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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서 쏟아져 나온 금속활자…더 파면 더 나올까?

입력 2021-06-30 18:50 수정 2021-07-0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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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사동에서 나온 조선 전기 금속활자. 〈사진=문화재청〉서울 인사동에서 나온 조선 전기 금속활자. 〈사진=문화재청〉

"금이 간 항아리를 들어올리는데, 거기서 공깃돌 같은 게 두 세점이 떨어졌어요. 세척해보니 금속활자였습니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수도문물연구원의 오경택 원장은 서울 인사동 땅속에서 쏟아져 나온 금속활자를 수습할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소식이었죠. 말로만 전해지던 과학 유물이 무더기로 발견됐습니다. 조선 전기에 제작된 금속활자 1,600여 점을 비롯해 세종~중종 때 제작된 물시계의 부속품, 세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천문시계 '일성정시의' 1점, 중종~선조 때 만들어진 총통류 8점, 동종 1점이 한 번에 나왔습니다.

 
금속활자 발견 당시 모습. 〈사진=문화재청〉금속활자 발견 당시 모습. 〈사진=문화재청〉

수도문물연구원은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지난해 3월부터 도시환경정비사업의 일환으로 탑골공원 인근을 정밀 발굴 조사 하고 있었는데요. 이처럼 많은 금속 유물이 한꺼번에 발견된 건 처음이라고 합니다. 어제(29일) 전문가들과의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 중, 뉴스룸에 다 담지 못한 부분에 대해 1문 1답 형식으로 풀어볼까 합니다.

(6월 29일 JTBC 뉴스룸 기사 참고 : 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2014322 )

Q. 금속활자와의 첫만남을 설명해주세요.

A. 6월 1일, 가장 먼저 총통을 발견했습니다. 총통은 그간 서울 도심에서 몇번 발굴된 사례가 있었던 유물입니다. 더 밑부분을 조사하던 중 항아리를 발견했는데요. 항아리 역시 도심에서 흔하게 발견돼 큰 기대는 없었죠. 그런데 항아리의 일부분이 떨어져나오는 과정에서 공깃돌같은 작은 금속이 두 세점 떨어졌습니다. 제 새끼손톱 한 마디만한 크기였는데, 이걸 세척해 확인해보니 금속활자였던 거죠. 현장에선 하나씩 분류작업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긴급하게 항아리 전체를 연구원으로 옮겼습니다.

 
'하며' '하고' '이나' 등 한글토씨 두개를 한 번에 주조한 연주활자'하며' '하고' '이나' 등 한글토씨 두개를 한 번에 주조한 연주활자

Q. 금속활자가 이런 식으로 나온 적이 있나요?


A. 한 번도 없었습니다. 가끔 금속 유물이 나오면 문에 쓰는 고리라든가 못 등이었고요. 이번에 발견했을 당시엔 진흙이 묻어있어서 돌인지 금속인지 저희도 구분이 안 됐습니다. 그런데 활자여서 모두가 정말 깜짝 놀랐죠.

Q. 발견된 장소가 민가로 추정되는 곳이라고요?

A. 조선 전기까지는 한성부 중부 8방 중 하나로,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인 견평방에 속했던 곳이긴 합니다. 그러나 건물 모양으로 추정할 때 관에서 지은 건 아닌 것으로 보이고요. 기록을 찾아보니 시전이 가까이에 있어서, 상인이 살았던 곳 혹은 일반 주민이 살았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번 금속 유물이 확인된 곳은 창고 터로 보입니다.

 
금속 유물 출토 위치. 〈사진=문화재청〉금속 유물 출토 위치. 〈사진=문화재청〉

Q. 일반인이 가지고 있기 어려운 귀한 유물같은데요.

A. 맞습니다. 저희도 그게 의문인데요. 아마 누군가 동(구리)을 녹여 재활용하기 위해 숨겨두었거나, 임진왜란 때 묻어둔 뒤 되찾으려다 그러지 못한 게 아닐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종종 제기나 화로, 향로 등 동으로 만든 것들이 민가에서 나온 사례가 종종 있긴 합니다. 당시에도 동은 귀하고 값이 나갔기 때문에 숨겨놓았던 것으로 보여요. 하지만 금속활자나 과학 유물들이 한 번에 묻혀있던 건 저희도 처음이라 앞으로 연구를 진행해봐야 합니다.

Q. 더 파보면 더 많은 유물이 나오겠네요?

A. 하하. 그런 기대를 많이 하시는데요. 먼저 구조를 설명드릴게요. 서울 땅밑은 한 세기마다 겹겹이 쌓여서 20세기까지 층위가 형성됐다고 보면 되는데요. 이번에 유물이 발견된 층위는 지표면으로부터 3m 아래인 6층, 16세기 면입니다. 그러니까 더 파면 15세기가 나오는 건데요. 상태가 그렇게 좋지는 않을 걸로 추정됩니다. 사실 16세기가 가장 보존이 잘 되어있거든요. 이유는 임진왜란으로 추정됩니다. 전란으로 도시가 일시에 황폐화되면서 그 위에 도시를 재건했거든요. 개별 집들을 각각 재건축한 게 아니라 재개발 수준으로 전반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그 아래에 고스란히 보존이 잘 되어있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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