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두 달 양육비 400만원 미납 '배드 파더' 고발…명예훼손일까?

입력 2021-03-23 16:38

카카오톡·페이스북으로 양육비 미납 남편 밝힌 양육자…대전서 국민참여재판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페이스북으로 양육비 미납 남편 밝힌 양육자…대전서 국민참여재판

지난 22일 대전지방법원. 영상취재기자 박세준 (영상캡처)지난 22일 대전지방법원. 영상취재기자 박세준 (영상캡처)

◇사건의 전말
지난 2018년 5월, 아내 박 모 씨와 남편 임 모씨는 이혼 소송 끝에 서로 갈라섰습니다. 법원은 남편 임 씨가 매달 200만원의 양육비를 박 씨에게 보내라고 했습니다. 2019년 3월과 4월, 양육비가 들어오지 않자 박 씨는 임 씨를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제보했고, 아래와 같은 일을 했습니다.

① 2019년 7월 1일. 박 씨는 '배드파더스' 사이트 링크를 복사해서, 부부가 함께 알던 지인들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냅니다. "친구가 이 사이트 알려줘서 들어갔다가 보고 저까지 너무 창피해지네요."

② 2019년 7월 10일. 페이스북에 임 씨 사진과 함께 글을 올립니다. "당신의 아이들을 위한 양육비 지급을 촉구합니다.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올라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으세요?"

임 씨는 페이스북에 글이 올라온 뒤 양육비 400만원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박 씨를 정보통신망법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이 내려졌지만 박 씨는 정식 재판을 청구했습니다. 이 사건을 맡은 대전지법 형사12부는 어제(22일) 국민참여재판으로 이 사건을 심리했습니다. ①과 ② 행동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양측 주장은 이랬습니다.

▶검찰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오를 정도로 임 씨가 '배드 파더'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씨는 임 씨에게 망신 주기 위한 목적(비방할 목적)으로 해당 사이트 링크를 여기저기 나른 것이니 정보통신망법 명예훼손이 맞다.

-박 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구형한다.

▶박 씨
-양육비를 주지 않은 것은 자녀의 복리(행복과 이익) 문제다.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에 올린 것은 오로지 양육비를 받기 위한 행동이었고, 임 씨를 비방할 목적도 없었다.
특히 양육비 문제는 공적 관심 사안이므로 공익성이 인정돼, 비방할 목적이 인정되지 않는다.


나이와 성별이 다양하게 섞인 배심원 8명은 오전 11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이어지는 재판 과정을 또렷하게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논의 끝에 박 씨가 유죄인지 무죄인지, 평결 결과를 내놨습니다. 배심원들의 평결 결과를 전해드리기 전에, 당시 쟁점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배심원이라면 어떤 평결을 내리시겠습니까?


국민참여재판 피고인으로 법정에 나온 박 모씨. 영상취재기자 박세준 (영상캡처)국민참여재판 피고인으로 법정에 나온 박 모씨. 영상취재기자 박세준 (영상캡처)



◇"고작 400만원입니다"

"피해자가 아이 양육비를 계속 주지 않았다면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올라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피해자는 형편이 어려워 주지 못했을 뿐입니다. 못 준 기간은 2달입니다."

검사는 배심원들에게 남편 임 씨가 2019년 3월과 4월을 제외하고는 꼬박꼬박 양육비를 입금했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고작 400만원"이라고도 했습니다. '배드파더스' 사이트에는 악질적인 사람들만 올라가야지, 임 씨는 양육비를 '주지 못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임 씨도 당시 세무조사가 들어와 사업이 어려웠다고 증언했습니다. 또 당시 박 씨가 국세청에 민원을 넣었기 때문에 세무조사가 시작된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자 검사는 "박 씨가 양육비를 못 받는 상황을 자초한 것 아니냐"고도 했습니다.

박 씨가 법정에서 눈물을 흘리자 "눈물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도 모르겠다." 며 몰아붙였습니다. 또 당시 박 씨와 임 씨가 추가적인 재산 분할 소송을 하고 있던 점을 언급했습니다. 박 씨가 해당 재판을 유리하게 끌어가기 위해 국세청에 민원을 넣고, 일부러 임 씨의 명예를 훼손하는 게시물을 올렸다는 주장입니다.

이번에는 박 씨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남편 사업체에서 일하다 이혼한 뒤 다른 직업을 찾아야했던 박 씨는 월평균 200만원의 급여를 받으며 생활했다고 합니다. 임 씨가 양육비를 주지 않은 2019년 3월과 4월에는 두 아이가 고등학생이어서 아이들에게만 300만 원 이상을 지출했다고 하죠. 급기야는 마이너스 통장으로 생활비를 충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임 씨가 돈을 언제까지 주겠다는 말도 없이 4월에 '기다리라'는 문자만 보냈다고 했습니다. 상황이 점점 버티기 어려워지자 '배드파더스' 사이트를 알게 됐고, 임 씨에게 미리 링크를 보내 일종의 '경고'를 했다는 게 박 씨 입장입니다. 또 임 씨가 당시 양육비를 못 줄 만큼 어려웠다는 증거도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박 씨는 피고인 신문에서 "두 달 치 양육비를 안 준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양육비를 안 준 게 중요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또 임 씨가 나중에는 양육비를 줄 때 현금으로 주지도 않고, 자신 명의의 체크카드를 줬다고도 하는데요. 체크카드 비밀번호를 알 수 없으니 언제 양육비가 들어오는지도 모를 뿐 아니라 현금으로 지출되는 교육비로는 사용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임 씨가 박 씨에게 "재산 분할로 가져간 주식을 다 넘겨주면 양육비를 현금으로 주고 명예훼손 고소를 취하해주겠다"는 문자를 보낸 사실도 밝혔습니다.




◇공익적인 문제냐? 사사로운 글이냐?
이번에는 법리적인 쟁점을 따져보겠습니다. 핵심은 박 씨의 카카오톡 메시지와 페이스북 게시 글에 '비방할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입니다.

공소사실 적용 법조공소사실 적용 법조

그런데 이 '비방할 목적'은 공익성 여부에 따라 좀 다르게 판단됩니다. 우리 대법원은 해당 사실이 '공익에 관한 것'이라면 비방 목적이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대법원 2010. 2. 11. 선고 2009도14890 등)

박 씨 측 변호인은 '미투'와 '학교폭력' 사례를 들면서, 박 씨의 게시 글도 공익성이 인정돼 비방의 목적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양육비 미납 문제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사사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모든 행동은 양육비를 받아내기 위한 것일 뿐 실제로도 비방의 목적이 없었고, 양육비를 모두 받아낸 뒤에는 페이스북 게시 글을 삭제했다고도 했습니다. 또 임 씨가 양육비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명예훼손 위험을 자초한 것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검사 주장은 이렇습니다. 양육비를 수 십 년간 주지 않는 악질적인 아빠에 대해서야 '공적 관심사'라고 볼 수 있겠지만, 두 달 치 양육비는 순수한 사적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또 그러면서 한 사례를 들었습니다. 어느 환자가 쌍꺼풀 수술 부작용에 대해서 미리 고지를 받았는데도 나중에 부작용이 생겼다며 악의적인 후기를 블로그에 게시한 사건입니다. 당시 재판에서 공익성이 인정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검사는 임 씨가 "기다리라"고 문자를 보냈는데도 박 씨가 글을 올린 것을 빗대어 설명했습니다. 방청석에서는 검사가 쌍꺼풀 수술과 양육비 사안을 단순 비교한 것이 부적절하다는 반응도 터져 나왔습니다. 어쨌든 검사 주장은, 박 씨의 카카오톡 메시지와 페이스북 게시 글은 사적 영역이고 비방할 목적이 충분했다는 것입니다. 임 씨는 양육비 두 달 치만 안 준 것인데, 박 씨가 계속 양육비를 받지 않은 것처럼 글을 쓴 것도 언급했습니다. 또 임 씨가 박 씨의 페이스북 게시글로 인해 거래처와 거래가 끊기는 등 '얼굴을 들 수 없는' 피해를 봤다고도 주장했습니다.




◇배심원의 선택은

① 2019년 7월 1일. 카카오톡 메시지 "친구가 이('배드파더스') 사이트 알려줘서 들어갔다가 보고 저까지 너무 창피해지네요."
② 2019년 7월 10일. 페이스북 "당신의 아이들을 위한 양육비 지급을 촉구합니다.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올라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으세요?"

두 가지 공소사실. 마음속의 평결을 어느 정도 내려 보셨나요? 이번 재판 배심원들 8명의 평결 결과도 전해드리겠습니다.
결과는 ① 카카오톡 메시지 무죄, ② 페이스북 유죄입니다. 그리고 벌금 100만원을 선고해달라고 평결했습니다.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여 선고했습니다.

배심원들은 "카카오톡 메시지에 공익성은 없지만, 비방할 목적은 없다"며 만장일치로 무죄를 평결했습니다. 반면 페이스북 게시 글은 "사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며 "정보통신망법 명예훼손이 인정된다."고 다수결로 평결했습니다.

재판에 증인으로 서기도 했던 구본창 '배드파더스' 활동가는 "양육비를 못 받았는데도 SNS 활동을 일체 하지 말라는 것이냐"면서 납득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무료 변론에 나섰던 지평 장기석 변호사도 벌금 50만원형이 선고됐던 비슷한 사례를 언급하며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양형 기준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피고인으로 법정에 섰던 박 씨는 '절반의 성공'이라며 오히려 변호인단을 위로하면서도, 판결 이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다며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오효정 기자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