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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왜] 애국주의 세뇌한 30년 역사교육, 中 '늑대외교'의 뿌리

입력 2021-06-26 06:32 수정 2021-06-26 09:07

다음달 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로 '힘자랑'할 듯

"수모 당한 역사 잊지마라" 민족주의 자극
결속 키웠지만 '일방적 애국' 통제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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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로 '힘자랑'할 듯

"수모 당한 역사 잊지마라" 민족주의 자극
결속 키웠지만 '일방적 애국' 통제 어려워

다음주 목요일(7월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대륙이 들썩이고 있습니다.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선 군사 퍼레이드와 축하 공연이 예정됐고 이 시점에 맞춰 '중국 공산당 역사 전시관'도 개관했습니다.

중국의 신형 전략 폭격기 H-20이 기념식 상공에서 위용을 과시할 것이란 추측도 무성합니다.
 
중국이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 공개할 것으로 보이는 H-20 스텔스 전략폭격기. 〈사진=바이두백과〉중국이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 공개할 것으로 보이는 H-20 스텔스 전략폭격기. 〈사진=바이두백과〉

시각적 관전 포인트 못지 않게 이날 행사에서 지켜봐야 할 포인트가 있습니다.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연설입니다. 사실상 행사의 하이라이트죠. 연설에선 중국공산당 100년의 자취를 되돌아보면서 성과를 강조하고 대외적 자신감을 피력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미·중 패권경쟁이 도광양회'(韜光養晦·힘을 기를 때까지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다)의 기만전 단계를 지난 이상, 가능한 한 힘을 과시해 내부 결속을 극대화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합니다.

■ '도광양회' 단계 지나 이빨 드러낸 중국
 
2021년 1월 중국 베이징의 한 미국 기업에서 성조기와 오성홍기가 펄럭거리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2021년 1월 중국 베이징의 한 미국 기업에서 성조기와 오성홍기가 펄럭거리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별로 뉴스스럽지 않을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의 입장 아닌가요. 2016년 여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 이후 '전략적협력동반자관계'라는 우리에게 힘자랑을 서슴지 않았죠. 또 남중국해 영유권과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국제사회에 각인시킨 표독한 전랑(戰狼·늑대)외교 때문일 겁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의 대외 스탠스는 이렇게 거칠지 않았습니다.

당장 80주년 기념일이나 90주년 기념일 분위기는 사뭇 달랐습니다. 도광양회의 시기였으니까요. 실속을 키워 힘을 기르자든가 사회 갈등의 원인이 되는 요인들을 열거하며 아직 갈길이 멀다는 위기감을 공유했습니다.

 
1989년 4월 사망한 개혁파 지도자 후야오방(胡耀邦) 전 공산당 총서기의 추모집회를 계기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이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6월 4일 일요일 새벽 덩샤오핑(鄧小平)의 지시로 계엄군이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우고 시위대를 무차별 진압했다. 당국이 언급한 사망자만 319명이다. 당시 외신들은 수천 명이 희생됐다고 보도했다. 〈사진=중앙포토〉1989년 4월 사망한 개혁파 지도자 후야오방(胡耀邦) 전 공산당 총서기의 추모집회를 계기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이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6월 4일 일요일 새벽 덩샤오핑(鄧小平)의 지시로 계엄군이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우고 시위대를 무차별 진압했다. 당국이 언급한 사망자만 319명이다. 당시 외신들은 수천 명이 희생됐다고 보도했다. 〈사진=중앙포토〉

한 나라의 대외 스탠스가 이렇게 휙휙 바뀌어도 되는 걸까요. 대외 관계는 수많은 상대를 상정하고 이뤄지는 변수 게임이기 때문에 큰 축이 흔들리면 안됩니다. 상대 입장에서 헷갈리니깐요.

국정 붕괴나 냉전 해체 등 급변 사태 없이 도광양회에서 전랑외교까지 불과 십 수년 만에 이런 큰 폭의 좌표 변경은 국제정치에서 흔한 일은 아닙니다.

중국은 왜 이러는 걸까요.

대외 환경과 국제경제 구조 변화 등 하드웨어 차원의 변화 못지 않게 통치 이념적 차원의 접근법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침 올해가 애국주의 교육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91년 8월 중국 국가교육위원회는 역사교육 개혁 관련 칙령을 발표합니다. 골자는 간단합니다.

'중국이 수모를 당한 역사를 교육하라'는 겁니다.

미국 콜럼비아대 출판사가 펴낸 『Don't forget national humiliation(2014)』의 저자 정 왕은 “국가의 수모에 대한 교육이 중국 교육 체계의 핵심 주제가 됐다”고 평가합니다.

피학과 수치의 역사를 배우면서 민족주의 감정이 분출하고 응집돼 강력한 애국심을 구축하게 됩니다. 이렇게 배양된 애국 심리가 중국공산당의 가장 강력한 지지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애국주의 홍위병', 분노한 청년 대중의 탄생 서사입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을 둘러싸고 우리도 경험했던 중국인들의 과격한 애국 감정을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여기가 중국이냐'는 반발이 생길 정도로 주객을 혼동시키는 소동은 한국을 비롯 유럽이나 호주,미국 등 전세계에서 동시 다발로 일어났었죠.

그렇다면 91년 애국주의 교육 칙령은 어떻게 나왔을까요.

89년 천안문 사태가 분수령입니다. 80년대 초 개혁·개방의 분위기가 사회를 휘감습니다. 공산주의 이념에 취해 직진했던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은 허울뿐인 혁명의 실체를 가감 없이 드러냅니다.

중국공산당 일당독재의 정당성이 위협받는 시점. 타협책으로 개혁·개방이 시작됐지만 한번 식은 혁명 열기는 다시 가열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념 공백을 자유민주주의 개혁 요구가 치고 들어옵니다. 중국 민주화 운동은 천안문 사태를 고비로 자취를 감춥니다.

공산주의 대체 이념으로 피학적 민족주의 채택

대체 이념을 고민하던 당 중앙은 새로운 서사를 고안합니다. 구조는 간단합니다.

'아편 전쟁 이후 의화단 사건, 중일전쟁까지 중국의 근대사는 외세에 짓밟힌 역사다. 지배층은 무능하고 부패했지만 수많은 애국 민중이 나라를 지키려 목숨을 던졌다. 그 중 하나가 중국공산당이며 제국주의 침탈로부터 나라를 구해냈다.'

 
5월 열린 G7 외교장관 회담 기념사진을 1900년 의화단의 난 때 베이징을 함락한 8개국 연합군으로 풍자한 사진. 애국주의로 무장한 중국의 20~30세대를 강하게 자극했다. 〈사진=바이두 캡쳐〉5월 열린 G7 외교장관 회담 기념사진을 1900년 의화단의 난 때 베이징을 함락한 8개국 연합군으로 풍자한 사진. 애국주의로 무장한 중국의 20~30세대를 강하게 자극했다. 〈사진=바이두 캡쳐〉

이 서사 구조는 중국의 역사를 재해석합니다. 그 전까지 공식 역사는 이랬습니다.

봉건 세력에 대한 계급 투쟁의 역사가 중국공산당의 스토리였습니다. 계급 투쟁의 본질이 같은 상황이면 중국 인민이나 다른 나라 인민이나 같은 목표로 연대해야 한다는 거였죠. 국제 공산주의 연대 같은 행보도 이런 인식에서 나온 겁니다.

■ '계급 투쟁외세 저항' 역사 관점 급변


그런데 이제는 계급 투쟁의 역사가 아니라 외세의 억압에 대한 저항의 역사로 관점을 바꿉니다. 내부 투쟁이 아니라 외부 투쟁이 주인공이 된거죠. 민족주의 감정으로 용도 폐기된 공산주의 이념을 대체시킨 겁니다.

민족주의 감정으로 무장한 애국주의 교육은 필연적으로 외부의 적을 상정합니다. 치고 받고 무찔러야 할 대상이 늘 있어야 합니다. 자가발전해 내부용으로 쓴다면 신장·티벳 등의 분리독립 에너지만 커질 겁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의 전랑 외교는 애국주의 교육의 필연적인 귀결입니다. 중국은 이 애국주의 에너지를 지렛대로 국제관계를 재구성합니다.

호주 관점에서 중국의 대외접근법의 패턴을 밝혀낸『중국의 조용한 침공(클라이브 해밀턴, 2018)』을 보면 중국이 이 애국주의 에너지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마치 '가스라이팅(심리지배)'을 하듯 경제 교류나 투자 등의 형태로 시작했다가 상당한 영향력을 갖춘 뒤 이를 압박 수단으로 활용합니다.

이 때 동원되는 대중들이 애국주의로 무장한 20~30세대입니다. 우리에게도 낯익은 접근법인데 저자는 "중국의 본질과 야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한국도 위험하다"고 한국어판 서문에 경고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에너지가 천 년 전쟁을 벌이고 있는 종교적 신앙보다 더 직선적이고 융통성이 적다는 점입니다.

국제 정치 무대에서 물리적 열세로 인해 타협을 해야 하는 순간이 많을텐데 명분 없이 물러섰다가는 성난 애국주의의 물결이 배를 뒤집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애국주의로 쉽게 배를 띄웠지만 한번 성나면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몰라 통제가 어려운 민족주의의 본질적 한계로 인해 배가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는 패러독스. 전랑 외교의 살벌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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