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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승진시험 교재 베꼈다" 경찰공제회가 경찰 간부 고소

입력 2021-03-25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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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공제회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보유 자산 4조원, 회원 수는 12만명에 달하는 경찰청 산하 비영리법인이자, 공직 유관단체로 분류됩니다. 홈페이지에선 "경찰공무원의 생활안정과 복지증진을 도모하고 경찰행정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복지기관"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경찰공제회가 현직 경찰 간부를 검찰에 고소했습니다. 경찰 승진시험 교재를 표절했다는 이유입니다. 입시 기업도 학원가도 아닌 경찰에서 교재 표절이라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위치한 경찰공제회 건물. [JTBC 보도 영상 캡처]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위치한 경찰공제회 건물. [JTBC 보도 영상 캡처]

경찰공제회는 경찰 복지 사업에 쓸 자산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수익 사업도 진행하는데, 그중 출판사업도 있습니다. 대표 상품 중 하나가 경찰 승진시험 과목 중 하나인 '경찰실무종합' 기본서와 관련 문제집입니다. 경찰 업무와 관련된 법, 경찰청 예규, 수사 규칙 등이 주 내용입니다. 순경으로 경찰에 채용되면 경장ㆍ경사ㆍ경위를 거쳐 경감으로 진급할 때까지 최소 4번 이상은 경찰실무종합 과목을 공부해야 합니다. 응시자 수는 매년 2만여명 수준인데, 대부분의 응시자가 필수적으로 경찰공제회 교재를 이용한다고 합니다.

서울 지역 경찰서에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다른 책이 있는지도 몰랐다. 경찰공제회 책이 오래되기도 했고, 사실상 그 책이 시험 범위라고 인식하고 있다. 출제 범위가 책 내용을 벗어나지는 않는 거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해당 교재 저자 중 한명은 경찰들이 모인 카페에 "경찰청의 공식적 입장은 '공제회 기본서에 있는 내용만 출제한다'는 것"이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물론 경찰청에선 "해당 교재가 시험 범위라는 건 사실이 아니다"란 입장이지만, 이 같은 인식 때문인지 경찰공제회가 교재를 내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지금까지 경찰공제회의 책은 사실상 해당 과목의 '바이블'로 여겨져 왔다는 게 다수 경찰관의 설명입니다. 그런데 이 아성에 현직 경찰 간부 한명이 도전합니다. 서울의 한 일선 경찰서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는 A 경감입니다.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연합뉴스]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연합뉴스]

A 경감은 2017년부터 경찰실무종합 기본서를 출간했습니다. "승진시험 때마다 어쩔 수 없이 경찰공제회 책을 사서 봤는데, 교재 질이 썩 좋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경찰 동료들이 꽤 있다는 걸 알고, 직접 교재를 내보기로 했다"는 게 그가 밝힌 출간 이유입니다.

그런데 지난 1월, A 경감에게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장이 접수됐으니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연락이 옵니다. 경찰공제회에서 A 경감을 고소한 겁니다.

경찰공제회는 고소장을 통해 "우리 교재를 그대로 복제하거나, 교재의 표현과 실질적으로 유사한 내용의 복제물을 작성해 저작재산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찰공제회 관계자는 "2017년 처음 책을 냈을 때부터 지켜봤는데, 우리 교재 내용을 무단으로 베낀 데다 해가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져서 더 지켜볼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명백한 표절이라는 겁니다.

반면 A 경감 측은 황당하다는 입장입니다. A 경감의 책을 출판하는 곽민규 웨이크업얼리 대표는 "책 내용 60%가 법조문이나 규정 등이고, 나머지도 학계에서 이미 정립되고 통용되는 내용인데 이런 개념서가 표절이라면 모든 시험 교재는 다 한 곳에서만 출판해야 하는 거냐"며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경찰공제회에서 경쟁자 '싹 자르기'를 위해 고소를 한 것 같다"고 반발했습니다.

지난 2018년 2차 경찰 채용시험을 앞두고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한 경찰학원에서 응시생들이 시험준비에 집중하는 모습. [연합뉴스]지난 2018년 2차 경찰 채용시험을 앞두고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한 경찰학원에서 응시생들이 시험준비에 집중하는 모습. [연합뉴스]

또 고소까지 이르게 된 경위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합니다. 출판사 측은 "경찰 입시 및 승진시험 분야에서 유명한 B 학원이 경찰공제회 교재를 이용해 유료 강의를 하고 있는데, 해당 학원의 입김 때문에 고소까지 하게 된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고소 대리인도 경찰공제회 자문 법무법인이 아닌, B 학원과 연관된 법무법인이 맡고 있다"며 "민간 기업도 아닌 경찰청 산하의 경찰공제회가 특정 학원과 논의하고, 해당 학원의 이익을 위해 현직 경찰을 고소한 게 상식적인 일이냐"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경찰공제회 측 사정을 잘 아는 인사를 통해 '경찰공제회가 합의를 하고 원만히 해결할 의사도 갖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사실상 합의금을 받아 내거나 고소를 빌미로 책을 못 내게 하려고 압박하는 건 아닌지도 의심스럽다"고 덧붙였습니다.

곽민규 웨이크업얼리 대표. [JTBC 보도 영상 캡처이크업얼리 대표. [JTBC 보도 영상 캡처]곽민규 웨이크업얼리 대표. [JTBC 보도 영상 캡처이크업얼리 대표. [JTBC 보도 영상 캡처]


이에 대해 경찰공제회 측은 "B 학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있고, B 학원에 관련 전문가들도 많아서 교재 내용이 표절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논의를 한 것은 맞다"며 "그러나 먼저 고소를 결정한 건 경찰공제회지, B 학원과 고소사건은 관계없다"고 밝혔습니다. 또 합의에 대해선 "고소장 접수 과정에서 만약 합의가 가능하면 고려해 볼 의사가 있냐고 물어서, 피고소인 측에서 원한다면 논의하는 건 가능하다고 했을 뿐 합의금 요구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라며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양측 입장이 팽팽한 만큼, 결론은 검찰과 법원에서 내려질 예정입니다. 입시 학원가에서나 일어날 법한, 교재 판매와 강의를 둘러싼 경찰청 산하 기관과 현직 경찰 간부 사이의 갈등. 법원의 판단은 무엇일까요.

윤정민 기자 (yunjm@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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