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도둑인 줄 알고 때려잡았는데 착각이었던 경우 영화나 시트콤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죠. 이렇게 '착각'해서 벌인 일,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하면 법정에서 통할까요?
'세상에 이런 법이' 강현석 기자가 알려드립니다.
[기자]
[영화 '그랜 토리노'(2009) : 나도 불을 갖고 있지]
'탕탕탕' 총을 꺼낸다고 착각한 갱단.
사실 총이 아닌 라이터였습니다.
착각으로 사람에 총을 쏜 겁니다.
법정이면 '오상 방위'란 걸 주장해볼 만 합니다.
말이 어렵죠. 오상방위.
일본식 법률 용어인데, '착각방위'라고도 합니다.
[안준형/변호사 : 정당방위와 다른 점은 이런(위험한) 상황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행위자의 머릿속에서 착각으로만 존재했다는 거죠]
그런데 이 단어 법전에는 없습니다.
[안준형/변호사 : 오상방위는 법조문에 규정이 안 돼 있고요. 판례로, 법리로만 존재하는 개념입니다.]
착각방위는 중국 고전 삼국지에도 나옵니다.
칼 가는 소리에 여백사가 자신을 죽이려는 걸로 착각해 선수를 친 조조.
잔치에 쓸 돼지를 잡으려는 것 뿐이었는데 말이죠.
이제 실제 사례를 볼까요.
아들이 놀이터에서 중학생 형들에게 맞고 있다는 말에 달려나간 엄마.
아들과 함께 서 있던 학생을 밀쳤습니다.
엉뚱한 사람이었죠.
'착각방위'를 주장했지만, 안 받아들여졌습니다.
착각방위는 법정에서 거의 인정 안 됩니다.
착각은 자유라지만, 이 세상 누구라도 착각할 상황은 흔치 않죠.
시비 끝에 택시기사를 때린 승객 A씨.
법정에선 '차에 감금하는 줄 알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차가 경찰서로 향하는 중이란 걸 알려줄 단서가 있었죠.
착각방위, 당연히 인정 안됐습니다.
'벌금 200만 원' 착각할 만 했어도 대응 수위가 선을 넘으면 안 됩니다.
압수수색 영장 집행 중 한동훈 검사장에 달려든 정진웅 검사.
증거를 인멸하는 줄 알았다며 착각에 의한 정당행위를 주장했죠.
법원은 "말로 제지할 수 있었다"고 일축했습니다.
[백혜랑/변호사 : 적극적인 공격행위로 전환돼서 잘못 없는 제3자의 법익을 침해할 정도로 일어났다면 오상방위 개념을 인정하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아주 드문 인정 사례도 있습니다.
꽃게를 훔치던 사람들을 쫓다가 한 명을 걷어 차 다치게 한 양식업자.
알고보니 절도범 일행이긴 한데 꽃게를 직접 훔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착각방위, 인정됐습니다.
도둑질 방조 가능성도 있고 절도 현장에서 도둑으로 볼 수 있었단 이유 때문이죠.
평소 사이가 안 좋던 여동생이 자신의 어린 아이를 안는 걸 본 오빠.
던지려는 줄 알고 동생을 때렸습니다.
법원은 정황상 착각할 만 했다 결론 내렸습니다.
'무죄' 하지만, 역효과가 날 수도 있어 신중해야 합니다.
[안준형/변호사 :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보고 가중 처벌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백혜랑/변호사 : 행위를 인정하고 양형 주장을 하는 게 맞잖아요 "책임을 면하려는 의도가 드러나는 행위기 때문에 재판부에서 좋게 보지 않을 수 있죠.]
(취재협조 : 로톡 / 자료제공 : CHING)
(영상디자인 : 배윤주 / 영상그래픽 : 김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