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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기운 차리시라고…" 화투패 대신 '마음' 맞춘 간호사

입력 2021-08-03 16:38 수정 2021-08-04 13:35

할머니와 방호복 입은 의료진 '화투판'
SNS서 감동 준 음압병상 사진 한 장
올해 '간호사 현장 사진전' 출품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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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방호복 입은 의료진 '화투판'
SNS서 감동 준 음압병상 사진 한 장
올해 '간호사 현장 사진전' 출품작

″할머니 떨어지실라″ 침대 치우고 ″기운 차리시라고″ 집어든 화투패. 〈사진=대한간호협회〉″할머니 떨어지실라″ 침대 치우고 ″기운 차리시라고″ 집어든 화투패. 〈사진=대한간호협회〉
침대 대신 이불이 깔린 병실에 화투판(?)이 벌어졌습니다. 할머니 앞엔 방역규정대로 방호복을 갖춰 입은 의료진이 앉아 있습니다. 할머니의 흰머리가 나이를 짐작하게 합니다. 앉아있기도 버거워 보이는 할머니는 베개에 몸을 기댔지만, '패'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바닥에 놓인 패를 볼 때, 할머니의 승리(?)가 눈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한 SNS에 올라온 이 한장의 사진이 온종일 시선을 끌었습니다. 밤낮없이 이어지는 폭염과 휴가철을 정통으로 관통한 코로나19 4차 유행 때문에 지친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사진엔 어떤 문구도 설명도 쓰여 있지 않지만, 왜 병실에서 이런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지 누구라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별다른 설명이 없었기에 이 사진이 촬영된 곳과 의료진이 누구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진에 대한 비밀이 풀렸습니다.

■ 주인공은 93세 치매 할머니와 삼육서울병원 간호사

사진 속 주인공은 93살 박 모 할머니입니다. 사진은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인 지난해 8월에 촬영된 것입니다. 박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었습니다. 요양원에서 생활하던 할머니는 그만 코로나19에 감염됐습니다. 고령의 할머니는 코로나와 맞서 싸울 힘이 없었습니다. 고열로 체력은 금세 떨어졌습니다. 삼육서울병원에 옮겨진 할머니는 곧바로 음압 병상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병원 의료진의 '살가운 배려'는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먼저 할머니가 떨어져 부상을 입을까봐 침대를 치웠습니다. 사진 속 병실이 '온돌방'처럼 보인 이유입니다. 박 할머니는 혼자 생활하는 것을 매우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증 치매까지 앓고 있는 할머니를 다른 환자들과 함께 생활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치매에 보호자도 없이 홀로 병실에 계시는 게 너무 위험해 보였고, 입원 이튿날부터 놀이 시간을 만들게 됐습니다." 〈간호사 양소연 씨〉

간호사들이 '보호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마침 재활 치료 간호 경험이 있는 한 간호사가 제안을 했습니다. 화투를 치면서 꽃 그림을 맞추고 치매 환자용 그림책에 색연필로 색칠하기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활동이 적적한 시간을 잊을 수 있는 데다 치매의 진행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그림을 그리면서 그렇게 졸음을 참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간호사 10여 명이 돌아가면서 할머니와 그림을 그렸습니다. 식사를 챙기고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등, 코로나 치료 외 해야 할 일도 많았지만 이겨냈습니다.

■ 치매 할머니 위해 침대 치우고 '살가운 배려'

그리고 사진 속 또 한 명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코로나 환자들을 돌보는 것은 저도 감염될까 두렵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환자들을 안심하게 배려하고, 잘 치료받고 퇴원하시도록 돌봐주는 것밖에 없어요” 〈간호사 이수련 씨〉

격리병상에서 환자가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은 간호사들뿐이었습니다. 이수련 씨는 "계속 졸기만 하는 할머니를 깨우고 달래 기운을 차리게 하는 방법이 없을지 궁리한 결과였어요”라고 설명합니다. 수련 씨가 사진 속에서 화투패를 집어 든 이유입니다.

화투패가 아닌 마음을 맞춘 이야기, 이 사진은 올해 대한간호협회가 공모한 '제2차 간호사 현장 수기·사진전'에 출품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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