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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의 외로움에 공감"…재해석된 추사 김정희 '세한도'

입력 2020-12-03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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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거친 바람과 파도가 몰아치는 가운데 갓을 쓴 사람이 쓸쓸히 걸어갑니다. 설 전후의 혹독한 추위 '세한', 인생의 시련과 고난을 뜻하는 이 말을 한지에 마른 붓으로 그려낸 게 국보 '세한도'인데요. 이걸 프랑스 예술가가 영상으로 풀어낸 겁니다. 자가격리를 한 끝에 만든 이 작품과 함께 '세한도'도 오랜만에 1470cm, 기다란 전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최하은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기자]

스산한 바람 소리가 문풍지를 울리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선 줄을 잣는 거미만이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파도치는 바다, 눈 내리는 숲.

프랑스 예술가가 담은 이 제주 풍경은, 180년 전, 이곳에 유배된 추사 김정희의 그림을 영상으로 풀어낸 겁니다.

초라한 집 한 채와 고목 몇 그루, 바싹 마른 붓질로 그린 '세한도'입니다.

한양에서 가장 멀고 험한 섬에서도 집 밖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회적 사형 선고'를 받은 추사.

이런 스승도 잊지 않고 변함없이 대해준 제자에게 선물로 보낸 그림입니다.

이방인 작가는 동떨어진 섬에 갇혀 홀로 추위를 견딘 추사의 마음을 들여다봤습니다.

[장 줄리앙 푸스/미디어 아티스트 : 그림에서 볼 수 없는 부분 궁금했어요. 추사 김정희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마음으로 그렸는지…]

5년 넘게 서울서 지낸 데다 한국인 아내를 만났어도 조선 선비의 귀양 생활은 그저 낯설었는데, 격리와 단절이 일상이 된 오늘과 맞닿은 부분을 찾았고, 그 외로움을 담으려 한밤에도 한라산을 오르내렸습니다.

[장 줄리앙 푸스/미디어 아티스트 : 가장 가까운 사람과 접근할 수 없고…(추사는) 혼자만 당한 벌 같은 것이었는데 (우리는) 모두 다 겪을 수 있는 상황이에요.]

영상과 함께 '세한도'도 14년 만에 전체 모습을 펼쳤습니다.

가로 70㎝ 정도였던 그림에 청나라와 조선 문인 20명의 감상기가 붙어 15m 가까운 긴 두루마리가 됐습니다.

오래도록 간직해 오던 일가가 올 초 아무 조건 없이 기증해 모두의 그림이 됐습니다.

이 겨울 그림은, 전 세계를 휩쓴 감염병으로 유독 척박한 겨울을 만난 사람들에게 서로를 잊지 말자고 따뜻한 위로를 건넵니다.

(영상그래픽 : 한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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