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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정부 상대로 재판할 권리 인정…'주권면제' 인정 안해

입력 2021-01-08 15:40 수정 2021-01-08 15:53

"일제가 자행한 반인도적 범죄행위…국제 강행규범 위반"
외교적 해결 없이 피해복구 어려워…피해자들 잇따라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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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자행한 반인도적 범죄행위…국제 강행규범 위반"
외교적 해결 없이 피해복구 어려워…피해자들 잇따라 별세

법원이 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예외적인 경우' 대한민국 법원에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한 재판을 할 권리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따라 일제 강점기 시절 피해를 겪었다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급증할 수 있지만, 외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피해 복구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 정부 상대로 재판할 권리 인정…'주권면제' 인정 안해

◇ 법원 "대한민국 법원에 재판할 권리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정곤 부장판사)는 이날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배소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을 내리면서 "대한민국 법원에 피고(일본 정부)에 대한 재판권이 있다"고 판시했다.

국제관습법에 따르면 주권 국가는 다른 나라 법정에 서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이를 국가면제(주권면제)라고 부른다.

하지만 재판부는 "일본제국에 의해 계획적·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로서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했다"며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 할지라도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고가 된 국가가 국제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를 파괴하고 반인권적 행위로 피해자들에게 극심한 피해를 줬을 경우까지도 최종적 수단인 민사 소송에서 재판권이 면제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부당한 결과가 도출된다"고 설명했다.

정치적인 힘이 없는 피해자들로서는 소송 외에 손해를 배상받을 방법이 요원한데, 국가면제를 인정하면 피해자들은 헌법에서 보장된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당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 유사한 소송 이어질 가능성도

배 할머니 등은 승소했지만, 다른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다른 소송은 아직 1심이 진행 중인 만큼 법원의 이번 판단은 의미가 크다.

이용수·길원옥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20여 명이 낸 소송은 당장 5일 뒤인 오는 13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이 사건은 같은 법원 민사합의15부(민성철 부장판사)가 심리했다.

법원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재판할 권리'를 인정한 만큼 여러 유형의 일제 강점기 피해 관련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재판부의 판단은 사안의 특수성을 고려해 내려진 것이지만, 일제 강점기 피해자들에게 일본 정부를 상대로 우리 법원에 소송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기 때문이다.

다만 재판부의 이번 판단이 다른 재판에서도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각 재판부의 판단은 독립성이 보장돼 있어 비슷한 사안을 두고도 서로 다른 결론이 날 수도 있다.

◇ 장기간 법정 다툼에 고령 피해자들 별세

이번 판결은 법정에서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와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만, 피해자들이 판결에 따라 손해배상금을 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일본은 이번 소송의 송달을 거부하고 대리인도 선임하지 않는 등 무대응으로 일관하며 소송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손해배상금을 내놓지 않으면 가압류 등을 통해 배상금을 받아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할머니들의 소송대리인인 김강원 변호사는 "강제집행이 가능한지 묻는 사람도 있다"며 "강제집행 가능한 (일본 정부의) 재산이 있는지 별도로 검토해야 할 사항이라 곧바로 답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길어지는 법정 다툼 속에 지치는 것은 피해자들이다. 할머니들이 처음 법원에 조정을 신청한 것이 2013년 8월인데, 이후 사건이 정식 소송으로 이어져 판결이 나오기까지 7년 5개월이 걸렸다. 고령인 피해자 여럿이 이 기간에 세상을 떠났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 관계자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원고 중 상당수가 유명을 달리해 현재 피해 생존자는 5명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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