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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레아노를 아시나요?" 쿠바 한인 이주 100주년

입력 2021-03-25 17:32

이국 땅에서 독립 지원했지만 잊혀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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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 땅에서 독립 지원했지만 잊혀진 사람들


'페르난도 킴, 에두아르도 리, 마누엘 팍'

스페인식의 낯선 이름이지만 성을 보면 우리의 김, 이, 박을 나타내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100년 전 지구 반대편인 쿠바에 정착한 한인들의 이름입니다.

당시 한인들은 자신들을 '꼬레아노(한국인)'라고 현지 주민들에게 부르게 했습니다.

1905년 대한일보 농부모집 광고 〈사진=전남대 김재기 교수 제공〉1905년 대한일보 농부모집 광고 〈사진=전남대 김재기 교수 제공〉
▶1,033명 조선을 떠나다

1905년 1월 29일 대한일보에 '농부 모집 광고'가 실렸습니다.

멕시코에 가면 '집과 밭을 주고, 원하면 공부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희망 없는 일제 치하보다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1,033명의 조선인은 인천 제물포에서 멕시코행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40여일의 긴 여정 끝에 태평양을 건너 도착한 곳은 멕시코.

하지만 기대와는 전혀 다른 곳이었습니다.

하루 12시간 넘게 에네켄(선박용 로프 등을 만드는 선인장의 일종) 농장에서 노예처럼 일만 해야 했습니다.

결국 견디다 못한 일부 조선인은 사정이 조금이라도 나은 쿠바로 이주를 결정했습니다.

쿠바 한인 80주년 기념비 〈사진=전남대 김재기 교수 제공〉쿠바 한인 80주년 기념비 〈사진=전남대 김재기 교수 제공〉
▶1921년 3월 25일 쿠바 마나티항 도착

멕시코를 떠난 한인 300여명은 100년 전 오늘(3월 25일), 쿠바 동북단의 마나티항에 도착했습니다.

이후 마탄사스와 아바나 등의 사탕수수 농장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후 설탕의 수출가격이 폭락하면서 쿠바의 경제 상황도 좋지 않았습니다.

에네켄의 억센 가시를 피해 떠났던 그들은 또다시 쿠바 곳곳의 에네켄 농장에서 일해야만 했습니다.

쿠바 대한인국민회 활동(1934년 마탄사스) 〈사진=전남대 김재기 교수 제공〉쿠바 대한인국민회 활동(1934년 마탄사스) 〈사진=전남대 김재기 교수 제공〉
고된 삶 속에서도 한인들은 한국학교와 쿠바 최초의 한인회인 '대한인국민회'를 만들어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애썼습니다.

1910년부터 일제 강점기를 맞으며 우러난 모국 독립에 대한 열정은 흩어져 살던 한인들을 한데 뭉치게 했습니다.

쿠바 카르데나스 독립자금 목록 〈사진=전남대 김재기 교수 제공〉쿠바 카르데나스 독립자금 목록 〈사진=전남대 김재기 교수 제공〉
▶독립운동 지원 자금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내

한인들은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를 통해 독립운동 지원 자금을 모았습니다.

1945년 해방 때까지 인구세와 독립의연금, 광복군비 등의 항목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미국에 있는 대한인국민회 총회에 독립운동 자금을 보냈습니다.

기마부대 결성(1925년 마탄사스) 〈사진=전남대 김재기 교수 제공〉기마부대 결성(1925년 마탄사스) 〈사진=전남대 김재기 교수 제공〉
무장 기마대를 만들고 일본에 맞서 싸울 준비를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 소식을 전해 듣고 지지 집회를 열고 특별 후원금도 모금했습니다.

한 달 임금이 5~6달러에 불과했지만 많게는 절반의 돈을 내놨습니다.

남녀노소, 부자와 가난한 사람 가리지 않고 여력이 되는대로 후원금을 냈습니다.

1930년 5월 1일 자 대한인국민회 기관지 '신한민보'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미국과 쿠바, 멕시코의 한인들에게 전하는 감사의 편지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독립유공자 호근덕 선생 서훈 전수식(2017년 4월) 〈사진=전남대 김재기 교수 제공〉독립유공자 호근덕 선생 서훈 전수식(2017년 4월) 〈사진=전남대 김재기 교수 제공〉
▶2015년 이후 쿠바 한인 30여 명 서훈 추서

정부는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평가해 2015년 이후 쿠바 한인 30여명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애족장·건국포장 등의 서훈을 추서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서훈이 전달되지 않은 한인은 20여명입니다.

쿠바와 미수교 상태여서 전달이 쉽지 않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서훈을 전달받을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미국과 중남미 곳곳으로 흩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2011년 건국포장이 추서됐던 호근덕 선생의 경우 6년이 지나 서훈이 전달되기도 했습니다.

쿠바의 이주 한인 1~2세대는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후손 1천여명이 남아 있습니다.

〈사진=전남대 제공〉〈사진=전남대 제공〉
▶쿠바 한인 이주 100주년 기념해 사진전 열려

쿠바 한인 100년의 발자취를 담은 전시회는 오는 31일까지 서울 서초구 외교타운 1층에서 열립니다.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김재기 교수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동안 모은 자료 5천여건 중 2백여건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쿠바와 미국, 멕시코 등 3개국 20여개 도시를 방문해 직접 촬영하거나 후손들이 소장하던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김 교수는 "쿠바와 외교적 관계가 수립되지 않아 민간 차원의 외교가 절실하다"며 "쿠바의 한인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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