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대전지방법원. 영상취재기자 박세준 (영상캡처) ◇사건의 전말 지난 2018년 5월, 아내 박 모 씨와 남편 임 모씨는 이혼 소송 끝에 서로 갈라섰습니다. 법원은 남편 임 씨가 매달 200만원의 양육비를 박 씨에게 보내라고 했습니다. 2019년 3월과 4월, 양육비가 들어오지 않자 박 씨는 임 씨를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제보했고, 아래와 같은 일을 했습니다.
① 2019년 7월 1일. 박 씨는 '배드파더스' 사이트 링크를 복사해서, 부부가 함께 알던 지인들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냅니다. "친구가 이 사이트 알려줘서 들어갔다가 보고 저까지 너무 창피해지네요." ② 2019년 7월 10일. 페이스북에 임 씨 사진과 함께 글을 올립니다. "당신의 아이들을 위한 양육비 지급을 촉구합니다.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올라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으세요?" 임 씨는 페이스북에 글이 올라온 뒤 양육비 400만원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박 씨를 정보통신망법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이 내려졌지만 박 씨는 정식 재판을 청구했습니다. 이 사건을 맡은 대전지법 형사12부는 어제(22일) 국민참여재판으로 이 사건을 심리했습니다. ①과 ② 행동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양측 주장은 이랬습니다.
▶검찰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오를 정도로 임 씨가 '배드 파더'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씨는 임 씨에게 망신 주기 위한 목적(비방할 목적)으로 해당 사이트 링크를 여기저기 나른 것이니 정보통신망법 명예훼손이 맞다.
-박 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구형한다. |
▶박 씨 -양육비를 주지 않은 것은 자녀의 복리(행복과 이익) 문제다.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에 올린 것은 오로지 양육비를 받기 위한 행동이었고, 임 씨를 비방할 목적도 없었다. 특히 양육비 문제는 공적 관심 사안이므로 공익성이 인정돼, 비방할 목적이 인정되지 않는다. |
나이와 성별이 다양하게 섞인 배심원 8명은 오전 11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이어지는 재판 과정을 또렷하게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논의 끝에 박 씨가 유죄인지 무죄인지, 평결 결과를 내놨습니다. 배심원들의 평결 결과를 전해드리기 전에, 당시 쟁점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배심원이라면 어떤 평결을 내리시겠습니까?
국민참여재판 피고인으로 법정에 나온 박 모씨. 영상취재기자 박세준 (영상캡처) ◇"고작 400만원입니다" "피해자가 아이 양육비를 계속 주지 않았다면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올라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피해자는 형편이 어려워 주지 못했을 뿐입니다. 못 준 기간은 2달입니다."
검사는 배심원들에게 남편 임 씨가 2019년 3월과 4월을 제외하고는 꼬박꼬박 양육비를 입금했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고작 400만원"이라고도 했습니다. '배드파더스' 사이트에는 악질적인 사람들만 올라가야지, 임 씨는 양육비를 '주지 못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임 씨도 당시 세무조사가 들어와 사업이 어려웠다고 증언했습니다. 또 당시 박 씨가 국세청에 민원을 넣었기 때문에 세무조사가 시작된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자 검사는 "박 씨가 양육비를 못 받는 상황을 자초한 것 아니냐"고도 했습니다.
박 씨가 법정에서 눈물을 흘리자 "눈물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도 모르겠다." 며 몰아붙였습니다. 또 당시 박 씨와 임 씨가 추가적인 재산 분할 소송을 하고 있던 점을 언급했습니다. 박 씨가 해당 재판을 유리하게 끌어가기 위해 국세청에 민원을 넣고, 일부러 임 씨의 명예를 훼손하는 게시물을 올렸다는 주장입니다.
이번에는 박 씨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남편 사업체에서 일하다 이혼한 뒤 다른 직업을 찾아야했던 박 씨는 월평균 200만원의 급여를 받으며 생활했다고 합니다. 임 씨가 양육비를 주지 않은 2019년 3월과 4월에는 두 아이가 고등학생이어서 아이들에게만 300만 원 이상을 지출했다고 하죠. 급기야는 마이너스 통장으로 생활비를 충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임 씨가 돈을 언제까지 주겠다는 말도 없이 4월에 '기다리라'는 문자만 보냈다고 했습니다. 상황이 점점 버티기 어려워지자 '배드파더스' 사이트를 알게 됐고, 임 씨에게 미리 링크를 보내 일종의 '경고'를 했다는 게 박 씨 입장입니다. 또 임 씨가 당시 양육비를 못 줄 만큼 어려웠다는 증거도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박 씨는 피고인 신문에서 "두 달 치 양육비를 안 준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양육비를 안 준 게 중요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또 임 씨가 나중에는 양육비를 줄 때 현금으로 주지도 않고, 자신 명의의 체크카드를 줬다고도 하는데요. 체크카드 비밀번호를 알 수 없으니 언제 양육비가 들어오는지도 모를 뿐 아니라 현금으로 지출되는 교육비로는 사용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임 씨가 박 씨에게 "재산 분할로 가져간 주식을 다 넘겨주면 양육비를 현금으로 주고 명예훼손 고소를 취하해주겠다"는 문자를 보낸 사실도 밝혔습니다.
◇공익적인 문제냐? 사사로운 글이냐? 이번에는 법리적인 쟁점을 따져보겠습니다. 핵심은 박 씨의 카카오톡 메시지와 페이스북 게시 글에 '비방할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입니다.
공소사실 적용 법조 그런데 이 '비방할 목적'은 공익성 여부에 따라 좀 다르게 판단됩니다. 우리 대법원은 해당 사실이
'공익에 관한 것'이라면 비방 목적이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대법원 2010. 2. 11. 선고 2009도14890 등)
박 씨 측 변호인은 '미투'와 '학교폭력' 사례를 들면서, 박 씨의 게시 글도 공익성이 인정돼 비방의 목적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양육비 미납 문제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사사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모든 행동은 양육비를 받아내기 위한 것일 뿐 실제로도 비방의 목적이 없었고, 양육비를 모두 받아낸 뒤에는 페이스북 게시 글을 삭제했다고도 했습니다. 또 임 씨가 양육비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명예훼손 위험을 자초한 것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검사 주장은 이렇습니다. 양육비를 수 십 년간 주지 않는 악질적인 아빠에 대해서야 '공적 관심사'라고 볼 수 있겠지만, 두 달 치 양육비는 순수한 사적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또 그러면서 한 사례를 들었습니다. 어느 환자가 쌍꺼풀 수술 부작용에 대해서 미리 고지를 받았는데도 나중에 부작용이 생겼다며 악의적인 후기를 블로그에 게시한 사건입니다. 당시 재판에서 공익성이 인정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검사는 임 씨가 "기다리라"고 문자를 보냈는데도 박 씨가 글을 올린 것을 빗대어 설명했습니다. 방청석에서는 검사가 쌍꺼풀 수술과 양육비 사안을 단순 비교한 것이 부적절하다는 반응도 터져 나왔습니다. 어쨌든 검사 주장은, 박 씨의 카카오톡 메시지와 페이스북 게시 글은 사적 영역이고 비방할 목적이 충분했다는 것입니다. 임 씨는 양육비 두 달 치만 안 준 것인데, 박 씨가 계속 양육비를 받지 않은 것처럼 글을 쓴 것도 언급했습니다. 또 임 씨가 박 씨의 페이스북 게시글로 인해 거래처와 거래가 끊기는 등 '얼굴을 들 수 없는' 피해를 봤다고도 주장했습니다.
◇배심원의 선택은 ① 2019년 7월 1일. 카카오톡 메시지 "친구가 이('배드파더스') 사이트 알려줘서 들어갔다가 보고 저까지 너무 창피해지네요." ② 2019년 7월 10일. 페이스북 "당신의 아이들을 위한 양육비 지급을 촉구합니다.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올라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으세요?" 두 가지 공소사실. 마음속의 평결을 어느 정도 내려 보셨나요? 이번 재판 배심원들 8명의 평결 결과도 전해드리겠습니다.
결과는 ① 카카오톡 메시지 무죄, ② 페이스북 유죄입니다. 그리고 벌금 100만원을 선고해달라고 평결했습니다.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여 선고했습니다.
배심원들은 "카카오톡 메시지에 공익성은 없지만, 비방할 목적은 없다"며 만장일치로 무죄를 평결했습니다. 반면 페이스북 게시 글은 "사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며 "정보통신망법 명예훼손이 인정된다."고 다수결로 평결했습니다.
재판에 증인으로 서기도 했던 구본창 '배드파더스' 활동가는 "양육비를 못 받았는데도 SNS 활동을 일체 하지 말라는 것이냐"면서 납득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무료 변론에 나섰던 지평 장기석 변호사도 벌금 50만원형이 선고됐던 비슷한 사례를 언급하며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양형 기준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피고인으로 법정에 섰던 박 씨는 '절반의 성공'이라며 오히려 변호인단을 위로하면서도, 판결 이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다며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오효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