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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취재] "피해자 중심"…확 바뀐 보이스피싱 수사 평가.gif

입력 2021-03-22 15:18 수정 2021-03-22 15:31

경찰 "피해 차단 성공해도 수사 포상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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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피해 차단 성공해도 수사 포상 적용"

보이스피싱에 사용되는 불법 중계기가 설치된 한 고시원의 모습. [서울경찰청 제공] 보이스피싱에 사용되는 불법 중계기가 설치된 한 고시원의 모습. [서울경찰청 제공]
1일 6억.

매일 서울에서 발생하는 보이스피싱 범죄의 피해 액수입니다. 전국으로 반경을 넓히면 1일 19억입니다. "내가 설마 걸리겠어"라고 생각하는 분들 많으실 텐데요. "방심하는 순간 이미 통장에선 돈은 빠져나간다"는 것이 경찰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보이스피싱 수사 포상제도 확 바뀌어
서울경찰청은 지난 1월부터 보이스피싱 수사의 포상과 평가 제도를 대폭 변경했습니다. 이에 따라 일선 경찰서의 보이스피싱 수사 방향도 변했습니다.

피의자를 아무리 많이 검거해도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계속 늘어나는 현실(17년 937억→20년 2228억, 서울 통계)이 경찰의 고민이었습니다. 서울경찰청은 이번에 바뀐 평가 제도가 보이스피싱의 피해액수를 대폭 줄일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보이스피싱에 사용되는 불법 중계기. 경찰은 이 사설중계기 1대를 찾아도 피의자 1명을 검거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제공] 보이스피싱에 사용되는 불법 중계기. 경찰은 이 사설중계기 1대를 찾아도 피의자 1명을 검거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제공]
과거 보이스피싱 수사의 가장 중요한 평가 항목은 '피의자 검거'였습니다. 말단부터 중간책, 수금책, 주로 중국에 거주하는 총책까지. 피의자의 중요도에 따라 검거 점수가 매겨졌습니다. 경찰관은 이에 따라 특진 등 포상을 받았습니다.

◆피의자 검거만큼 '피해차단'도 중요
하지만 올해 1월부터 경찰청은 피의자 검거만큼이나 보이스피싱 '피해 차단'에도 평가 점수를 부여했습니다. 과거에는 점수에 반영되지 않던 항목입니다. 서울청 관계자는 "예를 들어 중국에서 걸려오는 070 전화번호를 국내 010으로 바꿔주는 불법 중계기를 1대 찾아도 주요 피의자 1명을 검거한 것과 비슷한 점수를 부여한다"고 했습니다.

보이스피싱에 사용되는 악성앱을 백신 회사에 신고해도, 보이스피싱에 사용된 계좌와 전화번호를 찾아내 신고해도 평가 점수에 반영됩니다. 보이스피싱은 문자 및 접근단계(1단계)→음성 접근단계(2단계)→악성앱 설치단계(3단계)→피해금 교부단계(4단계)로 이뤄지는데 단계별 연결고리를 최대한 신속히 끊는 것이 경찰의 새로운 수사 목표입니다. 서울청 관계자는 "피의자 검거 만큼이나 보이스피싱을 빨리 차단해 피해액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제도 변경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보이스피싱 범죄의 경우 검거 인원이 늘어나도 피해액 역시 늘어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서울경찰청 제공] 보이스피싱 범죄의 경우 검거 인원이 늘어나도 피해액 역시 늘어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서울경찰청 제공]
이런 포상 제도가 바뀐 뒤 경찰은 2월부터 불법 사설중계기 집중단속을 벌였고 최근까지 전국 52개소에서 161개의 중계기를 적발해 철거했습니다. 과거 평가받는 수사관 입장에서 큰 실적이라 보기 어려운 수사였습니다.

◆'피의자 중심'→'피해자 중심'
하지만 이제 이 불법중계끼 차단은 161명의 피의자를 검거한 것과 비슷한 점수를 받게 되는 '실적'이 됐습니다. 피의자 검거를 중심으로 수사할 땐 경찰은 보이스피싱에 사용된 번호 등을 바로 차단하기보단 피의자를 '역추적'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수사 방향이 '피의자 중심'에서 '피해자 중심'으로 확 변한 겁니다.

일선 경찰서에서 보이스피싱 수사를 담당하는 수사관들은 이런 제도 변화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서울 한 경찰서의 수사과장은 "보이스피싱의 경우 지금과 같이 예방과 차단에 초점을 두는 게 옳은 방향으로 보인다"며 "보이스피싱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의 또 다른 경찰서 수사과장도 "보이스피싱에서 대부분은 수금책 등 말단을 검거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것 만으론 피해를 막을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 했습니다.

 
보이스피싱에 사용된 수사기관 사칭 파일. [서울경찰청 제공] 보이스피싱에 사용된 수사기관 사칭 파일. [서울경찰청 제공]
◆일선 경찰서 정보 공유해 윗선 친다
서울청은 이와 함께 각 경찰서에서 보이스피싱 수사를 할 경우, 해당 보이스피싱에 사용된 번호와 계좌번호도 모두 보고할 것을 의무화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정보를 공유해 범행에 사용된 계좌나 번호가 달라도 비슷한 패턴으로 범행이 이뤄지면 공통의 조직, 즉 윗선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경찰 관계자는 "각 경찰서에선 피해 차단을, 서울청에선 정보를 취합해 보이스피싱의 윗선을 치는 전략"이라 말했습니다.

 
보이스피싱에 사용되는 미끼문자. 실제 은행들의 광고와 매우 유사해 구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울경찰청 제공]보이스피싱에 사용되는 미끼문자. 실제 은행들의 광고와 매우 유사해 구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울경찰청 제공]
◆"방심하면 속을 수밖에 없어"
하지만 경찰은 보이스피싱 수사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시민들의 경각심이라 했습니다. 보이스피싱 수사에 정통한 경찰 관계자는 "이젠 보이스피싱의 미끼 문자와 실제 은행이 보내는 광고 문자를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또한 "보이스피싱을 통해 악성앱이 깔리면 핸드폰에 모든 정보가 노출되게 된다"며 "내 정보를 속속들이 아는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에게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 말했습니다. "내가 설마 당하겠어?"라는 생각보단 "나도 당할 수 있다"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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