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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사망사고 나면 사업주 처벌…'중대재해법' 입법 본격화

입력 2020-11-17 15:56

이천 물류창고 화재 계기로 공감대 확산…국민의힘도 긍정적 입장
사업주에 포괄적 위험 방지 의무 부과…경영계 "과잉 처벌"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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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물류창고 화재 계기로 공감대 확산…국민의힘도 긍정적 입장
사업주에 포괄적 위험 방지 의무 부과…경영계 "과잉 처벌" 비판

노동자 사망사고 나면 사업주 처벌…'중대재해법' 입법 본격화

노동자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뿐 아니라 기업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정치권의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4월 말 노동자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에서 보듯 아직도 끊이지 않은 후진국형 산업재해를 근절하기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 탄력받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영국 '기업살인법'이 모델

17일 국회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으로는 지난 6월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과 이달 12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대표 발의안 법안 등이 있다.

중대 재해는 노동자가 숨지거나 다수의 피해자를 낸 산재를 가리킨다. 중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기업을 처벌한다는 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핵심 내용이다.

강 의원 발의안은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에게 노동자의 업무상 유해·위험을 방지할 포괄적인 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위반해 사망사고를 낸 경우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상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현행법 체계로는 중대 재해가 발생해도 사고를 낸 현장 노동자나 중간 관리자 등을 처벌하는 데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대 재해가 발생하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에 관한 경찰 수사와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혐의에 관한 고용노동부 수사가 진행되는데 업무상 과실치사는 행위자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사업주 등을 직접 처벌 대상에 포함시키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산안법의 경우 사업주의 각종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규정하고 있어 위반이 적발되면 처벌이 가능하지만, 기업의 안전보건 책임을 위임하고 분산하는 복잡한 구조 속에서 사업주 등은 법망을 빠져나가기 쉽다.

문제는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의 확고한 의지 없이는 중대 재해를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중대 재해를 막으려면 노동자의 생명이 최우선이라는 인식의 전환과 산업안전 인프라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행법 체계는 이 같은 변화를 끌어내는 데 실패했다는 게 노동계의 지적이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와 같은 중대 재해가 발생하면 기업 대표가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정부가 행정적 대책을 쏟아내지만, 처벌이 솜방망이인 탓에 국민적 관심이 시들해지면 산업 현장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안전 불감증에 빠지는 현상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산업 현장의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대안으로 떠오른 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다.

이 법은 영국의 '기업살인법'을 모델로 한다. 중대 재해는 현장 노동자 등의 위법 행위보다는 안전을 무시한 작업 환경과 안전을 비용으로 취급하는 이윤 중심의 경영 등에 따른 것이므로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중대 재해는 경영 실패에 따른 '기업 범죄'인 만큼 안전 관리의 결정권자와 기업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의 산물인 셈이다.

영국에서 2007년 기업살인법 도입 이후 이 법에 따른 처벌 사례는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로 일부 기업이 도산하는 등 범죄 억제 효과는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은 세계적으로 산재 사망사고 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사업주 등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는 것도 처벌 효과를 극대화하는 요인이다.

강 의원 발의안은 중대 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기업에 대해 재해에 따른 손해액의 3배 이상 10배 이하의 범위에서 배상 책임을 지도록 했다. 소송에서 이와 관련한 입증 책임도 사업주 등에게 있다.

이 법안은 '관피아'로 불리는 공무원의 직무 방임도 중대 재해의 원인으로 보고 중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감독이나 인허가 권한을 가진 공무원도 처벌 대상이 되도록 했다.

박 의원 발의안은 큰 틀에서는 강 의원 발의안과 비슷하지만,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법 적용을 4년 동안 유예했다.

◇ 산안법 개정안도 발의…사업주 등 처벌 강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은 산안법 개정안과 함께 논의될 전망이다.

민주당 장철민 의원은 이날 중대 재해에 대한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산안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사업주가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노동자 사망사고를 초래한 경우 물어야 할 벌금의 하한액을 개인은 500만원, 법인은 3천만원으로 규정했다. 하한형을 도입해 처벌을 강화한 것이다.

또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 위반으로 한 번에 3명 이상의 노동자가 숨지거나 1년 동안 3명 이상 사망한 경우 최대 1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산안법의 틀 안에서 사업주 등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것으로,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는 다르다.

노동계는 민주당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대한 대안으로 산안법 개정을 추진하는 게 아니냐며 의심하지만, 장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제가 낸 산안법과 중대재해법은 상호보완적"이라고 강조했다.

◇ 경영계는 반대…"사업주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노동계의 주장은 지난 4월 이천 물류창고 화재로 힘을 얻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발생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참사를 계기로 산업 현장의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급속히 확산한 것이다.

리얼미터의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공감한다는 응답이 58.2%에 달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도 지난 10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밝혀 입법에 청신호가 켜졌다.

그러나 경영계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움직임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달 26일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기업에 대해 포괄적인 유해·위험 방지 의무를 부과할 경우 사업주 등은 정상적으로 산재 예방 노력을 했더라도 최종 책임자라는 이유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경영계는 우려한다.

이는 형법 법규에 필요한 '명확성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게 경영계의 주장이다. 결국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가 잠재적인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사업주 등에 대한 처벌에 하한형을 도입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운 것도 '과잉 처벌'이라고 경영계는 비판한다.

또 산재 예방을 위해서는 사업주 등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보다는 산업별 특성에 맞는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경총은 의견서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해 "산재 예방 효과보다는 과잉 처벌로 기업의 경영 활동 위축이라는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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