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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②] 박정민 "미안하고 외로웠던 '다만악'…황정민 '상 받겠다' 예언"

입력 2021-08-06 15:08 수정 2021-08-0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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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조연상을 수상한 박정민이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 사진=박세완 기자제5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조연상을 수상한 박정민이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 사진=박세완 기자

어엿한 백상의 남자다. 2016년 열린 52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남자신인연기상 주인공으로 생애 첫 트로피를 거머쥐었던 배우 박정민(35)이 5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조연상으로 같은 무대에 다시 올랐다. 2011년 데뷔 후 신인상을 받기까지 5년, 그리고 조연상을 받기까지 꼬박 5년의 세월이 흘렀다. 박정민은 "첫 5년과 두번째 5년은 느낌이 너무 다르다"며 그 사이 모양도 달라진 트로피를 연신 만지작거렸다.

배우의 업을 포기할까 고뇌하던 갈림길에서 만났던 인생작 '동주(이준익 감독)', 충무로 청춘 스타로 주연길을 승승장구 걷던 시기 찾아 온 인생캐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홍원찬 감독)' 유이. 그 해 가장 주목받은 작품에서 가장 돋보인 캐릭터로 늘 함께 빛난 박정민이다. 차곡차곡 쌓은 내공으로 때마다 대체불가의 한 방을 날릴 줄 아는 배우가 됐다. 10여 년의 성장을 모두가 함께 지켜봤기에 스스로 높여간 존재감이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또 한번 시상식 트로피를 수집하게 만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유이는 박정민에게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더 큰 캐릭터다. 알면 알 수록, 준비를 하면 할 수록 어려웠고 외로웠고 미안했다. "유이를 연기하면서 단 한번도 후련하다거나 개운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박정민은 '재미'라는 요소를 완전히 버려둔 채 조심스럽게 접근했고 배려하려 노력했지만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 끝내 미안했다. 그 모든 감정도 결국엔 유이로서 완성됐다. 황정민은 일찌감치 "얘 상 받겠다"고 예언했다는 후문이다.

믿고보는 배우가 펼쳐나갈 새로운 5년은 또 어떨까. "내 인생의 변곡점에는 우연이 끼어 있었다"는 겸손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배우 박정민을 바라보는 관객의 신뢰도는 해마다 상승한다. 연기하는 박정민의 중심에도 '관객'은 빼놓을 수 없다. "나와 같이 일하는 분들, 내가 나오는 영화를 봐주는 분들이 나를 얼마만큼 신뢰하느냐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관객들이 좋아해주는 배우가 되고 싶고, 그것이 연기를 오래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기도 하다. 내 역할을 고민하면서 가늘고 길게 연기하고 싶다."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제5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조연상을 수상한 박정민이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 사진=박세완 기자제5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조연상을 수상한 박정민이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 사진=박세완 기자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개봉 당시에는 히든카드·비밀병기 캐릭터라는 이유로 인터뷰를 진행하지 못했다. 연이은 수상은 유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한 빅픽처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면 홍보할 때 유이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괜한 말을 꺼낼 수도 있고…. 정말 이제야 이렇게 이야기를 하게 된다."

-유이는 어떤 인물보다 캐릭터적인 느낌이 강했다. 모든 배우들이 한번쯤 탐을 낼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연기를 더 잘해내야 하고 결과에 대한 리스크가 클 가능성도 높다. 선택에 어려움은 없었나.
"선택을 할 땐 주저하지 않았다. 문제는 선택을 하고 나서 항상 늪에 빠진다는 것이지.(웃음) 처음엔 '재미있겠는데?' 했다가 준비하면서 곤욕을 치른 작품이 많다. 유이 역시 그랬다. 막상 시작을 하려고 보니 '이걸 무슨 연습을 해?' 생각만 들지 연습할 것도 마땅치 않고, 캐릭터적인 연구를 해야 하는데 그것도 좀 이상했다. '그분들을 만나볼까?' 싶어서 소개를 받아 일하는 곳을 직접 찾아간 적도 있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어때요?' 하기에도 애매하더라. 그저 지켜본 것이 전부였는데 누군가 일하는 것을 구경한다는 자체도 몹시 미안했다."

-고민의 과정과 내용도 이전 캐릭터들과는 확연히 달랐을 것 같다.
"맞다. 유이는 조금 다른 형태의 마음이다. 미안한 마음이 가장 크다. 나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시사회 날 딱 한번 밖에 못 봤다. 이후에는 잘 못 보겠더라. 코멘터리 녹음을 할 때도 유이가 나오면 자꾸 말을 돌렸다. 배우가 연기하는데 있어 많은 요소들이 필요하고,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다르고, 나도 역할을 맡을 때마다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접근하는 방식도 좀 달라지는데 이 역할은 '배려'를 많이 해야 하는 역할이라 생각했다."

-조심스러웠던 마음일까.
"그러한 캐릭터 성향을 갖고 있는 소수자 분들이라고 해야 할까? 큰 영화에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는 것인데, 재미적인 요소로만 접근하는 순간 우선 엄청 욕을 먹을 것 같았다. 그 마음을 좀 헤아려보고자, 유이라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보려고 나름 공부도 했던 것인데 사실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잘 모르겠더라. 그 분들이 갖고 있는 응어리라든지 평소에 갖고 있는 제한적인 것들은 내가 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온전히 알 수는 없었다. 표피적으로만 알지. 그래서 연기하면서도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결국 해냈다.
"그럴까.(웃음) 의지할데가 없어 좀 외로운 싸움이기도 했다. 태국에 매니저도 없이 혼자 갔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싶더라. 많은 분량은 아니라 촬영이 없을 땐 혼자 고립돼 있는 느낌도 들고. 방콕 시내를 막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아직도 생각해보면 내 연기에 있어서만큼은 그렇게 뭔가 명쾌한 작업이 아니었다. '후련하다' 이런 느낌도 아니고. 근데 많이 좋아해 주시니까 당혹스럽고. 아휴…. 뭔가 선뜻 입을 떼기가 어렵다."

-그래서 완성된 영화를 보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것일까.
"다른 영화를 찍을 때보다 '이거 좀 괜찮은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한번도 없다. 개운한 마음이 적었다. 그런 감정들이 영화가 나왔을 때 온전히 되살아나더라. 내가 찍었던 그 상황들을 나는 기억하고 있으니까. '저 장면은 어떻게 찍었고, 저 신을 찍을 때 내 마음은 어떠했고' 전부 떠오르니까 영화를 보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관객 분들이 저를, 유이를 보면서 좋아해 주시는건 너무나 감사하지만 그 분들에게는 좀 다른 이야기 아닌가. 여전히 복합적이다."
 
제5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조연상을 수상한 박정민이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 사진=박세완 기자제5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조연상을 수상한 박정민이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 사진=박세완 기자


-과거 인터뷰에서 소속사 선배이기도 한 황정민에게 '고맙고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언급했다. 함께 한 작품으로 좋은 결과를 얻었는데 그 보답이 조금이라도 됐을까.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함께 한 과정부터 결과까지 형에게는 그저 또 감사한 마음 뿐이다. 회사에 10년을 있었지만 이번 영화를 찍을 때만큼 형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형도 매니저 없이 움직여서 진짜 달랑 둘이 태국에 머물렀다. 정민이 형과 같이 많이 돌아다녔고, 이야기도 많이 했고, 좀 더 사이가 돈독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정민이 형이 아니었으면 이 영화를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홍원찬 감독과는 영화 '오피스'를 함께 한 인연도 있지 않나.
"맞다. 정민이 형이 참여하기로 하시고 감독님과 인연도 있어 합류하게 됐는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쨌든 정민이 형 때문이었다. 영화 찍기 1년 전 쯤이었나. 되게 오래 전에 정민이 형은 이미 출연을 결정지어둔 상황이었고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저는 할거 없어요?'라고 슬쩍 먼저 물어보기도 했다.(웃음) 그땐 없었다."

-등장 인물이 최종 버전과는 달랐나.
"달랐다. 원래는 유이 역할이 없었다. 시나리오가 수정되는 과정에서 탄생한 캐릭터다. 그 역할을 누가 할지 다들 궁금해 했다고 하더라. 캐릭터 특성상 당연히 잘생기고 곱상한 배우가 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감독님께서 '정민이에게 줘 보고 싶다'고 하셨다고 했다. '어?' 하면서도 '독특한 캐스팅이다' '좋은 것 같다'는 피드백이 나와 정말로 시나리오가 나에게 오게 됐다. '왜 나한테 이런 역할을 주려고 하실까?' 싶었는데 미팅을 진행하고 감독님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여성의 옷을 입고 화장을 한다고 해서 곱상해 보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는 뜻이 담겨 있었고, 캐릭터에 변주를 주고 싶다는 마음이 통했다."

-첫 촬영이 가장 힘들었을 것 같은데.
"유이의 첫 등장신이 첫 촬영이었다. 무대 위에서 가발쓰고 노래하는. 진짜 정말 너무 부담이 많이 됐다. 누가 안무를 짜주는 것도 없었다. 숙소에서 관련 영상을 보면서 혼자 연습했다. 몸짓이긴 하지만 나름 춤도 만들고 그랬다. 지금까지 연기하면서 그날처럼 긴장했던 날이 없다. 긴장이 잘 풀리지 않아 촬영 직전에 맥주도 한 병 마셨다. 나중에 보니까 대여섯 병을 마셨더라. 하하. 그나마 도움이 됐다."

-당연하겠지만 영화에서는 전혀 티나지 않았다.
"나중에는 감독님도 만족해 하시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었다.(웃음) 첫 촬영은 정민이 형도 현장에서 지켜봤다. 본격적인 촬영 전에 제작진이 '리허설 할게요'라고 하길래 대충 '이런 식이에요~'라면서 동작을 보여 드렸다. 리허설이라서 설렁설렁 추는데 정민이 형이 그날따라 일찍 오셔서 리허설부터 보고 계셨던거다. 바로 '너 이렇게 할거야?' 하시더라. 하하. 번쩍 정신차리고 '제대로 하겠습니다' 했다. 형 덕분에 긴장이 풀린 것도 있다."

-그래도 칭찬 많이 받았을 것 같다.
"내 촬영 분량을 마치고 출국을 위해 비행기를 타러 가는데 정민이 형이 제작사 대표님과 함께 '얘 상 받을 것 같아!'라는 말씀을 하시더라. 현장에서는 특별한 칭찬을 안해주셨다. 별 말씀이 없어서 '나 되게 못하고 있나? 왜 좋은 말씀 안 해주시지?' 그런 생각도 가끔 했고, '뭐 안 좋은 말 안 해주는 것 만으로도 어디야' 싶기도 했다. 근데 마지막에 딱 그 말씀을 해주셔서 내심 안도했다. 현실이 돼 신기하기도 하다."

 
제5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조연상을 수상한 박정민이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 사진=박세완 기자제5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조연상을 수상한 박정민이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 사진=박세완 기자
-사실은 책방 인터뷰를 요청할까 싶었는데 그 사이에 문을 닫았다고 알렸다.
"책방은 아예 정리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불거지고…. 재정적인 부분이 큰 건 아니었는데 말 못할 사정들이 있어서 깔끔하게 접었다."

-처음 책방을 열었을 땐 뇌구조가 당시의 작품과 책방으로 가득하다고 했었다. 책방이 사라진 빈자리는 무엇으로 채워졌나.
"지금은 촬영이 우선이다. 잘해내는게 관건이라.(웃음) 촬영을 제외하고는 일상 생활에서 나를 채워주는 어떤 것은 그때 그때 달라지기는 하는데, 지금은 단편영화를 찍은 것 때문에 바쁘다."


-후반작업 중인가.
"촬영은 끝났다. 백상에 갔을 때가 촬영 주간이었다. 그래서 더 정신이 없기도 했다.(웃음) 지금은 후반작업을 하고 있는데 기사님이 계시긴 하지만 같이 열심히 만져보고 있다. 엄청 훌륭한 작품을 보여드리는건 힘들어도 '볼만한 것은 보여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편집만 두달째 매달리고 있다."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될 것 같은데.
"'1승'을 찍고 있을 때 제안 받았고 처음엔 그런 거창한 뜻도 아니었다. 그냥 (이)제훈이 형이 하는 거니까. 형을 좋아하고 신뢰하니까 '나 안 할래' 할 수 없었던건데 하다보니 재미있더라.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재미있게 찍었던 기억도 올라오고,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너무 잘 도와주셔서 푹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제훈이 형과 영화사 하드컷을 같이 설립한 양경모 감독은 나와 영화과 동기이기도 하다. 학교 다닐 때도 많이 챙겨주고 용기를 줬던 분이라 더 마음이 갔다."


〉〉인터뷰③에서 계속

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사진= 박세완 엔터뉴스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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