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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24시]"10마리 되면 갚아요" 어려운 이웃에 송아지 선물

입력 2021-03-20 08:02 수정 2021-03-20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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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기·손점희 부부가 이 모 씨에게 전달한 암송아지 두 마리. 〈사진=강원 정선군청 제공〉김선기·손점희 부부가 이 모 씨에게 전달한 암송아지 두 마리. 〈사진=강원 정선군청 제공〉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송계4리에 사는 60살 김선기 씨와 57살 손점희 씨 부부는 이달 초 큰마음을 먹었습니다. 지난해 10월 태어나 6개월 동안 잘 자란 암송아지 2마리를 축사 밖으로 꺼냈습니다. 빌려온 트럭에 송아지를 싣고 향한 곳은 1km 떨어진 옆 마을에 사는 이 모 씨 집이었습니다. 송아지를 내려준 김 씨는 이 씨에게 당부했습니다.

"잘 키워서 송아지 10마리 되면 갚아요."

김 씨와 이 씨는 20여 년 전부터 알고 지냈습니다. 종종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가까워졌습니다. 김 씨는 나이가 3살 위인 이 씨에게 '형'이라고 부릅니다. 마음씨가 좋고, 남을 잘 돕고 해코지할 줄 모르는 '형'을 김 씨는 무척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씨의 삶은 순탄치 못했습니다. 형편은 넉넉지 않았습니다. 잊을 만하면 궂은일이 닥쳤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큰 눈이 내려 하우스가 무너지는 피해를 보았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부인의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언젠가 이 씨가 대출을 받으려고 은행에 갔다가 거절당하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들은 김 씨는 이 씨에게 700만 원을 이자 없이 빌려줬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축사를 지으려고 빌려준 돈을 돌려달라고 했을 때, 이 씨는 다른 사람에게 꿔가면서까지 돈을 갚았습니다. 김 씨는 이날 이후, 이 씨와 삼겹살에 소주를 한잔하면서 약속했다고 합니다.

"닭이나 염소는 돈이 안 될 테니, 암송아지를 2마리 드릴게요."

술김에 한 말이었지만, 김 씨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대신 송아지를 그냥 준 건 아닙니다. 잘 키워서 10마리로 늘어나면 그때 돌려달라며 '공짜는 없어'라고 한 겁니다. 잘만 키우면 3년이면 족히 10마리로 불릴 수 있답니다. 이쯤 되면 생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씨는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씨에게 도움을 준 사람이 또 있습니다. 72살 최돈환 씨입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최 씨는 송아지 사룟값에 보태라며 현금 100만 원을 이 씨에게 줬습니다. 옆에서 보면 참 착하고 성실하게 사는데, 꾸준히 농사도 짓는데 한 번 함정에 빠진 삶은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최 씨는 그런 이 씨가 늘 안타까웠습니다. 별로 큰 도움을 주지 못해 창피하다고 말했습니다. 마을 반장 일을 하는 최 씨는 평소에도 주위 어려운 이웃들을 늘 살폈다고 합니다.

시대가 바뀌었다지만 농사꾼에게 송아지는 자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송아지를 선뜻 내놓은 건 내 이웃이, 사람이 더 귀중했기 때문일 겁니다. 안 그래도 각박한 삶이 코로나 19 때문에 더욱 메마른 요즘입니다. 그래도 우리 곁에 이웃이 있어서 함께 버티고, 또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모쪼록 송아지들이 건강하게 잘 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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