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대형마트 물건을 배달하다가 쓰러져 숨진 배송노동자 소식, 어제(16일) 전해드렸지요. 이들은 마트와 계약한 하청업체에 개인 사업자로 다시 계약을 맺고 있는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파도, 목숨을 잃어도 산업재해를 신청할 수 없습니다. 저희 취재진이 일부 대형마트에서 체결한 계약서를 확인해봤습니다. 책임은 있고 권리는 없는 독소 조항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하혜빈 기자입니다.
[기자]
2L짜리 6개, 12kg짜리 생수를 힘껏 들어 올립니다.
손수레에 싣고, 그 위에 또 다른 짐을 쌓아 올립니다.
50대 A씨는 2년째 대형마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배송노동자로 하루에 40번 정도 마트 고객의 집에 물품을 배달합니다.
배달 건수만 보면 많게는 200건까지 처리하는 택배노동자의 5분의 1밖에 안 됩니다.
하지만 물품 개수 등에선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한 번에 여러 물건을 배달하기 때문입니다.
20kg을 넘기는 건 금방입니다.
[A씨/대형마트 배송노동자 : 햅쌀, 콜라 캔, 계란에 음료. 주스 있죠, 주스. 이게 다 한 집 것입니다.]
또 다른 대형마트 배송노동자 60대 B씨.
3년째 일하고 있는데 파스와 복대가 필수품입니다.
[B씨/대형마트 배송노동자 : 무거운 제품을 배송하면서 허리라든가, 어깨 디스크가 걸린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배송노동자들은 대부분 대형마트 하청업체인 물류 회사와 계약합니다.
신분은 개인사업자입니다.
때문에 다쳐도 산업재해 신청을 할 수 없고, 배송에 필요한 장비도 직접 준비해야 합니다.
[A씨/대형마트 배송노동자 : 두 달차에 물을 잘못 들었어요. 그래서 허리 나갔는데, 개인 돈으로 다 처리했죠.]
계약서를 봤습니다.
'마트 규정에 따라 인도하고, 배달 완료 사실을 통보토록 했지만, 사고가 나면 '개인이 합의금 등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적었습니다.
마트가 망해도 월급을 달라고 할 수 없습니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주장하기도 어렵습니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등의 행동을 하면'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습니다.
[최강연/공인노무사 : 배송노동자들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가 있는 거죠.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합니다.]
마트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노동자와 하청업체 간 계약 사항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했습니다.
또 독소 조항이 있더라도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다른 대형마트 측은 "관례적으로 사용해오던 계약서라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다"며 "개선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