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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국가' 아르헨티나, 14주 이내 낙태 합법화|아침& 세계

입력 2020-12-31 10:00 수정 2020-12-3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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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보도 시 프로그램명 'JTBC 아침&'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JTBC에 있습니다.
■ 방송 : JTBC 아침& / 진행 : 이정헌


우리시간으로 어제(30일) 오후 4시경,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국이자 인구의 77%가 가톨릭 신자인 아르헨티나에서 임신 초기 낙태 합법화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아르헨티나 부통령 : (이 법안은) 찬성 38표, 반대 29표, 기권 1표로 승인되었습니다. 이제 법안으로 지정되어 법원으로 보내집니다.]

아르헨티나 상원은 임신 14주 이내 임신 중절 수술 허용 법안 통과를 놓고 12시간이 넘는 열띤 토론을 거쳤습니다. 새벽 4시께야 표결을 마무리 지었는데, 찬성 38표, 반대 29표, 기권 1표로 통과됐습니다. 2년 전에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상원에 올라왔었지만 당시에는 반대 38표 찬성 31표로 부결됐었습니다. 이로써 아르헨티나는 우루과이, 쿠바, 가이아나에 이어 남미에서 4번째로 임신 중절 시술 합법화 국가가 됐습니다. 낙태 합법화를 요구해왔지만 가톨릭계의 반대로 번번이 좌절됐던 여성들과 시민단체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습니다. 그동안 아르헨티나는 대다수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성폭행 피해자나 산모의 건강이 우려되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낙태 시술을 허용해왔습니다. 때문에 해마다 37만 건에서 많게는 52만 건의 불법 낙태 시술이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1983년 이후 3천여 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르헨티나 시민들은 낙태 합법화를 통해 많은 여성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며 환영했습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아르헨티나 시민 : (낙태 합법화는) 수백만 명의 여성들의 모든 것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이것은 건강 문제고, 공중 보건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도덕의 문제도, 윤리의 문제도 아닙니다. 건강의 문제이기 때문에 수천 명의 생명을 구할 것입니다.]

가톨릭계를 중심으로 낙태 합법화를 반대하던 사람들은 이번 상원 표결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상원 표결 전날 트위터에 "하느님의 아들은, 모든 버려진 이들은 신의 자녀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기 위해 버려진 채 태어났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낙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낙태 합법화 반대를 독려하는 메시지로 해석됐습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아르헨티나의 낙태 합법화는 중남미 여성 인권운동의 큰 동력이 될 것이라며 저항이 있겠지만 지난 2010년 아르헨티나가 동성결혼을 합법화할 때처럼 도미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중남미지역 전문가와 좀 더 자세하게 짚어보겠습니다. 임수진 대구가톨릭대 중남미학부 교수 전화로 연결됐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 가톨릭 국가 아르헨티나에서 낙태 합법화 법안이 통과된 것은 다른 나라들보다도 더 큰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현행법이 제정된 것은 1921년입니다. 그러니까 100년 만에 낙태 관련법이 개정된 것인데요. 그동안 낙태 허용을 위한 입법시도가 있었지만 종교계의 반대뿐만 아니라 국민 다수가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생명권 존중 의견이 우세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낙태 합법화는 음성적으로 벌어지는 낙태시술이 전체 임신의 4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우선 고려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 중남미에서는 2012년에 우르과이에서 낙태가 허용된 지도 8년 만의 일이고요. 어떤 상황에서도 낙태시술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 큰 차이를 보이게 됐습니다. 어제 법안이 통과되고 나서 이웃 국가들의 반응도 엇갈렸는데요. 그만큼 찬반의견이 극명하게 맞서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가 중남에서 갖는 위상 그리고 낙태시술 허용 범위 등을 고려했을 때 이번 법안 통과는 보수적인 중남미 사회에서 낙태 합법화에 대한 논의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앞서 전해 드린 것처럼 2년 전에도 낙태 합법화 법안이 상원 표결까지 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당시에는 통과되지 못했고요. 이번에 통과됐습니다. 달라진 배경이 있을까요.

    낙태 합법화는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의회가 아니라 행정부가 법안을 발의했던 것이고요. 여성들 특히 가난한 여성들이 불법으로 낙태시술을 받을 수밖에 없고 심한 경우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의료체계 안에서 임신 초기에 낙태를 허용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어제 표결 전에 상원의원들 발언을 제가 봤는데요.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은 종교를 넘어서 보건의 문제로 접근을 하였고요. 여기에는 여야 남녀가 따로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2015년부터 합법적이고 안전한 무료 낙태시술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보수적인 아르헨티나 사회에 변화가 나타났고요. 이번 표결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입니다. 따라서 입법부와 행정부가 사회적 요구를 수용했고 또 협력한 것이 이번 법안통과의 배경이라고 봅니다.


  • 그렇다면 아르헨티나를 시작으로 중남미 전역으로 과연 낙태 합법화 바람이 계속해서 불게 될지 이것도 궁금합니다. 어떻게 전망하세요?

    이번에 통과된 법안을 보면 낙태 합법화 외에도 주목할 만한 내용이 있습니다. 천 일 프로그램이란 것인데요. 임신부가 낙태를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서 자립할 수 있도록 최대 3년까지 지원해 주는 여성역량 강화 사업입니다. 사회적, 경제적 이유로 아이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제도인 것이고요. 또 종교적 신념에 따른 의사의 양심적 거부를 허용했습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보다 먼저 낙태시술을 허용한 우르과이에서도 의사와 사회복지사로 구성된 전문위원회가 심의를 거쳐서 낙태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또 중남미에서 낙태 허용에 대해서는 찬성과 반대 2개의 선택지만을 줬을 때 여전히 반대 의견이 더 우세합니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내고 입법화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아르헨티나 사례를 모델로 삼아서 낙태 합법화를 사회적 의지로 설정하고 또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는 영향을 줄 것이라고 봅니다.


새해를 앞두고 들려온 아르헨티나의 낙태 합법화 법안 통과 소식은 전 세계에 큰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내일부터 형법상 낙태죄가 폐지됩니다. 하지만, 대체 입법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 여성단체 등은 안전한 임신 중단 절차같이 여성의 건강권을 보호받을 대체 법안 마련이 시급하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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