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끝나지 않은 '염전노예' 사건...'재판부실' 소송 또다시 패소

입력 2021-02-16 18:14

염전주가 조작한 '처벌불원서' 그대로 받아들인 1심 재판부...국가배상청구소송서 사법부 책임 인정 안 돼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염전주가 조작한 '처벌불원서' 그대로 받아들인 1심 재판부...국가배상청구소송서 사법부 책임 인정 안 돼

◇끝나지 않은 '염전노예' 사건
한 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안 염전노예 사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법정 공방이 진행 중인데요. 13년간 염전에서 일을 해야만 했던 피해자 A씨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2001년, 신안의 한 염전 주인 박 모 씨는 A씨를 꼬드겨 자신의 염전으로 데려갑니다. '먹여주고 재워줄테니 우리 집에 가서 일하자, 돈도 70만원씩 주겠다.'고 얘기하면서요. A씨가 지적장애 2급이란 점을 이용한 겁니다. 그렇게 13년이 흘렀습니다. 박 씨는 A씨를 폭행하고 감금하기도 했고, 물론 임금도 주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계산해 임금 약 1억 2천만 원도 주지 않은 걸로 계산해 지난 2014년 재판에 넘깁니다.


◇조작된 처벌불원서
그런데 재판을 맡은 광주지법 목포지원 형사1부는 박 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합니다. 임금을 주지 않은 혐의는 공소를 기각했습니다. "죄질이 불량하다"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도,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습니다. 피해자 A씨가 처벌불원서를 제출했다는 건데, A씨는 그런 의사를 밝힌 적이 없습니다. 박 씨 측 가족이 조작한 서류였던 거죠.

이 사실은 항소심 재판부에 가서야 바로잡힙니다. 하지만 그 전에 1심 재판부가 조작 사실을 알 수 있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피해자나 후견인을 증인으로 불러서 진짜 의사를 물어볼 수도 있고, 서류에 쓰인 인감이나 서명이 진짜인지 확인할 수도 있죠.

심지어 해당 재판부가 다른 염전 노예 사건을 심리할 때는 모두 썼던 방법들입니다. 당시 지적장애 3급이었던 피해자들의 가족이 낸 처벌불원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직접 피해자들을 법정으로 불러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들이 처벌불원의 의미나 내용, 효과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보고 처벌불원서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해당 사건 판결문엔 이렇게 설시하기도 했습니다.

"피해자가 장애인 등에 해당하는 때에는 피해자의 지능, 지적 수준, 발달성숙도 및 사회적응력에 비추어 처벌불원의 목적과 취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피해자 A씨의 처벌불원서는 형식이나 구성도 충분히 의심할 만 했습니다. 당시 인감증명서나 서명확인서가 첨부되지 않았고, 한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A씨가 주민번호를 자필로 써놓은 것도 이상하죠. 재판부에 제출된 검찰의 수사 자료에 따르면 A씨는 자신의 이름과 생년월일까지만 쓸 수 있는데도, 재판부는 아무런 의심 없이 처벌불원서를 받아들입니다. A씨가 합의서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여부도 확인하지 않습니다. 결국 A씨의 의사가 왜곡된 채로 법원 판단을 받게 됐고, 또 박 씨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에도 영향을 주게 된 것입니다.


◇법관에겐 책임을 물을 수 없다?
피해자 A씨 측은 국가에 책임을 묻기로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1심과 2심 모두 사법부 책임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 판례 하나를 먼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법관이 잘못된 판단을 해 피해를 입은 국민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 일종의 기준을 세우고 있는 판례입니다.

[대법원 2003. 7. 11. 선고 99다24218 판결 등]
(1) 법관이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했다거나
(2) 법관의 직무수행 상 준수할 것을 요구하는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했는지 등
법관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하게 어긋나도록 권한을 행사했다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판에는 항소나 상고와 같은 불복 절차가 있기 때문이라는 점도 언급됩니다.

A씨 측 주장은 이렇습니다.
평균적인 법관이라면 A씨의 처벌불원서가 조작됐다는 점을 알 수 있었는데도 해당 재판부는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고, 이건 법관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를 명백히 위반했다고 봤습니다. A씨 의사가 왜곡된 채로 재판부에 전달됐기 때문에 재판절차진술권이 침해됐고,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처벌불원서가 잘못됐단 사실이 항소심에서 밝혀진 것과 별개로, 재판 과정에서 A씨가 받은 피해에 대해선 국가가 배상해야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①위법·부당한 목적을 갖고 재판을 했다거나 ②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하는 등 법관 권한 취지에 어긋나게 권한을 행사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항소심의 '항소 기각' 결론은 오늘(16일) 나왔습니다. 앞서 A씨 측은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1심 재판을 했던 법관들을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최정규 변호사는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그동안 신안 염전 사건과 관련해 책임이 있던 사람들은 법정에 증인으로 서거나 서면으로 증언하기도 했는데, 당시 법관의 판단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단 겁니다. A씨 측은 상고하겠다고 밝혀 법정 공방은 계속될 걸로 보입니다.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