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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왜] 색깔혁명 어림 없다?…'레드 차이나' 정신무장 중

입력 2021-09-02 07:02 수정 2021-09-02 15:58

SNS논객 "대변혁 시작…붉은 정신 돌아온다"
관영매체 대서특필…사상교육·사회기강 강조

미·중 디커플링 본격화 앞서 내부 단속 가속
사교육 철퇴, '인민 아편' 게임산업도 칼바람
FT "국민 일상 간섭·통제…'유모 국가'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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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논객 "대변혁 시작…붉은 정신 돌아온다"
관영매체 대서특필…사상교육·사회기강 강조

미·중 디커플링 본격화 앞서 내부 단속 가속
사교육 철퇴, '인민 아편' 게임산업도 칼바람
FT "국민 일상 간섭·통제…'유모 국가' 전략"

우크라이나의 컬러혁명. 시위자들이 오렌지 색깔 깃발과 풍선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사진=노보스테이닷컴 캡처〉우크라이나의 컬러혁명. 시위자들이 오렌지 색깔 깃발과 풍선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사진=노보스테이닷컴 캡처〉

시작은 디커플링(decoupling)이었습니다.

미국의 대중 관계정리(또는 분리?) 기조가 기초과학과 첨단기술, 군사무기, IT산업 등 과학·기술 분야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중국의 내부 단속이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긴장 모드가 상승 국면입니다.

작용과 반작용. 미국의 디커플링 작용에 대한 중국의 내부 기강·규제 강화라는 반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이런 흐름은 천안문 사태 이후 초고속 성장을 구가하면서 이완되던 사회 분위기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 이전, 그러니까 개혁·개방 이전 시대에선 낯익은 풍경입니다. 이른바 자급경제, 자력갱생을 기치로 내걸었던 시대죠. '죽(竹)의 장막' 안에서 정치·경제를 필두로 사회 전분야에 걸쳐 강력한 통제를 가하는 겁니다. 마오쩌둥식 자력갱생이었죠. 이데올로기를 강조하고 다른 생각과 발상을 감금하는 엄격한 사상 교육을 거듭합니다.

〈사진=리쇼어링 연구재단〉〈사진=리쇼어링 연구재단〉

디커플링 시대에 마오의 자력갱생이 다시 회생하고 있습니다. 시진핑은 쌍순환을 내걸고 있습니다. 내수와 수출입이 상호보완하며 경제를 선순환시키자는 얘긴데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방점은 내수경제, 중국 안에서 만들고 팔아 버티자는 겁니다. 글로벌 서플라이체인에서 완전 차단을 상정하고 홍색 서플라이체인으로 대체하겠다는 겁니다. 현대판 자급경제, 자력갱생입니다.

완전히 개혁·개방 40년과 다른 새로운(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당이 진두지휘하고 선전매체와 당 산하 기관이 총궐기 하는 식입니다. 아래 사건을 함께 보시죠.

지난달(2021년 8월) 29일 오후부터 중앙과 지방의 수 십개의 관영 매체들이 잇따라 위챗(중국판 트위터)에 올라온 한 편의 글을 대서특필 하고 있습니다. 위챗 논객 리광만은 '모든 사람이 다 느낄 수 있는 심오한 변혁이 진행 중'이라는 글을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리광만의 빙점 시사 해설'에 올렸습니다.

〈사진=리쇼어링 연구재단〉〈사진=리쇼어링 연구재단〉
내용부터 간략하게 보겠습니다.

“최근 중국 규제 당국이 인터넷플랫폼(핀테크·자율주행·배달서비스·게임)과 연예계 등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칼춤은 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중대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변혁은 일회성이 아니며 자본시장은 자본가들이 벼락부자가 되는 천당이 아니며, 문화시장은 더이상 기생오라비 같은 스타들의 천당이 아니다. 여론도 더이상 서방 숭배 문화의 진지가 아니다. 붉은 정신이 돌아오고 있다. 영웅이 돌아오고 있다. 혈기가 돌아오고 있다.

“미국은 현재 중국에 대해 군사 위협을 가하고 있고 경제와 과학기술 봉쇄, 금융공격, 정치·외교의 포위…. 중국 내부의 제5열을 동원해 중국에 컬러혁명(체제전환 물결)을 촉발시키려 한다.”

"붉은 정신이 돌아온다, 영웅이 돌아온다, 혈기가 돌아온다"는 내용의 리광만 위챗 글의 한 대목.〈사진=리광만 위챗〉"붉은 정신이 돌아온다, 영웅이 돌아온다, 혈기가 돌아온다"는 내용의 리광만 위챗 글의 한 대목.〈사진=리광만 위챗〉

격문 성격의 내용 못지 않게 이를 확산시키는 방식이 매우 조직적입니다. 전체주의적 힘을 유감 없이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 글이 올라오자 관영 매체들이 일사분란하게 옮겨 싣고 있습니다. 인민일보·신화통신·CCTV·중국청년보·광명일보·중신사 등 당과 정부, 군, 반관영, 지방 등 전방위에서 공론화시키고 있습니다.

홍콩 언론에선 “이렇게 당 중앙을 비롯해 당·정·군·지방이 동시다발적으로 들고 일어서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고 설명합니다. 뒤집어 보자면 당중앙의 강력한 지시가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미국의 디커플링 압력과 체제 전복의 컬러 혁명 움직임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내부 단속에 들어간다는 겁니다. 외부로부터의 도전을 명백히 드러내고 내부 압박의 명분으로 삼는다는 얘기지요.

눈에 띄는 대목은 이겁니다. “(그루지아·우크라이나를 휩쓴) 컬러혁명에 맞서기 위해 붉은 정신으로 복귀한다.”


붉은 정신은 당과 국가의 감시와 통제, 사생활의 축소로 상징되던 자력갱생 시대의 강압적 분위기와 이미지가 포개집니다. 참고 인내하며 현재의 고난은 숭고한 혁명 이념 실현을 위한 가시밭길로 생각하라는 '절대 교시'가 사회를 꽉 옭아매던 때였죠.

〈그래픽=중앙일보〉〈그래픽=중앙일보〉

이런 점에서 당이 게임과 사교육 시장에 개입하는 것도 이념교육과 사상 주입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게임 부문을 총괄하는 중국 국가신문출판서는 청소년 게임 규제안을 발표했습니다. 앞서 관영매체 경제참고보는 “온라인 게임은 정신적 아편”이라고 낙인을 찍었습니다. 이번 규제안은 '게임은 아편' 규정 후 한 달 도 안돼 발표됐습니다. 속전속결입니다.

규제안을 보겠습니다. 18세 미만은 금·토·일요일에만 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저녁에 한 시간만 가능합니다. 가정이나 학교가 손 놓은 청소년 게임 중독 문제를 거대한 당과 국가가 섬세하게 가이드라인을 쳐줬으니 애들 키우는 가정에선 환영할 일이라고 반색할지 모르겠습니다.

〈사진=리쇼어링 연구재단〉〈사진=리쇼어링 연구재단〉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31일 중국공산당이 '유모 국가(Nanny State)' 전략을 펴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유모국가는 유모가 어린아이를 돌보듯 국민의 일상사 디테일까지 간섭하고 통제하는 국가를 뜻합니다. 유모 국가가 게임 시간을 손본다니까 이런 조치가 부모들로부터 인기를 끌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디까지나 부차적 효과일 뿐입니다.

당이 게임을 보는 시각이 부모들과 다르다는 게 눈여겨볼 포인트입니다. 게임은 이데올로기의 주입과 선전선동의 용이함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당의 경쟁 상대입니다. 자력갱생 시대에 청소년들을 당이 원하는 국가관과 민족감성, 중화민족주의로 '정신무장'시키려면 시간이 모자랄텐데 청소년들이 이 한정된 시간을 게임 캐릭터에 빠져 있어선 안되는 거지요.

컬러 혁명의 주력 부대는 대학생을 비롯한 청년층입니다. 게임과 사교육 시장에 개입해 당이 개인의 사생활을 통제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컬러 혁명의 잠재적 불씨를 의식하고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행보로 읽힙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디커플링입니다.

중국의 내부 통제, 사상전 드라이브, 자력갱생의 행보가 눈에 띄게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한번 방향을 틀기가 어렵지 방향이 정해지면 금새 가속도가 붙을 겁니다.

'보이지 않는 살인자'라는 제목의 게임 중독을 풍자한 그림.〈그림=신화통신〉'보이지 않는 살인자'라는 제목의 게임 중독을 풍자한 그림.〈그림=신화통신〉

트럼프에 이어 바이든 시대를 관통하는 미국의 대외정책은 중국과의 디커플링입니다. 50년간의 미·중 데탕트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습니다. 앞으로 50년은 디커플링의 시대입니다. 중국의 자력갱생 코드는 사회 전 분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터널의 초입입니다. 미·중 디커플링 시대의 터널입니다. 어느 한 쪽 선택을 고민하지 않아도 됐던 냉전시대가 아닙니다. 글로벌 공급망을 공유하며 중국에 소재와 부품을 대주고 완제품을 미국 시장에 팔던 미·중 협력의 시대도 아닙니다.

'선택할 수 있어 괴로운' 시대가 이제 터널 초입에 당도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준비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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