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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당 100~500원" 고무줄 배달수수료 안 돼…계약서에 '콕' 박아야

입력 2021-07-22 16:46 수정 2021-07-2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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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마포구의 한 배달대행업체 지사를 찾아갔다. 배달기사들이 잠시 쉬고 있었다. 〈사진=JTBC〉 서울 마포구의 한 배달대행업체 지사를 찾아갔다. 배달기사들이 잠시 쉬고 있었다. 〈사진=JTBC〉

어제(21일) 서울 마포구에서 배달기사들의 계약 상황에 대해 취재했습니다.

제가 만난 배달기사들은 대부분 "계약서를 쓰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한 배달대행업체의 A지사를 찾아갔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배달기사 두 명이 쉬고 있었습니다.

혹시 업체에만 유리하고 기사들한테는 불리하거나 부당한 경험을 했느냐 물었더니 "당한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다"는 의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일한만큼 대우 받으면서 일한다고 생각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배달기사들은 "경쟁이 치열한 서울에서는 기사한테 부당하게 대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사진=JTBC〉배달기사들은 "경쟁이 치열한 서울에서는 기사한테 부당하게 대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사진=JTBC〉

A지사장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서울에서는 이미 배달대행업체의 경쟁이 치열해서 배달기사 모셔오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부당하게 대우했다가는 다른 업체로 기사들이 옮겨간다는 것입니다.

다만 수도권 중에서도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곳이나 수도권 이외의 더 한적한 동네로 갈수록 한 업체의 독점 체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그런 곳은 배달기사에게 불리한 대우를 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다시 배달기사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계약서를 쓰고 일하는지, 부당한 내용은 없는지 말입니다.

한 기사는 "일한 지 4년쯤 됐고 많은 업체를 옮겨다녔는데 맨 처음 일할 때만 계약서를 썼고 나머지는 소개로 가서 계약서를 쓴 적 없다"고 말했습니다.

옆에 있던 다른 기사도 "써본 적은 없다"고 답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국토교통부, 서울시, 경기도, 한국공정거래조정원과 합동으로 지역 배달대행업체와 배달기사 간 계약서를 점검한 결과 124개 업체가 표준계약서를 채택하거나 계약서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을 자율적으로 시정하기로 했다고 오늘(22일) 밝혔습니다.

지난 1월 우아한청년들, 쿠팡 등 통합형 배달대행 업체와 배달기사 간 계약서를 점검한 것의 연장선 상입니다.

이번 점검 대상은 서울·경기 지역에 있으면서 배달기사 50명 이상이 있는 분리형 배달대행 업체 163곳이었습니다.

대표적인 분리형 배달대행 업체는 로지올, 바로고, 메쉬코리아 등으로 각각 생각대로, 바로고, 부릉이라는 서비스를 운영 중입니다.

기존 계약서에서는 배달료를 기재하지 않거나, 일방적으로 수수료를 변경할 수 있는 점, 불합리한 배상책임 규정, 계약해지 후 경업금지 의무 부과, 배달기사가 다른 업체의 배달을 못하게 하는 점, 일방적 계약 해지 등 여러 문제 조항이 드러났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역 배달대행업체와 배달기사 간 계약서를 점검한 결과 많은 부분에서 배달기사에게 불리한 조항이 있었다. 〈사진=공정거래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가 지역 배달대행업체와 배달기사 간 계약서를 점검한 결과 많은 부분에서 배달기사에게 불리한 조항이 있었다. 〈사진=공정거래위원회〉

많은 계약서가 배달기사가 받아야 할 배달료를 기재하지 않아 배달기사가 소득을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는 기본배달료를 계약서 안에 명시하고 상황에 따른 추가금액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일부 계약서는 업체의 건당 수수료를 100~500원 등 범위로 정하고 바뀔 수 있는 사유에 대해서는 명시하지 않아 업체가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게 돼있습니다.

앞으로는 계약서에 건당 수수료(율)를 명확히 정하고, 수수료의 변동이 필요한 경우 그 사유와 금액을 계약서 안에 쓰게 됩니다.

많은 계약서가 사고가 발생할 경우 귀책사유와 무관하게 업체의 책임을 완전히 면하는 규정을 넣어놨습니다.

앞으로는 업체에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 책임을 분담하게 됩니다.

대부분 계약서가 영업비밀 보호를 이유로 기간의 제한을 두지 않고 계약을 해지한 뒤에 경업을 금지하는 조항을 두고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경업금지 의무는 인정하되 계약이 존속되는 기간 동안만 유지하게 했습니다.

일부 계약서는 배달기사가 여러 배달대행업체의 업무를 수행하는 걸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배달기사가 여러 업체로부터 업무를 받아 수행할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계약서가 배달기사의 단순한 계약상 의무 위반이나 분쟁 발생을 이유로 통지나 항변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업체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배달기사의 단순 계약상 의무 위반은 업체가 미리 통지하고 시정·항변의 기회를 주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운전면허의 정지 또는 취소, 고객에 대한 범죄행위 등 계약의 목적 달성이 현저히 곤란한 사항 등에 대해서만 해지가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계약서를 쓴 적이 거의 없다"고 하던 배달기사는 "그래도 쓰면 권리가 보장될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JTBC〉 "계약서를 쓴 적이 거의 없다"고 하던 배달기사는 "그래도 쓰면 권리가 보장될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JTBC〉

어제 만났던 배달기사들은 계약서가 시정된다는 소식에 "계약서를 쓰는 건 좋은 것 같다. 권리가 더 보장되는 느낌"이라고 말했습니다.

배달기사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다만 서울, 경기권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더 많은 배달기사가 표준계약서를 작성하고 일할 수 있도록 시정 지역을 확장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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