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중국은, 왜] 산아제한 푼 중국…셋 낳게 하면 뭐하나, 둘도 안 낳는데

입력 2021-06-01 16:48 수정 2021-06-22 14:11

1978년부터 1가구1자녀…2016년 2자녀 허용
고령화·저출산 추세로 노동 인구 급감하자
5년 만에 3자녀 허용으로 산아제한 또 풀어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1978년부터 1가구1자녀…2016년 2자녀 허용
고령화·저출산 추세로 노동 인구 급감하자
5년 만에 3자녀 허용으로 산아제한 또 풀어

1990년대 초 얘깁니다. 베이징의 자금성에 처음 들어가 봤을 때였습니다. 그 거대한 인공 건조물의 규모에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자금성의 정문인 오문(午門)을 지나면 태화전·중화전·보화전이 잇따라 웅장한 자태를 드러냅니다.
 
자금성 태화전 광장 〈사진=바이두바이커 캡처〉자금성 태화전 광장 〈사진=바이두바이커 캡처〉

명청조 시대 중국 인근의 왕조에서 사신들이 오면 이 무지막지한 규모에 압도됐다는 문헌의 기록은 부지기수입니다. 필자도 당시 자금성 내부의 건물과 어마어마한 공간 배치를 보며 '아니, 권위로 찍어누르는 것도 분수가 있지 이 나라 사람들은 사이즈에 대한 집착이 있나' 그런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어학연수를 하던 차였기에 수업 시간에 교수에게 물었습니다. 사이즈 강박증이 느껴지는데 그것도 중화 스타일이냐는 의심이 깔린 질문이었습니다.

“만리장성도 그렇고 자금성도 압도적 크기가 인상 깊다. 이집트 피라미드처럼 크게 웅장하게 지어서 왕권을 과시하자는 취진가.”

“봉건 왕조의 권위 구사 방식이기도 하지만 중국은 좀 다르다. ”

“어떻게 다른가.”

“자금성은 황제가 업무를 보던 곳이다. 출퇴근하는 문무백관이 정무를 보좌했다. 그 수가 얼마나 되겠나 상상해봤나? 게다가 상주 인력도 있다. 황제 가족의 시중을 들고 경계를 서던 병력까지 합하면 많을 땐 12000명, 평균 1만명은 유지했다. ”

건물을 외양만 보지 말고 기능 관점에서 봐달라는 얘깁니다. 줄잡아 3~4만명이 들고나는 공간이니 그 정도 크기는 당연하다는 인식인 거죠.

명청조 건물만 그런 게 아닙니다. 베이징의 메인 도로인 창안대로를걷다 보면 쉽게 피로감을 느끼게 됩니다. 블록 하나를 건물 한 동이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서 무미건조한 담벼락만 끼고 걷다 보면 길이 멀게만 느껴지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장안가〈사진=바이두바이커 캡처〉장안가〈사진=바이두바이커 캡처〉

이렇게 중국의 사이즈 집착에 대한 저의 오해를 길게 얘기한 이유가 있습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사이즈의 이면에 맞물려 있는 인구 변수 때문입니다.

■ 중국 사회문제의 출발, 인구

중국의 거의 모든 사회 문제의 출발점은 인구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돕니다. 주로 많아서 일어나는 문제였습니다. 이 때문에 중국 사회에서는 뭔가를 기다리는 게 당연하고 개인들도 기다리는 행위를 사회화의 필수불가결한 덕목으로 내면화했습니다.

식당에서 뭔가를 주문하면 우리라면 “잠깐만요” 또는 “네, 곧 갈게요”로 답이 오지만 중국에서라면 “기다려주세요” 뿐입니다. 다분히 명령조라 익숙해지기 전까진 거부감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와 확연히 다른 중국 문화의 한 단면입니다. 인구 요인 때문이기도 하지요.

사람이 많아서 문제가 되다 보니 사람 수를 줄여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회주의 체제의 계획 접근법이 작동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한 가정에 한 자녀만 낳게 하는 산아제한 정책이죠. 1980년대 초 전국적으로 일사분란하게 실시됐습니다. 하지만 달이 차면 기울듯이 양이 채워지면 질적으로 변한다는 '양질 전화의 법칙'이 중국의 인구라고 비켜 나갈 수 없습니다.

 
"하나면 됩니다" 80년대 1가구 1자녀 정책 선전물〈사진=바이두바이커 캡처〉"하나면 됩니다" 80년대 1가구 1자녀 정책 선전물〈사진=바이두바이커 캡처〉
어제(5월31일) 전격 발표된 중국의 한 가정 세 자녀 허용 정책을 보면서 새삼 양질 전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해전술의 나라에서 이만한 격세지감이 있을까 싶을 정돕니다.

중국공산당은 2016년 1월부터 모든 부부에게 자녀 2명을 낳을 수 있게 허용했습니다. 기존엔 한 자녀 이상 낳을 경우 둘째 셋째 자녀는 호적에 올릴 때 호된 벌금을 물리는 등 출산 욕구를 제도적으로 억제했습니다. 이런 1가구 1자녀 정책이 35년 만에 풀린 거죠. 이때만 해도 파격적인 정책 전환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저출산에 따른 노동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인구 구조 변화에 대한 불가피한 대응입니다. 그렇다 해도 인구가 많아서 도입했던 정책이 이제 시효를 다했다는 것을 중국 당국이 인정했다는 점에서 중대한 변곡점으로 주목을 끌었습니다. 중국 전역에서 14억 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 급변침 했으니 어마어마한 물살을 일으킬 것이란 예상이 뒤따랐습니다.

어라, 그런데 현실은 딴 판이었습니다. 정책 목표와 완전 다르게 작동했습니다. 새 정책 시행 첫해만 전년 대비 출생자가 늘었을 뿐 그다음 해부터는 다시 신생아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늦어도 한참 늦은 정책 전환이었던 겁니다. 인구 대국 중국의 위상은 이제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인구 총수는 사망자와 출생자 간 차이에 따라 늘거나 줄어듭니다. 출생자 수가 사망자 수를 넘어서야 인구가 현상 이상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구 성장률 지표를 볼까요.
 
〈사진=바이두바이커 캡처〉〈사진=바이두바이커 캡처〉

■ 35년 고수한 '1가구 1자녀'고령화 부메랑으로

중국의 연평균 인구 성장률은 1990~2000년 1.07%에서 2000~2010년 0.57%, 2010~2020년에는 0.53%입니다. 감소세가 뚜렷합니다. 반전이 있을까요. 어려워 보인다는 게 전반적인 관측입니다. 전체 인구 대비 65세 이상의 비율도 지난해 13.5%를 기록해 고령사회(14% 이상) 진입을 앞둔 반면 저출산 추세는 강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령 비율이 늘어난 것은 지난 35년간 이뤄진 혹독한 1자녀 정책의 부메랑입니다. 저변이 넓어야 하는데 인위적인 산아정책으로 노동 가능 인구층에 공급이 줄어든 결과입니다.

고령층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주의 국가의 부양 부담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기 진작에투입해야 할 자원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중국이 너무 빨리 늙었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입니다. 앞서 고령 인구 비중이 12.6%일 당시 한국, 미국, 일본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4,000달러를 웃돌았습니다. 반면 중국의 2019년 1인당 GDP는 1만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그만큼 중국 젊은 세대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가능 인구층을 늘려야 하는 정책 압박이 커진 배경입니다. 중국 노동 인구(16~59세)는 2011년 9억2500만명을 정점으로 매년 줄었습니다. 2020년에는 8억9400만명까지 줄었습니다. 9년간 3100만명이 빠진 겁니다.

중국이 노동 가능 인구층에 목을 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생산과 내수 전략의 밑바탕이자 추진력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30년 중국의 초고도 성장은 저임 노동력이라는 요소를 앞세워 글로벌 공급망에 한 자리를 꿰차고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른바 인구 보너스를 톡톡히 누렸던 겁니다. 선진국은 원천기술을 대고 최종 조립 공장을 중국에 세웠고 중국은 한국·일본으로부터 중간재와 장비,소재 등을 조달해 완제품을 생산하는 구조에 중국은 풍부한 노동력을 대는 자격으로 한 축을 맡았던 겁니다.

■ 미국 의존도 낮추려면 내수 시장 필수

글로벌 분업체계 속에서 세계 2위 규모의 경제로 성장한 중국은 원천 기술을 확보해 자국 안에서 기존 글로벌 공급망을 대체하려 했습니다. 미중 기술전쟁이 시작된 배경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미국이 군사동맹들이 기술동맹으로 확대되는 추세 속에서 중국은 미국 의존 수출 경제 구조를 수술하고 있습니다. 내수를 키워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것이죠.

이 내수 정책의 기반이 바로 구매력을 갖춘 노동 가능 인구층인 겁니다. 이 중요한 추동력이 지금 활력을 잃고 있다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겁니다. 그래서 3명까지 제한을 푼 겁니다. 안정적인 노동력을 공급해 생산기반을 강화하고 내수 시장을 키워 미국의 견제에도 버틸 수 있는 단단한 경제체질로 바꾼다는 게 시진핑 중국공산당의 구상입니다. 왜 노동가능 인구층을 애지중지 키워야 하는지 이제 조금 분명해졌으리라 믿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세 명으로 풀었으니 그간 눌렸던 출산 욕구를 자극해 신생아가 쏟아질까요.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중국도 출산 앞에 넘어야 할 고민의 산들이 녹록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주거 비용입니다. 1998년 민영 주택 공급이 본격화된 이래 중국의 아파트 가격은 폭등의 역사였습니다. 택지가 공급되고 기반 시설이 갖춰지고 교통이 연결되면 부르는 게 값이었습니다. 베이징·상하이·선전·광저우 이른바 4개 일선 도시의 주택 가격은 이제 임금 생활자는 꿈도 못 꾸는 지경까지 치솟았습니다.

 
〈사진=넘베오 2021 캡처〉〈사진=넘베오 2021 캡처〉

전세계 도시통계 관련 정보제공 사이트인 '넘베오(NUMBEO)'를 함께 보실까요. 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을 보겠습니다. 한 푼도 안 쓰고 수입을 모은다는 가정 아래 집을 사려면 몇 년이 걸리는지 예측한 겁니다. 선전이 가장 높습니다. 43.88입니다. 표준 면적의 아파트 한 채 장만하려면 44년 가까이 걸린다는 겁니다. 이 생에선 포기할 수밖에 없는 수준입니다. 베이징(42.21)·상하이(34.40)·광저우(30.57)도 비현실적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파트 시장이 출렁일 때마다 중국에서 '영끌' 아파트 구매가 비일비재합니다. 아파트 한 채 사놓고 대출 이자와 원금을 갚느라 소비할 여력이 없습니다. 이른바 '아파트 노예'로 살아야 할 판입니다. 아이를 둘 셋 낳고 기를 정신적ㆍ물질적 여유가 없습니다.

교육·의료·양육비까지 고려하면 셋 낳게 해준다고 당과 국가가 선심 쓰듯 풀어준다 한들 '버스는 이미 떠난 후'의 일이 된 겁니다. “열 명을 낳게 규제를 풀어도 소용없다. 가계가 감당할 수 없는 데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냉소가 인터넷 게시판을 달구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인구 보너스를 누리던 시대가 저물고 글로벌 공급망이 미국 본토 중심으로 재편되는 기류에 맞서 내수 역량을 키우려고 정책 역량을 집결시키고 있지만 믿을 언덕이었던 인구가 특히 노동 가능 인구가 줄어드는 전대미문의 도전 앞에서 1가구 3자녀 정책이 근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건 자명해 보입니다.

※사족=디지털 혁신이나 5G·IoT·AI·빅테이터 등 4차산업혁명 분야가 대단한 성공을 거둬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바꾼다 해도 기술집약도가 낮은 산업 분야를 상당 부분 대체하려면 장구한 시간이 걸립니다. 인구 보너스를 빼놓고 중국 경제를 논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