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150년 전 '경복궁 화장실' 유적 발굴…정화시설도 있었다

입력 2021-07-08 21:11 수정 2021-07-09 13:57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앵커]

프랑스 베르사유궁에는 화장실이 없었다고 하죠. 조선 제일의 궁궐인 경복궁에는 '직원 화장실'이 있었습니다. 150년쯤 전에 만들어진 걸로 추정되는 궁궐의 화장실 유적이 처음으로 발굴됐는데 현대식 정화조 시설도 갖췄습니다.

이선화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기자]

조선시대 왕이 살던 내전에는 화장실이 없었습니다.

대신 이동식 변기인 '매화틀'을 이용했습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 (이틀 동안 측간을 못 찾아서.) 다음부터는 매화틀을 들이라 하십시오.]

그렇다면 궁녀와 군인은 '급한 용무'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이들이 상주하던 경복궁 동궁 남쪽에서 대형 화장실 유적이 발굴됐습니다.

조선 궁궐의 화장실 유적이 확인된 건 처음으로, 19세기 중반 만들어진 걸로 추정됩니다.

이 아래가 정화조 시설입니다.

길이는 10m 정도 되는데요.

이 위로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던 걸로 추정됩니다.

문헌에 따르면 화장실은 네 칸 혹은 다섯 칸이었을 걸로 보이는데, 한 칸에 두 명씩 들어갈 수 있어 한 번에 최대 열 명이 이용했을 걸로 파악됩니다.

토양 분석으로도 화장실터였음이 확인됐습니다.

오이와 가지, 들깨 씨앗이 함께 나온 데다, 그램 당 1만 8000건이 넘는 기생충 알이 검출된 겁니다.

제법 과학적인 정화조 시설도 갖췄습니다.

낮은 곳에 구멍을 만들어 외부의 물을 끌어와 분뇨를 발효시켰고, 위에 뜬 오수는 좀 더 높이 있는 두 개의 구멍으로 나가게 했습니다.

[오동선/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학예사 : 변들이 밖으로 넘쳐나서 주변을 오염시키거나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150년 전에 만들었던 대형 화장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로써는 유례없는 이 시설에는 분뇨를 모아 저장하는 우리의 문화가 영향을 미쳤을 거란 분석입니다.

[이장훈/한국생활악취연구소장 : 해외에선 분뇨를 모아서 처리하는 사고방식 자체가 없었고, 우리나라의 경우엔 퇴비를 농사에 활용하는 그런 문화를 갖고 있다.]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