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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76주년I왜,독일③] 악명 높은 대규모 강제수용소 그대로 보존 "현장서 사실대로 교육"

입력 2021-08-18 10:56 수정 2021-08-1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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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8·15 광복 76주년입니다. 일본은 아직 책임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적극적으로 역사를 왜곡하려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그래서 JTBC는 같은 전범국 독일을 다시 주목했습니다. 망각하는 국가와 반성하는 나라. 이 차이는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걸까요. 저희 취재진이 독일 현지를 찾아 그동안 덜 알려진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관계자들을 만났습니다.〉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던 수용소의 진실


'ARBEIT MACHT FREI'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베를린 근교 작센하우젠 수용소로 들어가는 철문.베를린 근교 작센하우젠 수용소로 들어가는 철문.
나치는 '진리'가 아닌 '노동'이 자유를 선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베를린 근교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로 통하는 철문에 이렇게 적혀 있죠. 아이러니하게도 이 문은 수감자들이 바깥으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지켜보는 감시탑 입구였습니다. 작센하우젠 수용소는 20만명 넘는 사람들이 수감됐던 악명 높은 곳입니다. 거대한 부채꼴 모양의 수용소 터 사방이 감시탑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나치가 꿈꾼 자유는 철저히 자신들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수감자들은 유대인과 동유럽 전쟁포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독일인이라도 나치 반대자나 동성애자 같은 당시 이른바 '비정상'으로 불린 사람이라면 누구든 가뒀습니다. 매일 각종 노동 현장에 끌려갔습니다. 전쟁 물자 생산 공장은 물론이고 일반 가정집과 농장, 심지어 성당 같은 종교 시설에서도 일했습니다. 독일인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강제동원 노동자가 있었습니다.


작센하우젠 수용소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감시탑과 철조망.작센하우젠 수용소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감시탑과 철조망.
특히 동유럽 출신자들이 더 혹독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극단적인 인종 차별 논리 때문이었습니다. 독일인과 만나는 것만으로도 처벌받았습니다. 독일인 남성 아이를 가진 여성은 공개 처형됐습니다. 이유 없는 죽음이 매일 반복됐습니다. 이런 희생자 수는 추정조차 어렵습니다. 그저 2천만 명 안팎이 독일 곳곳 수용소에 갇혀 일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 '샤워한다' 속인 뒤 학살한 가스실, 바로 옆 화장터까지 보존


작센하우젠 수용소 내부 창고. 수감자를 고문하기 위한 용도로도 쓰였다.작센하우젠 수용소 내부 창고. 수감자를 고문하기 위한 용도로도 쓰였다.
수용소 내부엔 당시 수감자 삶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침대와 세면실 같은 일상 시설은 물론이고 게슈타포에 체포된 수감자들이 따로 머물던 감옥과 고문실까지 원형에 가깝게 복원돼 있습니다. 장소마다 나치가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숨김없이 적었습니다.

작센하우젠 수용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설명. 역사적 사실을 왜곡 없이 적었다.작센하우젠 수용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설명. 역사적 사실을 왜곡 없이 적었다.
뮌헨 근교 다하우 강제수용소에선 더 참혹한 과거를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에게 '샤워한다'고 속여서 데려갔던 가스실. 물 대신 가스를 살포해 학살했습니다. 그 상태 그대로 바로 옆 화장터에서 시신을 처리했습니다. 죽음을 향한 순서를 기다리던 가스실 입장 대기실도 있습니다. 그곳에 섰던 유대인들의 심정은 어떻게도 표현하기 힘들 겁니다. 이곳에서만 3만명 안팎이 숨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뮌헨 근교 다하우 수용소 내부에 보존된 가스실로 통하는 문.뮌헨 근교 다하우 수용소 내부에 보존된 가스실로 통하는 문.
가스실 내부. 수만 명이 이곳에 갇혀 사망했다.가스실 내부. 수만 명이 이곳에 갇혀 사망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전역엔 이런 수용소가 3만 곳 이상 있었습니다. 생필품을 파는 슈퍼마켓만큼이나 많았습니다. 한꺼번에 수만 명이 함께 지낸 수용소도 있었지만, 도심 주택가 사이사이에도 자그마한 수용소들이 있었습니다. 수감자들은 이곳에서 매일 절망을 경험했고, 담 하나 사이에 두고 독일 시민들은 평범한 일상을 지냈습니다.

베를린 도심 강제동원센터. 수용소 터에 지어졌다. 지금은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베를린 도심 강제동원센터. 수용소 터에 지어졌다. 지금은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 "자원해서 배우러 와…다시는 이런 일 없어야" 현장에서 역사 배우는 독일 시민

코로나 확산으로 독일에서도 여행이나 견학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학생들과 관광객이 전쟁 범죄를 기록한 전시관과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독일 김나지움 재학 중인 15살 학생. 역사 공부를 하기 위해 자원해서 왔다.독일 김나지움 재학 중인 15살 학생. 역사 공부를 하기 위해 자원해서 왔다.
다하우 수용소에서 만난 15살 레너드 바이트쿠스와 릴리 피셔는 역사를 배우기 위해 스스로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학교에서도 독일이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고 배웠다"며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대부분 독일 시민들은 어두운 과거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반성하고 있었습니다. 독일 정부와 시민 사회가 함께 나서 사실을 낱낱이 기록하고, 전쟁 범죄를 끊임없이 공론화한 영향일 겁니다.

뮌헨 나치 기록관에서 강제동원 관련 전시를 보고 있는 사람들.뮌헨 나치 기록관에서 강제동원 관련 전시를 보고 있는 사람들.
일본 군함도를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군함도는 일제 강점기 수많은 우리 강제동원 노동자들이 일하고, 또 죽어갔던 곳입니다. 일본 정부는 앞장서서 군함도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강제 동원을 부정하고, 과거를 지워나가고 있습니다. 같은 전범 국가이지만 독일과는 너무나 다른 길을 택한 겁니다.

취재진과 만난 라인하트 쾨슬러 독일 정치사회학자.취재진과 만난 라인하트 쾨슬러 독일 정치사회학자.
반성을 거듭한 독일에선 오히려 이제껏 해온 일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취재진과 만난 라인하트 쾨슬러 독일 정치사회학자는 "독일이 희생자 아픔과 트라우마를 충분히 고민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취재진과 만난 독일 시민 사비네 볼만 씨.취재진과 만난 독일 시민 사비네 볼만 씨.
평범한 시민들도 아직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사과한 독일의 태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습니다. 매번 거의 같은 답이 돌아왔습니다. "평생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사과와 배상이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하혜빈 기자 ha.hebin@jtbc.co.kr

(제작지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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