헤론
등급: 15세이상관람가
러닝타임: 6부작
한줄평: 유치하다고 무시했다가는 큰코다친다.
팝콘지수: ●●●●○
줄거리: '어벤져스:엔드게임'에서 탈출에 성공한 로키가 세상의 시간을 어지럽힌 죄로 TVA(시간 관리국)에 체포된 후, 살기 위해 또 다른 시간 속 로키를 잡아야 하는 미션을 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

 
[리뷰] 현존하는 최고의 영화적 상상력 '로키' 그리고 MCU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위상을 위협하는 글로벌 플랫폼 디즈니+가 지난 12일 국내 상륙했다. 플랫폼 오픈과 동시에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최고 인기 빌런인 '로키' 시리즈를 공개해 영화 팬들과 마블 팬들을 흥분감을 높였다.

'로키'를 기점으로 MCU는 비로소 멀티버스(다중우주)의 규칙을 완전히 재정립했다. 하나의 우주가 아닌 복수의 우주 속에서 다른 차원의 세상을 살아가던 히어로들은 어느 지점에서 만나기도, 헤어지기도 한다. '로키'는 이 원리를 타임라인(시간선)이라는 개념으로 해결했다. 현 인류가 살아가는 타임라인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또 다른 차원의 타임라인을 가정한 뒤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쳤다.

마블은 지난 2016년 '닥터 스트레인지'를 시작으로 MCU의 차세대 테마인 멀티버스를 전면에 내세웠다. 멀티버스는 메가히트 히어로를 대량으로 보유한 마블에게 있어서는 가장 매력적인 세계관이다. 통합된 세계관 속에서 여러 히어로들은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고 미션을 해결하면서 극적 재미를 최대치로 높인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떤 영화보다 치밀하고 그리고 정교하게 짜인 마블의 세계관에 현대인들이 점차 빠져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리뷰] 현존하는 최고의 영화적 상상력 '로키' 그리고 MCU

'개연성을 묻지마라' 자유 연상으로 구축한 내러티브

영화를 비롯한 모든 대중예술은 개연성의 울타리 안에 있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기 위해선 그걸 바라보는 관객이 그 상황을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멀티버스라는 간편한 설정만으로도 가장 큰 창작의 고통인 개연성의 족쇄를 풀어버릴 수 있다. 멀티버스는 창작자에게 끝없는 상상력을 허용한다.

멀티버스 안에서 로키는 대통령이 되기도, 어린아이가 되기도, 심지어 악어가 되기도 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해'라고 묻는다면 '시공간의 균열에 의해서 탄생한 멀티버스에서는 하나의 존재가 여러 가지 형태로 구현된다'고 답하면 된다.

'무책임하고 터무니없는 설정 아니냐'며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마블과 '로키'는 매우 구체적인 법칙을 만들어내며 이런 비판에서 벗어난다. 아무리 허황된 세상이라도 완벽한 체계를 갖추고 있으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법이다.

 
[리뷰] 현존하는 최고의 영화적 상상력 '로키' 그리고 MCU

이를 테면 멀티버스 내의 규칙이다. 우선 '로키'에선 '타임키퍼'라고 불리는 시간의 신이 등장한다. 이 타임키퍼는 세계의 유일무이한 타임라인을 안전하게 유지하고 관리·감독하는 신적인 존재다. 타임키퍼는 정상 타임라인에서 벗어난 자들을 '변종'이라고 정의하고 처단한다.

정상적인 시간선에서 탈출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면 '넥서스'라는 에너지가 감지된다. 미닛맨(변종 사냥꾼)은 이 넥서스를 근거로 시간 이탈자들을 색출한다.

여기까지도 복잡한데 '로키'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시간을 탈출한 '변종 로키'(실비)는 자신을 쫓는 미닛맨들을 따돌리기 위해 교묘한 술수를 쓴다. 종말의 사건 앞에서는 시간에 어떤 균열을 가하더라도 모든 것이 곧바로 사라지기 때문에 넥서스가 발생하지 않는 것.

로키와 실비는 이 종말을 이용한다.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여러 종말 사건 직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자신을 추격하는 미닛맨을 따돌리고 역공을 펼친다. 그 과정에서 구현되는 역사적 사건이나 시대상을 반영한 미장센은 덤으로 누릴 수 있는 볼거리다.

이렇듯 '로키'는 치밀할 정도로 정교하게 설계도를 그린 뒤 그 위에서 한계 없는 상상력을 펼친다. 한번 규칙을 설정한 이상 개연성을 설명하기 위해 드는 지루한 시간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로키'는 허상의 세계를 그대로 질주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밑도 끝도 없는 설정들과 장면들에 마치 감독이 자유 연상하는 듯 영화를 만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에는 허황되고 유치한 세계관일 수 있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는 어떤 영화보다도 매력적으로 그리고 화려하게 다가온다.

 
[리뷰] 현존하는 최고의 영화적 상상력 '로키' 그리고 MCU


플라톤, '매트릭스' 그리고 MCU


'로키'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TVA(시간 관리국)라는 공간이다.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와 가장 흡사한 이 TVA는 유일무이한 시간선을 사수하고 타임라인에 혼란을 야기하는 자들을 찾아내서 벌한다. 그들은 시간의 신을 이 세상의 유일한 신이라 믿고 자신들이 정의로운 일을 한다고 착각하지만 모종의 세력에 속고 있는 인물들이다. 마치 '트루먼쇼'의 트루먼과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가짜 세상을 진짜라고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음모론적 발상이 '로키'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다. 플라톤이 말했던 '이데아'나 장자가 말했던 '호접지몽' 그리고 워쇼스키가 그렸던 '매트릭스'는 모두 가짜 세상과 진짜 세상을 이야기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천년 동안 인기 플롯이었던 이러한 스토리를 '로키'는 2021년 형태의 버전으로 새롭게 탄생시켰다.

 
[리뷰] 현존하는 최고의 영화적 상상력 '로키' 그리고 MCU

TVA 직원들은 자신들이 변종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나 실비가 진실을 알려준다. 그들은 기억이 삭제된 채 로키와 같은 이탈자들을 수색하지만 그건 모두 타임키퍼라는 허상의 신이 꾸민 계략이다.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 '로키'는 계속 추적하고, 이는 진짜 세계를 알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을 자극한다. 설령 진짜 세계가 거짓 세계보다 고통스럽고 카오스에 가깝더라도 로키와 실비는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피 흘리며 노력한다.

그리고 결국 진실을 마주한다. 타임키퍼는 없었다. 다만 오래전부터 정상 타임라인을 고독하게 지켜온 한 흑인이 있었다. 그는 신도, 타임키퍼도, 절대자도 아니었다. 더 큰 카오스를 막기 위해 세상 사람들을 속이면서 혼자서 고군분투해 온 과학자였다. 그는 죽기 직전 로키와 실비에게 선택지를 준다. '억압하는 질서냐, 격변하는 혼돈이냐'는 기로 앞에서 로키와 실비는 과학자를 죽이고 카오스를 선택한다.

'독재자가 나쁘게 보이겠지만 그를 죽이면 더 나쁜 게 그 자리를 대신하는 법'이라는 말을 남긴 채 과학자는 죽고 멀티버스, 즉 다중우주의 시대가 도래한다. '로키' 시즌1이 멀티버스에 대해 완벽한 체계를 구축했다면, 시즌2에서는 본격적으로 혼란으로 가득 찬 세상을 예고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로키는 두려움에 가득 찬 표정으로 엄습하는 공포를 직감하지만, 반대로 관객들은 부푼 희망과 큰 설렘으로 새롭게 열린 다중우주 시대의 이야기를 기다린다.

 
[리뷰] 현존하는 최고의 영화적 상상력 '로키' 그리고 MCU



영화관이 아닌 세상을 정복하려는 마블



'로키'는 오락 영화이고 상업 영화다. 이렇다 할 분석이나 해석은 사실 별로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마블은 현대인의 삶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단편적으로 쪼개져 있던 시리즈들이 하나로 융합되기 시작했고, 대서사시 같은 세계관을 구축하면서 관객들을 결집시키고 있다.

마블은 수많은 히어로물을 통해 전 세계인이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 정서를 만들었다. 언어는 비록 달라도 마블 영화를 보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이러한 점에서 마블은 영화관을 넘어 세상을 정복하고 있다.

스크린과 OTT를 넘나드는 세계관도 더 유연해질 전망. 현재 스크린에서는 '이터널스'가 눈에 띄는 성적을 보여주고 있고, 동시에 디즈니+에서는'로키' '완다비전' 등을 만날 수 있다. 올 12월에는 대작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개봉, 디즈니+에는 '호크아이'가 등장한다.

또한 2022년에는 '닥터 스트레인지' 후속편을 시작으로 '토르', '아스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MCU판 첫 호러무비 등 새로운 작품들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탄탄하게 구축된 멀티버스 안에서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지, 마블은 또 다른 시작을 준비 중이다.

 
[리뷰] 현존하는 최고의 영화적 상상력 '로키' 그리고 MCU

박상우 엔터뉴스팀 기자 park.sangwoo1@jtbc.co.kr(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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