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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취재] 검사장이 주무관에게 '감사편지'를 보낸 이유.jpg

입력 2021-04-23 10:52 수정 2021-04-23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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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봉1동 주민센터 김대근 주무관의 책상에는 김후곤 검사장이 보낸 편지가 놓여있다. [JTBC 캡처]서울 상봉1동 주민센터 김대근 주무관의 책상에는 김후곤 검사장이 보낸 편지가 놓여있다. [JTBC 캡처]
서울 상봉1동 주민센터 김대근 주무관의 업무용 책상에는 "주무관님의 열정과 헌신에 감사드린다"는 김후곤 서울북부지검 검사장의 감사 편지가 놓여있습니다.

김 검사장은 지난 3월 김 주무관이 근무하는 주민센터 전 직원에게 커피도 샀습니다. 지난달 두 공직자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시작은 기록상에 존재하지 않던 한 여성 민주화 운동가 김 모 씨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서울북부지검에서 재심 청구 업무를 맡았던 서인선 부장검사. [JTBC 캡처]서울북부지검에서 재심 청구 업무를 맡았던 서인선 부장검사. [JTBC 캡처]
"아무것도 안 나왔어요.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서인선 서울북부지검 부장검사)"

지난 2월 대검찰청으로부터 관할 지역의 '민주화운동 관련' 재심대상자 명단을 전달받은 서 부장검사는 고심에 빠졌습니다.

이 중 1980년 11월 신군부 쿠데타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뿌려 재판에 넘겨졌던 숙대생 고 김모씨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김씨의 유죄 판결문에 나온 이름 석 자와 주민번호만 있을 뿐 정부 전산망엔 아무 기록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전산 기록에 없던 민주화운동가 김씨의 이름
검찰은 김씨의 동료이자 당시 함께 재판을 받았던 숙대 졸업생 양모씨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양씨는 "판결문에 나온 것보다 훨씬 더 민주화에 기여했던 친구"란 말을 전했습니다.

양씨는 JTBC와의 통화에서도 "김씨는 당시 숙대생 중 민주화 운동에 가장 앞장섰던 친구 중 한 명"이라 설명했습니다. 재심 청구 업무를 맡았던 서 부장검사는 "정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싶다"며 "기록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데, 주변 사람은 존재한다고 말하는 상황"이라 기억했습니다.

검찰은 서씨의 옛 주소를 바탕으로 북부지검 관내에 있는 주민센터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서울 상봉1동 주민센터 김대근 주무관이 북부지검의 전화를 받은 것은 지난 3월쯤입니다.

 
김씨의 기록을 찾아낸 김대근 주무관의 모습. [JTBC 캡처]김씨의 기록을 찾아낸 김대근 주무관의 모습. [JTBC 캡처]
김 주무관은 "검찰 쪽에서 '제발 김모씨를 찾아줬으면 좋겠다'고 간곡히 부탁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습니다. 김 주무관은 주민센터의 지하 '주민등록등본 서가'로 내려가 수기 주민등록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수천여부의 자료가 뒤섞여 있는 곳을 밤낮으로 뒤졌고, 작은 정보를 하나씩 모아 김씨의 사망기록과 가족의 이사한 주소가 적혀있는 '개인별 주민등록표'를 찾아냈습니다. 김 주무관이 김씨를 찾은 사실을 몰랐던 검찰은 며칠 후 김 주무관에게 이런 전화를 겁니다.

"검찰에서 '못 찾았죠?'라는 절망감이 담긴 전화를 하셨어요. '당연히 못 찾았겠죠?'라고 물으셨죠. 그래서 제가 찾았다. 운 좋게 찾았다고 답했어요(김대근 주무관)"

 
김 주무관이 찾아낸 김씨의 수기 개인주민등록표. [JTBC 캡처] 김 주무관이 찾아낸 김씨의 수기 개인주민등록표. [JTBC 캡처]
◆김 주무관 "이래서 공무원 생활한다 생각"

김 주무관은 JTBC에 "늦게나마 김씨의 가족과 연락이 닿을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다"며 "이래서 공무원 생활을 하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검찰은 김 주무관이 찾은 김씨의 추가 자료를 바탕으로 유족을 찾았고 재심 청구 동의를 받았습니다. 김씨의 오빠는 검찰에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동생을 가슴에 묻고 살아왔는데 잊지 않고 챙겨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김씨의 옛 동료이자, 김씨와 함께 재심 청구 대상자가 된 숙대 졸업생 양모씨는 "불꽃같이 살다가 사그라진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그의 명예를 회복해주는 것 뿐"이라며 "(재심 청구는) 시대의 아픔으로 덧난 질병으로 고통을 받다 떠난 이에 대한 마지막 예우"라고 말했습니다.

검찰은 법원에서 재심 재판이 시작되면 김씨에게 무죄를 구형할 예정입니다. 검찰은 "신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행위는 헌법을 수호하려 한 것"이라며 "재심 청구 대상자 모두에게 무죄를 구형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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