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기동취재]"우리 집 얘기, 미안해서 가족에게 말도 못합니다".txt

입력 2021-02-23 11:30 수정 2021-02-23 15:45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 "성남시 ㅇㅇ빌라로 오시면 됩니다"

박 모 씨를 만나기로 한 빌라에 도착하고선 다시 주소를 확인했습니다. 분명 철거할 위기라는데, 겉에서 봤을 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집 안도 깔끔했고 평범했습니다. 10년 전, 이 집을 보고 살 때 박 씨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박 씨는 최근 구청의 통지를 받았습니다. 박 씨의 집은 사무실 용도로 지어진 건축물인데 집으로 쓰고 있으니 원상 복구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싱크대, 난방, 임시 벽을 뜯어내기 전까진 매년 수백만 원의 이행강제금을 내라고도 안내했습니다.
 
--

인터뷰하는 박 씨 옆으로 약 봉투가 보였습니다. 조심스레 묻자 우울증과 위장약이라고 했습니다. 억울한 마음에 몸까지 아파져 처방받았다고 했습니다.

#박 씨는 집을 건드린 적이 없다

박 씨는 한 번도 집을 증축하거나 개조한 적이 없습니다. 불법 행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박 씨의 집을 무단으로 용도 변경한 건 건축주입니다.
 
--

10여년 전 건축주는 근린생활시설 용도로 건축물 준공 허가를 받았습니다. 상가나 사무실 용도로 쓰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허가를 받은 뒤엔 주택에만 놓을 수 있는 싱크대와 가스 시설을 설치합니다. 상가보단 주택 수요가 높으니 꼼수를 부린 겁니다. 세대 수에 맞는 주차공간이 필요한 공동주택과 달리 근린생활시설은 그럴 필요가 없어 경제적으로 이점이 있습니다.

부동산과 분양사무소는 여길 '주택'이라 홍보합니다. 집을 보러온 사람들에겐 위반건축물이라는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박 씨와 같은 피해자들이 계약합니다.

◆ 관련 리포트
[밀착 카메라] 내 집이 '주택' 아니라고?…'철거 통지' 날벼락
→ 기사 바로 가기 : 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992820

박 씨는 10년 동안 주택인 줄만 알고 살았습니다. 전입신고도 문제없이 했고 전기, 수도 요금 고지서에도 '주택용'이라 나왔습니다. 집이 시세보다 싸지도 않았습니다. 하자가 있을 거란 생각은 못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집에 대한 모든 책임은 박 씨가 져야 합니다. 건축법 위반 사실이 적발된 시점에 집을 가진 소유주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박 씨는 구청을 상대로 시정 명령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심판도 냈는데 기각됐습니다.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

안형준 전 건국대 건축대학 학장은 건축주에 대한 형사적인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현행법으로는 건축주가 편법을 써서 이익을 챙긴 뒤 건물을 팔아버리는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한다는 겁니다.

구청을 취재하며 들었던 말은 "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였습니다. 정말 억울한 사정이 있더라도, 집을 계약할 때 불법 여부를 몰랐더라도 그건 구청이 아니라 전 소유주랑 해결할 문제라는 겁니다.
 
--

#'근생 빌라' 추천하는 중개인들

취재진이 인터뷰한 다섯 명 모두 집을 계약할 땐 위반건축물이란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말합니다. 부동산이나 분양사무소에서 설명을 안 해줬다는 겁니다.

정말 그럴까. 부동산과 분양사무소 5곳에서 상담을 받아봤습니다. 신축 빌라에 관심이 있다고 하자 생각보다 빨리 근생이란 단어가 들렸습니다.

[A 분양사무소 : (신축 빌라 있나요?) 지금 근생 남아 있어요. 이건 2억2500. (저희가 문제 될 건 없고요?) 거주하는데 똑같이 자재 똑같고 구조 똑같고.]
 
--

문제는 있지만 잘 안 걸린다고 안심시키는 곳도 있습니다.

[B 부동산 : 그게 문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신고할 경우인데. 신고할 수가 없죠, 거의.]

근생 빌라의 위험성을 제대로 설명해 준 곳은 1곳뿐이었습니다. 피해자들은 집을 철거하거나 1년에 수백만 원의 과태료를 낼 수도 있다는 설명을 충분히 들었다면 분명 다른 선택을 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한 사연

취재 과정에서 50대 여성이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사정상 인터뷰는 못 하지만 털어놓고 싶다고 했습니다.

지병이 있는 이 여성은 일용직 노동을 하는 오빠와 단둘이 사는데, 6년 전에 산 집이 위반건축물이란 사실을 최근 알게 됐습니다. 매일 힘들게 돈을 벌어오는 예순의 오빠에겐 이 사실을 말도 못한 채 눈물만 삼킨다고 했습니다. 미안함, 그리고 자책감 때문이라는 겁니다.

불법건축물 양성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안은 국회 계류 중입니다. 선의의 피해자들을 구제할 조치가 필요하다는 건데, 아직 논의가 미진합니다. 피해자들은 오늘도 구청에, 국회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며 방관하지 말고 현실을 제대로 봐 달라는 겁니다. 한 피해자의 말을 전합니다.

"국가 기관에 억울함을 호소했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때 가장 좌절감이 들었습니다.
2억짜리 작은 집이 저희 서민들에겐 전 재산입니다. 제발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