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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취재] 절반 막힌 창문…"가난한 청춘은 창 밖도 보지 말라는 건지".txt

입력 2021-02-10 14:16 수정 2021-02-15 11:28

주민 민원에 창문 절반 가까이 막혀"위약금에 입주 포기하기도 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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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민원에 창문 절반 가까이 막혀"위약금에 입주 포기하기도 쉽지 않아"

서울 마포구의 '이랜드 신촌 청년주택' 유리창이 절반 정도 막혀 있다. 〈사진=입주예정자 제공〉서울 마포구의 '이랜드 신촌 청년주택' 유리창이 절반 정도 막혀 있다. 〈사진=입주예정자 제공〉

대학생 고모씨는 최근 서울 마포구에 있는 '이랜드 신촌 청년주택'을 설렌 마음으로 방문했습니다. 이번 달 말 입주 예정이라 입주자 사전 점검을 하러 간 것인데 예상과 다르게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자신의 방 창문의 절반 가까이가 열리지 않고 밖이 보이지도 않는 불투명 프레임으로 덧대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씨는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한 방을 보니 너무 당황스러웠다"며 "마치 음식을 먹다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졌다"고 말했습니다.

광흥창역 근처에 있는 이 청년주택에서 이런 독특한 형태의 창문이 있는 방은 200여 개입니다. 비싼 월세로 고통받는 청년들에게 저렴한 임대료 혜택을 준다며 지어진 이 청년주택은 지난해 9월 청약 당시 약 50:1의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일부 입주 예정자들은 "임대 주택에 당첨된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근처 아파트 단지의 민원 때문에 이런 괴상한 방을 받게 됐다는 게 속상하다"고 취재진에게 말했습니다.


서울시 "근처 아파트 주민들의 사생활 침해 민원을 반영했다"

 
서울 마포구의 '이랜드 신촌 청년주택' 유리창의 모습.〈사진=입주예정자 제공〉서울 마포구의 '이랜드 신촌 청년주택' 유리창의 모습.〈사진=입주예정자 제공〉

입주 예정인 학생들은 서울시에 항의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주민들의 민원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었다"는 취지의 설명이었다고 합니다. 청년주택에서 30~40m 정도 떨어진 아파트 입주자 모임이 사생활 보호를 위해 창문을 만들지 말아 달라고 했다는 겁니다. 정리하면 "청년주택 거주자들이 우리 아파트 안을 쳐다볼 위험이 있으니 창문을 없애 달라"는 옆 아파트 민원에 고민하던 서울시가 청년주택 창문 절반 가까이를 막는 방식을 선택한 셈입니다. 서울시 청년주택지원팀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인허가 전에 주민들의 민원을 반영해 애초부터 그렇게 계획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고씨는 "주민들이 가난한 청년에 대한 비난과 멸시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작 주민들은 자신들의 창문에 시트지를 붙이는 등 사생활 보호를 위한 간단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창문이 막혀 일조량을 침해당하는 것은 물론 불이 났을 때 창문이 완전히 열리지 않아 안전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33쪽짜리 입주공고문에 두 줄 설명…입주 포기하면 위약금 100만 원"

 
'신촌 이랜드 청년주택' 소개 사진. 〈사진=홈페이지 캡춰〉'신촌 이랜드 청년주택' 소개 사진. 〈사진=홈페이지 캡춰〉

일부 입주 예정자들은 이 창문 때문에 입주를 취소할까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입주를 포기하면 내야 하는 위약금 100만 원 때문에 결정이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저런 모습의 창문이 만들어진다는 걸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시 청년주택지원팀 관계자는 "입주공고문에 불투명 유리창에 관한 설명이 있었으니 사전에 안내를 분명히 한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찾아보니 33쪽짜리 공고문의 27쪽 마지막 부분에 두 줄짜리 설명이 있었습니다. '인접 아파트와 정면으로 면한 세대의 외부 창호는 입면 분할 창호로 시공되며 창호 하부의 불투명 유리는 인접 아파트 입주민의 사생활권 보호를 위해 설계 인허가 시 지정된 사항으로 입주하는 임차인이 임의로 교체하거나 투명한 재질로 변경할 수 없습니다.'

 
입주공고문 27쪽 하단 부분에 유리창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사진=입주공고문 캡춰〉입주공고문 27쪽 하단 부분에 유리창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사진=입주공고문 캡춰〉

고씨는 "돈 없고 빽 없는 학생들이 서울에 6평 남짓한 보금자리를 얻게 됐다고 좋아했는데, 이젠 주민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하기만 하다"며 "가난한 청춘은 창 밖도 볼 자격이 없다는 듯한 유리창 모습에 세상이 야속하게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청년이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하겠다"며 2025년까지 24만3000호의 청년주택을 지어, 청년 전·월세 가구의 10% 이상이 청년주택에 거주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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