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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임사 연속보도①] 재해조사 보고서 254건 분석해보니

입력 2021-05-19 10:30 수정 2021-05-1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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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는 최근 3년간 발생한 끼임 사망사고 '재해조사 의견서' 254건을 분석해 보도하고 있습니다. 취재 과정, 그리고 방송에서 못 다룬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해 드립니다〉
 
지난 8일, 현대제철 당진공장 끼임사 현장. 〈사진=JTBC 뉴스룸 캡처〉지난 8일, 현대제철 당진공장 끼임사 현장. 〈사진=JTBC 뉴스룸 캡처〉

'끼임사 연속 보도'를 시작하기 하루 전날인 지난 9일, 촬영을 다녀오던 차 안에서 속보를 접했습니다.

"당진 현대제철서 설비 점검하던 40대 노동자 기계에 끼어 사망"

어버이날인 지난 8일, 두 아이 아빠였던 40대 김 모 씨가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숨졌습니다. 광석을 옮겨주는 설비 아래를 점검하다 좌우로 움직이는 장치 사이에 머리가 끼였습니다. 한밤중 홀로 이뤄진 작업이었습니다. 방호 울타리나 센서 같은 안전장치는 없었습니다.

지난 두 달간 분석해온 끼임사 사례들이 머릿속에 한꺼번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데자뷔처럼 느껴질 정도로 서로 비슷한 사고들이었습니다. 취재하는 사이에도 일터에선 이런 끼임사의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은 조급해졌습니다.

'끼임사'는 말 그대로 끼여서 숨진 사고입니다. 컨베이어, 프레스, 산업용 로봇, 지게차 등 끼이는 기계는 다양합니다. 그러나 끼여서 목숨을 잃는 과정과 사연은 하나같이 닮아있고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재해조사 보고서에서 접한 끼임사 사례 몇 가지만 들어보겠습니다.

# 2019년 2월, 노동자 두 명(아버지와 아들)이 운영하는 화물 취급 사업장. 아들이 파쇄기 내부를 점검하러 들어갔는데, 아버지가 그 사실을 모른 채 전원 가동.
# 2020년 2월, 푸드 공장 건설현장에서 협력업체 직원이 냉동기 설치 작업 중 고소작업대가 갑자기 상승. 안전장치(과상승방지봉) 전부 해체된 상황.
# 2020년 11월, 홀로 근무하던 사업장 직원이 전원을 켠 채 벨트 컨베이어 이물질 제거하다가 끼임.

그저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을 뿐인데, 매년 100명 안팎의 노동자가 이런 식으로 일터에서 목숨을 잃습니다. 특히 제조업에서는 이런 끼임사고 때문에 사람이 가장 많이 죽습니다. 여러 유형의 산재 가운데 취재진이 끼임사에 주목해야 했던 이유입니다.

 
3년치 '끼임사' 재해조사 보고서 분석. 〈사진=JTBC 뉴스룸 캡처〉3년치 '끼임사' 재해조사 보고서 분석. 〈사진=JTBC 뉴스룸 캡처〉


왜들 전원을 안 끄고 위험한 기계에 몸을 넣을까? 처음 재해조사 보고서 250여건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형님 왜 이리 서두릅니까? 사고 전, 이 말을 계속했어요." (끼임사 목격 노동자 A씨)

지난 1월, 동료가 프레스에 끼어 숨지는 사고를 목격했던 A씨는 사고 직전 현장에 대해 이렇게 떠올렸습니다. 사고 당일 갑자기 기계 수정작업에 투입됐습니다. 프레스가 내려오는데도 굉장히 가까이서, 그것도 빨리빨리 작업하는 모습이 위험하게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하청에서는 절대 전원 꺼달라는 소리 할 수 없어요. 공정이 24시간 돌아가기 때문에.” (서현수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노안부장)

취재진이 만난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생산성'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한 라인이 서면 큰 공장은 몇억 씩도 왔다 갔다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달 초 사고가 발생한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2년 전 끼임사고를 당했던 장 모 씨 역시, 당시 전원을 끄지 않은 채 일하다 다쳤습니다. 전원을 끄고 켜는 데 얼마나 걸리냐는 JTBC의 질문에 현대제철 측은 최소 10분에서 최대 60분까지 걸린다고 답했습니다.

"빨리 일을 마무리하려 서둘러도, 피곤해서 살짝 졸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나지 않아야 안전 관리를 한다고 할 수 있겠죠. 그것이 '본질 안전'입니다." (박재희 한경대학교 사회안전시스템공학 교수)

생산성보다 안전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은 교과서처럼 들리지만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기본이 현장에서는 안 지켜지는 걸까요?

 
취재진이 방문한 클린사업장-산업용 로봇에 세워진 방호울. 〈사진=JTBC 뉴스룸 캡처〉취재진이 방문한 클린사업장-산업용 로봇에 세워진 방호울. 〈사진=JTBC 뉴스룸 캡처〉
취재진이 방문한 클린사업장-프레스 옆 광전자식 방호장치. 〈사진=JTBC 뉴스룸 캡처〉취재진이 방문한 클린사업장-프레스 옆 광전자식 방호장치. 〈사진=JTBC 뉴스룸 캡처〉

보고서 분석 결과, 사고 발생 사업장 세 곳 중 두 곳은 기본적인 안전장치조차도 갖추고 있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안전에 힘쓰고 있는, 이른바 '클린 사업장'을 먼저 찾아가 봤습니다. 프레스 옆 빨간 불빛을 내뿜고 있는 센서는 신체를 감지해서 기계를 자동으로 멈추고 있었습니다. 산업용 로봇 주변엔 1.8m 높이의 울타리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바닥도 공사해서 지게차가 미끄러지거나 쓰러질 것을 막아놨습니다. 사업장에서 이런 안전 조치에 든 비용은 지난해 기준으로 7000만 원 상당입니다.

"사업장들이 보통 지원사업도 모르고 있을뿐더러 영세할수록 안전 관리자, 책임자 인력이 있기 어렵고요. 컨설팅, 도움 없이 클린 사업 서류 준비도 쉽지 않고요." (이풍성 한솔스틸 관리부 차장)

비용은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이 비용은 기업의 생산성과 이윤 계산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는 클린 사업을 통해 이런 비용 일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세한 사업장일수록 이 역시 쉽지 않다고 합니다.

"정부에선 거의 사업장 감독을 안 나가고, 감독을 해서 무언가를 지적하고 개선했느냐에 대해서 대개 서류 검토로 끝내 왔거든요."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의무지만 처벌 조항은 없는 '위험성 평가' 제도. 〈사진=JTBC 뉴스룸 캡처〉의무지만 처벌 조항은 없는 '위험성 평가' 제도. 〈사진=JTBC 뉴스룸 캡처〉

정부의 감독도 문제입니다. 부실한 감독에 대한 대안으로 현행법은 '위험성 평가'를 의무로 하고 있습니다. 사업장 스스로 위험 요인들을 파악해서 없애도록 하는 겁니다. 정작 처벌 조항은 없습니다. 이렇다 보니 100인 이상 사업장은 80% 이상이 위험성 평가를 하지만 5인 미만은 9%에 그치는 수준입니다.

여기까지는 노동현장의 현실입니다. 취재진은 실제 끼임사 사례 3년 치를 통계 분석했습니다. 이번 연속보도를 통해 원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짚고, 더 나아가 대안과 방향을 제시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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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 끼임사…'왜 끼나' 254건 산재보고서 전수분석
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2003738&pDate=202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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