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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의 뒷썰]백설기 데이·삼겹살 데이·오이 데이의 공통점은?

입력 2021-03-12 17:04 수정 2021-03-12 23:13

쌀값 16.5% 올랐는데..."(이모티콘 통해) 쌀 소비 촉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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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값 16.5% 올랐는데..."(이모티콘 통해) 쌀 소비 촉진하겠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이 오늘(12일)부터 무료로 배포하기 시작한 것이 있습니다.
무슨 농산물이냐고요?
아닙니다. 바로 카카오톡 이모티콘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이 3월 14일 백설기 데이를 기념해 무료 배포한 '백설기데이, 백퍼센트 설레는 기념일' 카카오톡 이모티콘.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이 3월 14일 백설기 데이를 기념해 무료 배포한 '백설기데이, 백퍼센트 설레는 기념일' 카카오톡 이모티콘.

농식품부와 농협이 웬 이모티콘을 배포하나, 의아하신 분들 계실 겁니다.
다 나름의 뜻이 있습니다. 농협 관계자가 밝힌 '이모티콘 배포의 이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이번 행사로 많은 분들께서 3월 14일을 백설기 데이로 인식하고 우리 쌀로 만든 백설기를 선물하는 건강한 문화가 정착되길 바란다. 앞으로도 쌀 소비가 늘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실제 이번에 배포되는 이모티콘은 '백설기 데이, 백퍼센트 설레는 기념일'이라는 제목으로 제작됐습니다. 총 3만 개의 이모티콘을 백설기 데이 카카오톡 채널을 추가하는 사람에게 선착순으로 배포하겠다고 했습니다.

기자가 카카오톡 채널에서 '백설기데이'를 추가해봤습니다.
아뿔싸. 12일 오후 3시40분도 안됐는데 준비된 이모티콘 3만 개가 모두 소진됐다고 합니다(사진 참조).

 
'백설기 데이 이모티콘'이 소진됐음을 알리는 카카오톡 채널 화면.'백설기 데이 이모티콘'이 소진됐음을 알리는 카카오톡 채널 화면.

그런데 기자가 가입했을 때 '백설기 데이' 채널 가입자는 2만6000여명이었습니다. 4000여명은 이모티콘을 받자마자 탈퇴한 것일까요?
"앞으로 다양한 소식과 혜택, 정보를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이모티콘 외엔 그 '혜택과 정보'를 받고 싶지 않은 사람도 꽤 있었던가 봅니다.

사실 기자가 보도자료를 보고 놀란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백설기 데이'가 만들어진지 벌써 10년이 됐다는 겁니다.

"상업적인 마케팅으로 알려진 화이트데이(3.14)에 사탕 대신 우리 민족 고유음식인 백설기 떡을 선물함으로써 쌀 소비를 촉진하고 건강한 기념일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2012년부터 시작되어 올해로 10회를 맞이했다."

지난 10년간 몰랐던 무관심을 반성하며, 농식품부 산하 기관들이 만든 '데이'들을 살펴봤습니다.

바로 얼마 전인 3월 3일은 '삼겹살 데이'였습니다.
"3이 겹치는 3월 3일을 달리 이르는 말로, 축협이 양돈 농가의 소득을 늘리기 위해 삼겹살을 먹는 날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 농촌진흥청은 그날을 맞아 '삼겹살을 맛있게 먹는 방법' 등을 보도자료로 배포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5월 2일은 '오이 데이'입니다.
"농촌진흥청에서 오이 농가의 소득을 늘리기 위해 지정한 날"이라고 돼 있습니다.

11월 11일은 '가래떡 데이'입니다. '빼빼로 데이'만은 아닙니다.
이 날은 '농업인의 날'이기도 해서 "함께 우리 먹거리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날"로 공공기관이 홍보해왔습니다.

결국 제목에 대한 답을 정리해보겠습니다.

백설기 데이, 삼겹살 데이, 오이 데이, 가래떡 데이의 공통점은?

바로 정부 부처 산하 공공기관들이 만들거나 홍보해온 기념일이라는 점입니다.

결국 쌀과 삼겹살, 오이 등 농축산물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요.
그 효과는 어떨까요.

우선 쌀을 보겠습니다.

쌀은 요새 '폭등'이란 말이 따라붙습니다.
'농산물 유통정보'에 따르면 오늘(3월12일 기준) 20kg짜리 쌀 포대가 6만36원에 육박했습니다. 1년 전 5만1517원에 비해 16.5%포인트나 올랐습니다.
작년 긴 장마와 태풍 등의 영향으로 일조량이 부족해 벼 작황이 좋지 않았다는 점과, 코로나 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쌀 소비량이 늘어난 게 원인으로 꼽힙니다.
그래서인지 한 막걸리 회사가 며칠 전 가격을 15년만에 올리면서 "쌀값 상승 때문"이라고 설명했는데요.
이 회사 뿐 아니라 쌀로 만드는 가공식품 회사들에서 가격 상승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농식품부는 상황이 이런데도 "벼 재배면적, 생산단수, 소비 감소 등 추이를 감안하면 쌀 생산량이 소비량보다 많은 공급 과잉 상황"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백설기 데이 이모티콘'도 만든 듯한데, 쌀값 상승이 부담스러운 시민들은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삼겹살과 오이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삼겹살은 100g 당 평균 2102원으로, 1년 전 1929원보다 8%정도 올랐습니다. 축산업계에선 "코로나 19로 외식 수요가 줄어 가격이 낮다가 그나마 최근 살아나기 시작했다"고 설명합니다. "삼겹살 데이의 효과는 크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오더군요.

오이도 10개 당 1만1921원으로, 1년 전 1만1788원보다 1.1%정도 오른 정도입니다. 현 상황으로선 '오이 데이'가 꼭 필요해 보이지는 않는데, 5월 2일엔 상황이 달라질 수 있으니 지켜봐야겠지요.

이처럼 정부 부처 산하 공공기관들이 만든 '데이'들은 뜻은 좋았지만, 그 필요성이나 효과에 대해선 매해, 시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단지 "매해 기념해왔고, 그 날이 왔다"는 이유로 기계적으로 '데이 판촉'을 하는 건 좀 다시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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