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조연상을 수상한 박정민이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 사진=박세완 기자어엿한 백상의 남자다. 2016년 열린 52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남자신인연기상 주인공으로 생애 첫 트로피를 거머쥐었던 배우 박정민(35)이 5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조연상으로 같은 무대에 다시 올랐다. 2011년 데뷔 후 신인상을 받기까지 5년, 그리고 조연상을 받기까지 꼬박 5년의 세월이 흘렀다. 박정민은 "첫 5년과 두번째 5년은 느낌이 너무 다르다"며 그 사이 모양도 달라진 트로피를 연신 만지작거렸다.
배우의 업을 포기할까 고뇌하던 갈림길에서 만났던 인생작 '동주(이준익 감독)', 충무로 청춘 스타로 주연길을 승승장구 걷던 시기 찾아 온 인생캐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홍원찬 감독)' 유이. 그 해 가장 주목받은 작품에서 가장 돋보인 캐릭터로 늘 함께 빛난 박정민이다. 차곡차곡 쌓은 내공으로 때마다 대체불가의 한 방을 날릴 줄 아는 배우가 됐다. 10여 년의 성장을 모두가 함께 지켜봤기에 스스로 높여간 존재감이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또 한번 시상식 트로피를 수집하게 만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유이는 박정민에게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더 큰 캐릭터다. 알면 알 수록, 준비를 하면 할 수록 어려웠고 외로웠고 미안했다. "유이를 연기하면서 단 한번도 후련하다거나 개운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박정민은 '재미'라는 요소를 완전히 버려둔 채 조심스럽게 접근했고 배려하려 노력했지만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 끝내 미안했다. 그 모든 감정도 결국엔 유이로서 완성됐다. 황정민은 일찌감치 "얘 상 받겠다"고 예언했다는 후문이다.
믿고보는 배우가 펼쳐나갈 새로운 5년은 또 어떨까. "내 인생의 변곡점에는 우연이 끼어 있었다"는 겸손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배우 박정민을 바라보는 관객의 신뢰도는 해마다 상승한다. 연기하는 박정민의 중심에도 '관객'은 빼놓을 수 없다. "나와 같이 일하는 분들, 내가 나오는 영화를 봐주는 분들이 나를 얼마만큼 신뢰하느냐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관객들이 좋아해주는 배우가 되고 싶고, 그것이 연기를 오래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기도 하다. 내 역할을 고민하면서 가늘고 길게 연기하고 싶다."
※인터뷰②에서 이어집니다. -'기적'으로 먼저 만나게 될 줄 알았다. 개봉을 추진하다 보류 됐는데 아쉬움이 클 것 같다."개인적으로 그 작품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감정이 많이 이입됐다. 촬영하면서는 감독님을 좋아하게 됐고, 배우들과도 끈끈해졌다. 다들 이 영화를 걱정하고 좋아하는게 눈에 보이더라. 개봉에 대한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가장 좋은 시기에, '기적' 같은 만남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진심어린 따뜻함을 전해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열심히 기다리고 있다."
-'밀수' 촬영이 한창이다. 쉼없이 달리고 있는데. "파주에서 한달 정도 찍고 올라왔다. (이)성민 선배에 비하면 난 세발의 피다. 그 정도의 체력이 없다. 하하. 그래서 운동도 시작했다. 이제는 안하면 몸이 아프더라. 필라테스도 하고 여러가지 것들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살기 위해 운동 하는거야'라고 했던 마음을 절실히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오히려 현장에 있을 때가 덜 힘들다. 딱 내가 할 것, 연기만 하면 되니까. 집에 있으면 사부작거리면서 쓸데없는걸 계속 한다. 아주 피곤하다."
제5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조연상을 수상한 박정민이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 사진=박세완 기자"누구의 말은 누구의 말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이래서 인터뷰가 힘들다. 심지어 내 말을 내가 번복해야 하니까. 으하하. 지금은 스트레스까지 받지는 않는다. 현장에서 크고 작은 우연이 생길 때 그걸 어떻게 받아 먹느냐가 중요한데, '우연에 몸을 맞기는 것이 중요하겠구나'라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과 잘 지내고, 감독님·배우들과 농담 따먹기 하면서 잘 지내려고 한다. 함께라는 것을 체감하면서 스트레스 받는건 좀 줄었다."
-연기를 시작한 후 상상해봤을 미래의 배우 박정민은 현재의 모습일까."언젠가부터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는걸 멈췄다. '몇 살이 됐을 때 어떤 모습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했다. '되는대로 내 리듬이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포기했다.(웃음) 정말 어렸을 때, 열아홉살, 스물살 땐 서른살이 되면 엄청 유명한 배우가 돼 있을 줄 알았다. 영화감독이 하고 싶은지, 배우가 하고 싶은건지 꿈도 명확하지 않았을 시기다. 근데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은 있고. 아무것도 실행하지 않으면서 고민만 했다. 머리로는 아주 청산유수였다. 하하. 그래서 빨리 서른살이 되고 싶기도 했다."
-찬란한 30대를 맞이했다."아~무것도 변한 건 없더라. 뭐 마흔살 정도 되면 달라질까? 하하. 뭐든 상상하는건 잘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깊게 걱정하는 것도 현실화가 되지 않는 것처럼. 계속 그 과정을 반복하다보니 '내 인생의 변곡점에는 우연이 끼어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어떤 우연이 다가왔을 때 잡느냐, 마느냐'는 지금 따져봤자 소용이 없더라. 전혀 생각지 못한 순간에 찾아오니까. 왔을 때 대응하기도 바쁜데 상상? 불평 불만만 생긴다.(웃음)"
-스스로에게 칭찬해주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남들 열심히 사는 것만큼은 살고 있구나. 남들보다 몇 배나 노력한다고는 못하겠고. 친구들 사는 모습을 보면서 '저 정도는 살아야 열심히 산다고 할텐데' 싶을 때가 많다. 그래도 평소 내가 하는 일과들을 돌이켜보면 시간대가 다를 뿐이지 '친구들 사는 것처럼은 살고 있구나' 생각한다. '넋 놓고 있지는 않구나'라는 것에 점수를 주고 싶다."
제5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조연상을 수상한 박정민이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 사진=박세완 기자"성격개조. 반 포기 상태이기는 한데 아직 반만 포기했다. 진짜 포기할거면 확 해야 하는데 마음이 불편해서 절반을 계속 남겨두고 있다. 고마운 분들 자주 찾아뵙고 싶고, 그렇게 해야 하는데 잘 안 된다. 혼자있는 시간을 못 버리기도 하고, 사람 안 만나는 것에 점점 더 익숙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뜯어 고치고 싶다."
-'배우 박정민'이라는 표현에 대한 스스로의 신뢰도는 높아졌나. "전혀.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어떤 작품에 참여하면 같이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신뢰를 줘야 하는 것은 맞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신뢰를 주려고 늘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현장에서 박정민이 아닌 그냥 박정민을 곰곰히 생각해 봤을 땐 그렇게 믿을만한 구석이…. 하하하. 내가 경계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나를 알아보고 사진 요청을 해주실 땐 너무 고맙다. '어우, 내가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알아봐 주는 사람이 됐구나' 싶어 다행이기도 하다. 근데 딱 그 정도다. 무엇보다 내가 나를 신뢰하는건 그렇게 중요한건 아닌 것 같다. 나와 같이 일을 하는 분들, 내가 나오는 영화를 보는 분들이 나를 신뢰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 신뢰도는 마치 주식처럼 하루가 다르게 오르내릴텐데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 같다."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나."삼성전자 같은 배우가 되는 것이…. 하하. 모든 배우 분들의 마음이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관객 분들께서 좋아해주는 배우가 되는게 우선일 것이다. 그게 연기를 오래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힘일테고. 내가 아무리 어떻게 하겠다고 해도 관객 분들이 '어쩌라고' 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닌거니까. 저라는 배우에게 어떤 것을 기대하고 계시는지, 어떤 영화를 보고 싶어 하시는지, 영화를 할 때 어떤 역할을 해드려야 되는지에 대한 것들을 계속 고민하면서 가늘고 길게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되도록 하겠다."
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사진= 박세완 엔터뉴스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