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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방송 때마다 톱질한 신창원, 치밀했던 도주사건 뒷이야기

입력 2021-07-03 11:40 수정 2021-07-0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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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JTBC 캡쳐〉〈사진-JTBC 캡쳐〉
'희대의 탈옥수'로 불리는 신창원의 도주 사건 뒷이야기가 공개됐습니다.

오늘(3일) 부산교도소는 개청 50주년을 맞아 '부산교도소 50년사'를 발간했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에는 탈옥수 신창원의 이야기도 담겨 있습니다. 신창원은 1997년 부산교도소에서 수감하던 중 도주한 인물입니다.

책에 따르면 신창원은 탈옥하기 수개월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습니다.

탈옥하기 쉬운 몸을 만들기 위해 3개월 동안 80kg이던 체중을 60~65kg까지 줄였습니다. 이때 교도소 측에는 변비가 있다고 알리면서 식사량을 조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차량 열쇠 없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방법에 대해 주변 재소자에게 물어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997년 1월 20일 오전 2시쯤 실제로 탈옥을 실행했습니다. 수용소 화장실 안 환기구를 통해 빠져나갔습니다. 이후 흙을 파내 인근 공사장에 진입했고, 교도소 외벽을 타고 도주했습니다.

〈사진-JTBC 캡쳐〉〈사진-JTBC 캡쳐〉
도주 통로가 된 환기구에 설치된 쇠창살은 교도소 창고에서 훔친 쇠톱으로 절단했습니다. 야간 음악방송 시간 때마다 조금씩 작업했다고 합니다. 음악 소리에 톱질 작업이 잘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겁니다.

도주 직후 자전거와 택시를 타고 달아난 신 씨는 서울 천호동에 잠입했습니다. 수감 전 동거하던 여성을 만나기 위해 그가 일하던 가게를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거녀를 만나지 못했고, 천안으로 내려가 숨어 살았습니다. 그러다 1999년 7월 16일 전남 순천의 한 아파트에서 동거녀와 함께 숨어 살던 중 가스관 수리공의 제보로 체포됐습니다.

신창원은 탈옥 후 붙잡히기까지 907일 동안 전국에서 105회에 걸쳐 9억 8천여만 원 상당의 강도와 절도 행각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부산교도소는 책을 통해 "신 씨가 무기징역에 대한 절망감으로 난동을 부리고 흡연 때문에 징벌을 받자 교도소 생활에 염증을 느꼈다"면서 "수감 전 만났던 애인을 보고 싶어했고 자신을 신고한 사람에 대한 불만도 복합적으로 작용해 탈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부산교도소에 따르면 연인원 97만 명의 경찰 인력이 신 씨의 도주 사건에 동원됐습니다.

〈사진-JTBC 캡쳐〉〈사진-JTBC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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