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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임사 연속보도②] 50년 전 소년공 죽던 기계에서 연 100명 목숨 잃어

입력 2021-05-21 15:40 수정 2021-05-21 16:58

돈·기술 있지만 '후진국형'·'재래식' 산재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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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기술 있지만 '후진국형'·'재래식' 산재 반복

〈JTBC는 최근 3년간 발생한 끼임 사망사고 '재해조사 의견서' 254건을 분석해 보도하고 있습니다. 취재 과정, 그리고 방송에서 못 다룬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해 드립니다〉


'어느 집 아들이 어제 프레스에 손가락 잘렸다더라.'
산업화 세대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얘깁니다. 1980년 한 해에만 노동자 33명 중 1명이 산업재해를 당했습니다. 손가락을 잃은 거로 끝나면 '운이 좋다'고 할 만큼 목숨을 잃는 일도 흔했습니다.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인 1987년엔, 산재로 1761명이 숨졌고 2만 5244명은 신체 장애가 생겼습니다. '끼임 사고' 취재를 시작하기 전엔 '프레스'란 기계가 뭔지도 잘 몰랐던 기자와 달리 산업화 세대인 분들은, '프레스'라고 하면 '위험'이란 말이 자동으로 나오더군요.

◇오늘자 기사 같은 1968년 여공의 사망
60년~80년대, 프레스에, 롤러에, 파쇄기에 목숨을 잃은 사고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보도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사고가 잦아 보도가 많지 않았던 듯합니다. 찾아낸 기사들도 대체로 짧았습니다. 하지만 놀라웠습니다. 오늘 자 기사라고 해도 믿을 만큼 현재 일어나는 사고와 '판박이'였기 때문입니다.

끼임 사망사고를 다룬 중앙일보 기사들 = 왼쪽 위부터 각각 1968년, 1973년, 1981년 지면에서 발췌했습니다. 세로로 쓰인 기사가 오래 된 일임을 체감하게 하지만, 내용은 오늘 것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끼임 사망사고를 다룬 중앙일보 기사들 = 왼쪽 위부터 각각 1968년, 1973년, 1981년 지면에서 발췌했습니다. 세로로 쓰인 기사가 오래 된 일임을 체감하게 하지만, 내용은 오늘 것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1968년 8월 서울 양평동 슬레이트 공장에서 일하던 서순희(21, 여) 롤러에 끼여 숨짐
*1973년 8월 서울 구로동 한 플라스틱 제조업체에서 소년공 전영규(15) 군이 프레스 기계에 끼여 숨짐
*1981년 9월 경기도 파주 양털가공 공장에서 조용묵(17)군 롤러에 끼여 숨짐

JTBC 취재진은 2018~2020년간 발생한 끼임 사망 사고(이하 '끼임사') 317건 중 254건의 재해조사보고서를 분석했습니다. 254건의 사고 내용과 원인을 분석해 온 취재진에게 위 세 사고는 낯설지 않았습니다. 3년간 우리나라에선 롤러에 끼여 최소 11명이, 프레스·사출기엔 16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특히 1979년에 발생한 아래 사고는 '끼임사'의 전형과도 같습니다.

"1979년 4월 서울 구로동 전자부품 회사에서 일하던 정종석(30)씨, 분쇄기에 끌려들어가 숨져. 정씨는 분쇄기청소를 하려고 안전커버를 뒤로 젖혀놓고 전기 '스위치'를 넣어 분쇄기를 가동시키며 청소하던 중 오른손이 분쇄기 칼날에 끼여 들어가면서 몸체가 빨려 들어가 변을 당했다. 정씨는 분쇄기 청소를 할 때 기계를 정지시켜야 하는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사고를 당했다."(중앙일보 1979년 4월 18일 7면)

지금도 정씨처럼 청소나 수리 같은 '비정형' 작업을 할 때가 끼임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높습니다. (254건 중 59.1%), 청소나 수리를 하면서도 절반 이상(52%)이 '전원을 차단하지 않아'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원을 차단하지 않은 건 작업장의 관행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노동자의 부주의나 실수로 몰아가는 것도 1979년과 2021년이 똑 닮았습니다.

◇끼임 사고엔 단순한 '정답'있는데…
1968년 21살 여성 서순희 씨가 롤러에 끼여 숨진 이후 같은 사고로 사라진 아까운 목숨은 수없이 많았을 겁니다. 1973년 15살 소년공 전영규 군이 프레스에서 숨진 이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종류의 기계에서 비슷한 사고들이 계속해서 누적됐고, 당연히 해법도 나왔습니다. 간단합니다. 롤러에, 프레스에 방호장치를 설치하면 됩니다.

하지만 지난 3년간 '끼임사' 절반 이상(129건, 50.8%)이 방호 장비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기계에서 발생했습니다. 직원들이 지나다니는 통로엔 컨베이어를 돌리는 롤러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청소·수리를 할 때의 사고는 '매뉴얼'을 마련해 '교육'하면 됩니다. 하지만 매뉴얼도 안전 교육도 부족했습니다. (안전교육 미비: 65건, 25.6%)

위=2019년 벨트컨베이어에 끼여 목숨을 잃은 노동자의 일터. 아래=스치기만 해도 끼여들어갈 수 있는 벨트컨베이어의 물림점이 방호장비 없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사망자의 안전모가 부서져있습니다.위=2019년 벨트컨베이어에 끼여 목숨을 잃은 노동자의 일터. 아래=스치기만 해도 끼여들어갈 수 있는 벨트컨베이어의 물림점이 방호장비 없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사망자의 안전모가 부서져있습니다.

◇'후진국형 사고'? … 돈이 없나요 기술이 없나요
끼임 사고가 '후진국형 사고', '재래식 사고'라 불리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사고를 막기 위한 간단한 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방법을 모르거나 실행하지 못하는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사고란 거죠.

그런데 '제조업 강국' 우리나라에서는 모두가 아는 그 '기본'을 못 지켜서, 평균 사흘에 한 명씩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기술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 둘 대신 사람을 희생시키는 겁니다.

올해 1월, 당일에 다른 기계에 긴급 투입됐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던 '2500톤 프레스 기계' 평소 사용하지 않는 기계였지만, 작동 교육도 안전교육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올해 1월, 당일에 다른 기계에 긴급 투입됐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던 '2500톤 프레스 기계' 평소 사용하지 않는 기계였지만, 작동 교육도 안전교육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베낀듯 '전형적'이라서 주목할 죽음
보도 가치 판단의 여러 기준 중, '일탈성'이 자주 언급되곤 합니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거리가 되지 않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란 미국 언론인의 말과 함께요. 실제로 어떤 죽음은 흔히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서, 전형성을 벗어 낫기에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끼임사고로 목숨을 잃는 노동자'의 죽음은 이 기준과는 거리가 멉니다. 2021년에도 베낀 듯 전형적이고, 자주 일어납니다. 저희 취재진은 반대로 뻔해서, 흔해서 주목받아야 할 죽음을 봤습니다. 254명의 사람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막을 수 있었습니다. 산업 재해 중에서도 '끼임사'에 주목해 심층 취재해온 이유입니다.


끼임 사망 사고 네 건의 재해상황도. 거의 같은 사고입니다. 모두 앞 유리 없는 지게차에서 포크 부분을 조정하던 중 레버를 잘못 건드려 목숨을 잃었습니다.끼임 사망 사고 네 건의 재해상황도. 거의 같은 사고입니다. 모두 앞 유리 없는 지게차에서 포크 부분을 조정하던 중 레버를 잘못 건드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또, 또, 들려오는 사망 사고 소식…반복되지 않게
취재 중에도 안타까운 소식은 계속해서 들려왔습니다. 어제(20일) 오전에도 전남 광양의 한 철강제품 생산 공장에서 43살 A씨가 숨졌습니다. 동료 직원들은 “A씨가 장비를 살펴보고 있는데, 기계가 갑자기 움직이며 끼였다”고 진술했습니다. 끼일 수 있는 위험이 큰 기계였지만 울타리나 보호 덮개 등은 설치되어있지 않았습니다. 막을 수 있는 사고였던 겁니다.

더는 이런 사고 소식을 듣지 않기 위해, 취재팀이 지난 두 달간 실태를 파악하고 원인과 해법을 찾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녔습니다. 아래에 지금까지 보도된 기사들을 링크합니다. 남은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보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끼임사 심층분석' 연속보도
① 현대제철 끼임사…'왜 끼나' 254건 산재보고서 전수분석
→ 기사 바로가기 : http://news.jtbc.joins.com/html/738/NB12003738.html

② [단독] 고소작업대 끼임사 13건…하나같이 '구조적' 문제
→ 기사 바로가기 : http://news.jtbc.joins.com/html/881/NB12003881.html

③ "노동자 알아서 피하라"?…실험해보니 대처할 수 있는 시간 고작 '1초'
→ 기사 바로가기 : http://news.jtbc.joins.com/html/880/NB12003880.html

④ 안전 보장 안 되는 기계도…'싸니까' 손쉽게 널리 거래
→ 기사 바로가기 : https://news.jtbc.joins.com/html/879/NB12003879.html

⑤ [단독] "참석 확인 서명만"…40초 만에 끝나는 '허술한 안전교육'
→ 기사 바로가기 : https://news.jtbc.joins.com/html/764/NB12005764.html

⑥ 유족 접근은 막고…빠르게 치워지는 '끼임사' 현장
→ 기사 바로가기 : https://news.jtbc.joins.com/html/763/NB12005763.html

⑦ '끼임사' 사업장 벌금, 영국 1억7천만원 한국은 420만원
→ 기사 바로가기 : https://news.jtbc.joins.com/html/008/NB120060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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