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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24시] 서울시가 '사연 있는' 생계형 체납자를 찾습니다

입력 2021-04-27 13:50 수정 2021-04-27 14:30

압류 재산으로 복지 혜택 못 받는 사회 취약층 체납자 발굴해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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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류 재산으로 복지 혜택 못 받는 사회 취약층 체납자 발굴해 도움

서울시 38세금징수과 조사관과 상담사들서울시 38세금징수과 조사관과 상담사들

서울 도봉구의 한 공공임대주택 지하. 초인종을 누르니 문이 열립니다.

온 집 안이 새카맣습니다.

"불을 꺼놓으신 거예요?"

대낮에도 빛 한 줄기 안 들어오는 지하방에서 형광등을 끈 채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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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계형 체납자' 만나러 간 세금 조사관들

서울시 38세금 조사관들이 82살 A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1990년대까지 사업을 하다 2003년 부도가 나면서 재산을 다 잃었다고 합니다.

이후 정수기 장사, 책 장사, 초등학교 경비원 등 갖은 일을 해봤지만, 생활고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습니다.

몸 상태도 망가져 갔다고 합니다. 뇌경색에 시달렸고, 다리 수술 이후엔 제대로 걷지 못했습니다.

LH공사가 제공하는 공공주택 지하방에서 부부 두 명의 연금 46만원을 생활비 삼아 살고 있다고 합니다.

생계형 체납자 주거지를 방문해 실태 조사 중인 상담사들생계형 체납자 주거지를 방문해 실태 조사 중인 상담사들

● 28년째 압류된 재산 탓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못 돼


A 씨가 1990년대부터 못 내고 쌓아온 세금은 7200만원.

1990년대 사업가 시절 가지고 있었던 인천 강화군 산 임야 부지를 압류당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에 따르면 이 땅은 압류된 뒤 28년간 공매 절차에서 한 번도 팔리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 관계자는 "감정가도 나오지 않아 두 차례나 유찰된 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세무 당국에 압류당한 뒤 28년간 팔리지 않고 있는 땅의 공시지가는 1억 4000만 원대.

이게 지금 당장 팔린다고 해도, 국세 등 8억 원대 채무 때문에 A 씨에겐 한 푼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사실상 A 씨 재산이라고 보기 어려운 땅인 겁니다.

그런데도 이 땅이 수십 년간 A 씨의 재산으로 잡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도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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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38세금징수과 조사관들은 이런 A 씨 사연을 파악하고 도움을 주기로 했습니다.

먼저 관할 주민센터에 A 씨의 어려운 사정을 설명하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압류된 땅이 사실상 A의 재산이 아님을 설명하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이런 점을 참작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협조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또 조사관들은 최근 파산 신청한 뒤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A 씨가 매일 두 끼 도시락이 제공되는 '돌봄 SOS' 긴급지원을 받을 수 있게 연결해줬습니다.

상담사들과 주민센터를 찾아 기초생활수급자 신청 중인 A씨상담사들과 주민센터를 찾아 기초생활수급자 신청 중인 A씨


● 생계형 체납자는 누구인가?

사업 경영 악화로 삶의 기반이 무너진 뒤 세금을 못 냅니다. 그래서 재산이 압류됐는데 처분이 안 돼서 여전히 재산으로 잡힙니다. 이 때문에 수십 년 빈곤하게 살아온 80대가 기초수급생활자가 되지도 못합니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 조사관들이 이런 '사연 있는' 체납자들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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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서울시 38세금징수과엔 〈서민체납자 복지서비스 연계 추진 TF〉가 꾸려져 처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조사관 7명, 전문 상담사 2명이 한 팀입니다.

세금 안 낸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돈을 받아내는 업무에 그치지 않겠다는 겁니다.

하루 먹고 살기 어려운 체납자들의 경우, 압류된 재산이 혹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는 데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지 먼저 검토합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을 찾아, 체납자가 자포자기하지 않고 건강한 납세자로 돌아올 수 있도록 지원하겠단 겁니다.

먼저 65세 이상 고령 체납자를 중심으로 살펴보는데, 점차 연령대를 낮춰갈 계획입니다.

압류 및 재산 내용과 가족 상황, 거주지 등을 확인한 뒤, 생활이 어려운 체납자라고 판단되면 전화 상담을 합니다.

예금 보험 등 금융 잔액이 185만원 이하인 사람, 평가액 50만원 이하의 부동산이나 15년 이상 된 자동차를 가진 사람 등이 주요 검토 대상입니다.

대상자가 정해지면 주거지로 찾아가 대면 상담을 하고 주거 환경을 파악합니다.

재산이 없는 체납자가, 실익이 없거나 처분이 불가한 압류 재산 때문에 혹시 복지 혜택을 못 받는 건 아닌지 검토합니다.

이런 생활실태 조사 결과를 체납자 관할 자치구 복지부서 등에 통보합니다.

기초수급생활자 등 복지 혜택 대상 선정 시 어려운 사정을 검토해달라는 취지의 공문을 보내는 겁니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 이병욱 과장서울시 38세금징수과 이병욱 과장

이병욱 서울시 38세금징수과장은 "과거에는 세금을 성실하게 내던 분들이 어느 날 갑작스러운 사업 부도 등으로 궁지에 몰리는 경우도 많다"며 "체납 세금으로 인해 재산이 압류돼 있는데, 형식적으로만 체납자 소유지 사실상 체납자 소유라고 볼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과장은 "세금을 낼 의지가 있지만 헤어나오기 힘든 곤궁에 빠진 분들에게 다시 살아갈 용기를 주고 성실하게 납세할 기회를 주는 차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서울시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생계형 체납자를 주기적으로 찾아보고 발굴하고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생계형 체납자로 선정되고자 하는 시민들은 서울시 38세금징수과 또는 120다산콜센터로 연락해 상담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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