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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센 백신' 신청 시작된 그날 밤…"헬등포" 외치며 구청장 소환까지

입력 2021-06-01 14:40 수정 2021-06-0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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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젯밤 11시 55분, 거실에서 노트북을 폈습니다.

11시 56분, 57분, 58분, 그리고 59분….

예약 시작 1분을 남기고 손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59분 56초, 57초, 58초, 그리고 59초….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했습니다.

"순조롭다" 생각했습니다. '본인 인증'을 클릭했습니다.

그러자 이런 화면이 떴습니다.

기자는 30대 민방위 대원이지만, '대상자'가 아니라는 오류 메시지가 반복됐습니다.기자는 30대 민방위 대원이지만, '대상자'가 아니라는 오류 메시지가 반복됐습니다.

#2.

잠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기자는 2년 차 민방위 대원입니다. 서울 영등포구 소속입니다.

저 같은 민방위 대원, 전국 304만 명은 오늘(1일) 0시부로 '얀센' 백신 접종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선착순입니다.

물량은 모두 101만 2,800회분입니다. 미국 정부가 우리 군에 제공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 밖에 예비군(53만 8,000명)과 국방·외교 관련자(13만 7,000명)도 신청 대상입니다.

※신청은 여기서 할 수 있습니다.
병관리청 코로나19 예방접종 사전예약 시스템
https://ncvr.kdca.go.kr/cobk/index.html

그런데 웬걸,

정작 신청을 하려고 보니 대상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만 반복된 겁니다.

1일 새벽 0시 52분과 6시 53분 휴대전화로 접속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1일 새벽 0시 52분과 6시 53분 휴대전화로 접속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친구들의 메시지가 하나둘 도착했습니다.

"예약 성공했음"
"누르니까 신청 바로 되더라"
"나도 ㄱㄱ 잘한 선택이겠지?!"

왜 나만 안 되나… 일단 계속 줄을 섰습니다.


한때 7만 명까지 대기했는데, 실제 대기 시간은 예상보다 짧았습니다.한때 7만 명까지 대기했는데, 실제 대기 시간은 예상보다 짧았습니다.

그래도 마주한 메시지는 똑같았습니다.

"해당 기간 내에 대상자가 아닙니다. (…) 관할 보건소 및 위탁의료기관에 방문하여 대상자로 등록하신 후 예약하시기 바랍니다."


#3.

이쯤 되니 주변에서는 다양한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①알고 보니 기자가 군대에 안 갔다
②사실 기자 이름이 '박민규'가 아니다
③기자도 모르는 사이 주민등록번호가 바뀌었다.

그럴 리 없지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난달 받아놓은 '민방위 교육' 안내 메시지도 다시 확인했습니다.

약 1시간의 온라인 강의를 들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설마 이것 때문에…?'

일단 동영상 강의를 틀었습니다. 조금은 기대했는데, 역시나 오류 메시지는 반복됐습니다.

지켜보던 아내는 "그거 계속 붙들고 있다고 안 되던 게 되겠느냐"며 "얼른 자자"고 했습니다.


#4.

의문은 새벽 1시가 넘어서야 풀렸습니다. 예약에 성공한 지인이 참고하라며 링크를 보내줬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입니다. 제목은 이랬습니다.

"영등포구 주민들 얀센 예약 안 된다는 게 실화입니까?"

"저도 영등포인데 안 된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습니다.

그랬습니다. 일부 지역의 문제였던 겁니다. 기자는 영등포구 민방위 대원입니다.

급기야 '카카오톡' 메신저에는 관련 오픈 채팅방도 생겨났습니다.

'영등포 얀센백신 오류 관련'이란 제목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참여자들의 대화명을 몇 개 모아봤습니다.'영등포 얀센백신 오류 관련'이란 제목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참여자들의 대화명을 몇 개 모아봤습니다.

익명으로 참여하는 채팅방입니다. 들어가 보니 대화명이 좀 특이했습니다.

'헬등포', '헬등포2', '헬등포오'부터 '얀센내놔', '얀센조', '얀세에에엔'…

그중에는 '채현일미워'라는 닉네임도 있었습니다. 2018년 7월부터 재직 중인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질병관리청 콜센터와 영등포구청에 항의 전화를 하는 등 집단 행동(?)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5.

상황은 아침이 돼서야 마무리됐습니다.

오전 9시가 지나자, 채팅방에는 접종 예약을 마쳤다는 메시지가 잇따랐습니다.

"예약 성공!"
"고생하셨습니다"
"다행이긴 한데 어제 힘들었네요"

오전 10시가 넘어서도 "예약이 안 된다"는 사람이 나오자, 구청 민방위과에 어서 전화해보라며 번호를 남기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나는 정말 맞고 싶었는데, 행정 오류 때문에 신청을 못 했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카톡방 대화도 훈훈하게 마무리됐습니다. "백신(예약)도 끝났고, 이제 헬등포 맛집 추천 좀 해 달라"는 제안에 링크가 오갔습니다.

이번 일이 다행히도 '해프닝'에 그친 셈입니다.

오늘 영등포구청은 민방위대원 403명이 접종 대상에서 빠졌다고 실수를 인정했습니다. 서울시가 자치구별 민방위 대원 명단을 관리하는데, 이 명단을 서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다는 겁니다.

문의를 받은 질병관리청도 행정안전부로부터 추가 정보를 받아 조치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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