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밤 9시가 넘으면 가게들이 문을 닫지만 야간 도매업으로 신고된 '동대문 도매상가'는 밤에 문 열고 영업할 수 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오는 상인들이 밤새 부딪히며 일하는데 괜찮을지, 밀착카메라가 둘러봤습니다. 저희 취재진이 만난 어느 중간상인은 여긴 '딴 세상'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서효정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건물의 불이 모두 꺼졌습니다.
사람을 찾아보기도 어렵습니다.
지난해 동대문 일대 모습과 비교하면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동대문쇼핑센터가 있는 전철역 출구로 나와봤습니다.
지금 시간이 11시 반 정도 됐는데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시행으로 쇼핑센터는 다 문을 닫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문을 열고 영업 중인 곳들이 있습니다.
바로 도매상가입니다.
여기로 전국 각지에서 소매상인들을 태운 버스들이 모여듭니다.
충청도와 전라도, 제주도까지 지역 이름이 붙은 정류소 표지판들이 눈에 띕니다.
대형 버스가 들어옵니다.
[다른 데서 실어오는 것 같은데, 사람들을. 도매 옷 사러.]
도매상가 건물 앞으로 가봤습니다.
밤 8시부터 영업한다고 써 있는 건물, 줄을 서서 들어갑니다.
열화상 카메라 옆에서 보안요원이 입장 스티커를 붙여줍니다.
누가 오는지 기록하진 않습니다.
매장마다 코트와 여성복들이 걸려 있고, 바닥에는 지방으로 내려보낼 옷 꾸러미가 쌓여있습니다.
바삐 움직이는 상인들, 옷을 손질하고, 서로 얘길 나누고 통로에 나와서 일을 보는 중에도 마스크는 없습니다.
그대로 물건을 가지러 가기도 합니다.
복도에 짐가방을 펼쳐놓고 옷가게 안에 자리를 잡은 한 여성, 마스크 없이 다리를 꼬고 앉아 쉴 새 없이 말을 합니다.
중국인 BJ들입니다.
[A씨/도매상인 : 손님(시청자)들이 이거 써 봐달라 하면 써 보고 (그러는 거죠.)]
매장에 있는 옷을 보여줄 때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습니다.
[B씨/보안직원 : 저희도 돌면서 (마스크 써 달라고) 얘기를 하거든요. 일대일 마크가 잘 안 돼가지고.]
자정을 넘기며 본격적인 영업이 시작됩니다.
입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붐비는 또 다른 상가, 들어가면서 체온을 확인합니다.
하지만 체온계는 먹통입니다.
[C씨/보안직원 : 앞에서 재세요, 앞에서.]
그냥 들어갔습니다.
젊은 남성들이 건물 안을 숨가쁘게 돌아다닙니다.
지방에 있는 상인 대신 옷을 사서 화물차에 실어주는 이른바 '사입삼촌'으로 불리는 노동자들입니다.
[될까요? (아직, 좀 이따가.)]
동대문 쇼핑센터에만 2000명 정도가 일하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로 좁은 통로, 2m 거리두기는커녕 어깨가 닿습니다.
[D씨/동대문 사입삼촌 : 다 돌아요, 도매상가 전체 다.]
이들은 마스크를 쓰고 일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D씨/동대문 사입삼촌 : 워낙 많이 돌아다니고 하니까, 숨이 차니까. 상가 안에 들어가면 벗게 돼요, 자연스럽게.]
닷새 전, 이 건물 1층 매장에선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일단 구청은 방역조치를 한 뒤 접촉자 검사도 했습니다.
하지만 상인들의 불안함은 여전합니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돕니다.
[D씨/동대문 사입삼촌 : 엄청 불안해요. 들리는 얘기로는 확진자가 1주일 동안 해열제를 먹고 일을 했다더라…]
확진자가 나오자 상가 측은 문 닫을 가게는 닫아도 된다고 통보했습니다.
하지만 문을 닫은 가게는 거의 없습니다.
[E씨/매점 상인 : (확진 상가가) 에스컬레이터 바로 앞쪽이에요. 지금 장사하고 있을걸요? 검사받고는 싶죠. 받고는 싶은데 그렇게 되면 가게를 어떻게 못 하니까.]
새벽 2시 반이 되자, 다른 사람들이 상가에 들어옵니다.
음식을 배달하는 사람들입니다.
역시 QR코드를 찍거나 따로 명부를 적지 않습니다.
도매상가의 밥 시간, 가게에 자리를 펴고 이웃들과 모여 밥을 먹습니다.
새벽 3시쯤 되니 출입구를 지키고 있는 사람마저 보이지 않습니다.
쇼핑을 끝낸 사람들이 건물 밖으로 나오고, 노동자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담배를 피웁니다.
[D씨/동대문 사입삼촌 : 얘기를 해요, 마스크 쓰라고, 왜 안 쓰냐고. (그러면) '뭐 어때요?' 이런 식? '어, 그런가 보다…' (여긴) 다른 세상이라고 해요, 사람들이. 쉬쉬거려요.]
상인들은 코로나19 감염자가 더 나와 그나마 있는 손님마저 줄까 걱정입니다.
[F씨/도매상인 : 이번 주는 더 없잖아. 낱장도 (사 가는 사람이) 없어. 30년 장사했는데 서너 명 와, 서너 명.]
지금 제 뒤로 상인들을 태우려고 버스가 대기 중입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이 버스들은 이곳을 출발해 전국 각지로 흩어질 겁니다.
동대문 도매상가에서 행여나 집단감염이 시작되지 않도록 이제부터라도 철저한 관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VJ : 최효일 / 영상그래픽 : 김정은 / 인턴기자 : 황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