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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20년 태양광 계약' 부정 사례 적발 한 번도 없어"

입력 2021-03-26 13:36

'투자'란 이름 아래 태양광 운영하는 '꼼수 농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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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란 이름 아래 태양광 운영하는 '꼼수 농민들'

"처음부터 끝까지 저희가 해드릴 수 있어요. 농업인이 되시는 겁니다."

태양광 분양 업체가 취재진에게 한 말입니다. 농업인 신분으로 태양광 발전 시설을 운영하면 혜택이 많기 때문입니다. 전기 공급의무사들(한국수력원자력 등 전기를 공급하는 공기업)과 장기 계약이 가능하고, 축사나 재배사에 태양광 시설을 설치해 전기를 생산하면 1.5배 가격으로 전기 판매가 가능합니다.
JTBC 뉴스룸 캡처JTBC 뉴스룸 캡처

◆관련리포트
[밀착카메라] 농사는 시늉만…지붕엔 '돈 나오는' 태양광 빼곡
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997481

◆축사·재배사 위 태양광, 그 황당한 곳들

농지 투기 의혹이 짙어지고 있는 지금, JTBC 밀착카메라 팀은 농촌의 태양광 발전 시설로 눈을 돌렸습니다. '투자'라는 이름 아래 꼼수가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밀착카메라 팀이 취재한 꼼수 사례는 이렇습니다.


①'토끼 몇 마리' 축사 위 태양광
JTBC 뉴스룸 캡처JTBC 뉴스룸 캡처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토끼 사육장입니다. 제보받은 장소에 토끼는 10마리가 채 안 됐습니다. 축산업으로 농업인 자격을 갖추기 위해선 최소 토끼 100마리는 키워야 합니다. 소유주는 서울 사람이었습니다. 근처에 있는 다른 곳도 서울 사람이 갖고 있었습니다. 찾아갔습니다. 소유주는 "다른 지역에 농지를 갖고 있어 농업인 신분을 받아 FIT 계약을 했고 합법적이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태양광 시설에 자주 가보진 못한다고 했습니다.

②말라비틀어진 버섯 재배사 위 태양광
건축물대장에 버섯 재배사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버섯이 정말 있었습니다. 어딘가 이상합니다. 배수 시설도 습도 조절 장치도, 필수적이라는 암막도 없습니다. 버섯 전문가에게 물었습니다. "화가 난다"고 했습니다. "양도 적고, 원래 땅에서 하지 않는다"며 "온습도 조절 장치도 없고 태양광 하기 위해 그냥 놓은 것 같다"고 합니다. 먹을 수도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JTBC 뉴스룸 캡처JTBC 뉴스룸 캡처

③굼벵이 없는 굼벵이 축사
굼벵이 사육장 위에도 태양광 시설을 설치할 수 있습니다. 취재진이 카메라를 넣어 확인한 사육장 안에 굼벵이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인근 주민은 "농민들이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저건 편법이다"라며 "굼벵이가 목적이 아니라 태양광이 목적이다"라고 했습니다. "허가만 내고 끝날 게 아니라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소규모 발전 사업자 위한 '20년 계약' 한국형 FIT 제도

'고정 가격 계약 제도' 이른바 '한국형 FIT' 제도는 지난 2018년 7월 시행됐습니다. 최대 20년 동안 고정된 금액으로 전기를 판매할 수 있습니다. 소규모 태양광 발전 사업자들이 안정적으로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이들이 생산하는 전기를 장기적으로 사들이는 제도라 인기가 높았습니다. 태양광 발전 시설을 더 많이 보급할 수 있다는 취지도 있습니다.

'농업인' 신분이면, 일반 태양광 발전 사업자보다 더 많은 용량으로 계약할 수 있습니다. 일반 사업자의 경우 30kW까지 계약이 가능한데 농민은 100kW까지 계약이 가능합니다.
JTBC 뉴스룸 캡처JTBC 뉴스룸 캡처

그런데 이 한국형 FIT에 계약된 소규모 태양광 발전소 중, 사후 관리·감독을 통해 부정한 사례를 찾아 계약이 해지된 적이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부정한 사례란 농업인 신분을 얻어 이른바 꼼수를 통해 농사나 축산활동은 제대로 하지 않고 태양광 투자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것 등을 말합니다.

에너지 당국 관계자는 "관리·감독을 통해 계약 해지한 사례가 없었냐"는 취재진 질문에 "기존까진 없었다"며 "앞으로 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다만 한국형 FIT로 계약한 태양광 발전 시설을 농업인이 아닌 사람한테 매각·양도·상속할 때 계약이 해지된 적은 있었다고 합니다. 농업인 자격은 품질관리원이나 지자체에서 발급합니다. 계약을 해지하려면 농업인 신분을 문제 삼아야 하는데 사실상 에너지 당국에서 이를 판단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생긴 문제일 수 있습니다.
JTBC 뉴스룸 캡처JTBC 뉴스룸 캡처

◆너무 쉬운 '농업인 신분'…"여의도 농민이란 말도"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농업인 자격 취득이 쉽다는 겁니다. 취재진과 통화한 한 태양광 업체는 "시공사에서 위탁으로 다 해준다"며 "땅에 뭘 심어주니까 농업인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토지를 갖게 됨으로써 쉽게 농업인이 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다른 업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해줄 수 있다. 직접 재배하기 곤란하면 일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고용하면 된다"라고 했습니다. 농지법상 농지에선 '자경'을 해야 농업경영을 하는 거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고정 가격 계약 제도'에서 관리·감독을 통해 계약이 해지된 적이 없었다는 건, 그만큼 사후 관리가 미흡했다는 걸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한 에너지 당국 관계자는 "여의도 농민이라고 하더라. 농민 자격을 발급 안 해줘야 하는데, 법적으로는 정상적인 절차라 문제"라며 허탈해했습니다. 취지 좋은 제도에 꼼수가 이어지고, 그 꼼수에 대해서 당국이 손을 놓고 있으면 진짜 '농업인'이 설 자리는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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