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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하루 한 마리꼴 '쾅'…한라산 노루, 로드킬 수난

입력 2020-11-10 21:13 수정 2020-11-1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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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하루에 한 마리꼴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요즘 제주 한라산 주변 도로는 야생동물들에게 잔인한 공간입니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고 질주하는 자동차에 동물들이 잇달아 치여서 사고가 나는데, 이것을 막기 위한 묘책들이 쏟아지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일단 운전자들이 생각부터 바꾸는 겁니다.

밀착카메라 서효정 기자입니다.

[기자]

골프 연습장과 산 사이로 난 도로, 하얀색 마크가 남아있습니다.

지난달 제주도의 도로에서 7중 추돌사고가 났습니다.

바로 이곳인데요.

경사가 져 있는 것도 아니고 빗길도 아니었는데, 사고가 났던 건 다름이 아니라 노루를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곳 제주도에선 하루에 한 마리꼴로 로드킬 사고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제주동부소방서 관계자 :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가다가 급정거를 하니까 뒤에 차가 따라오다가 안전거리가 미확보된 것 같아요.]

이 사고로 3명이 다쳤습니다.

제주도에선 해마다 10월부터 12월이 노루가 차에 치이는 사고가 집중되는 기간입니다.

제주에서 서귀포를 잇는 1100도로, 노루 로드킬 사고가 가장 많은 구간으로 꼽힙니다.

목격담도 들을 수 있습니다.

[1100고지 습지 관리인 : 며칠 전에 죽은 놈이 하나 있었는데. 간혹가다가 보이고, 차 올라갔다 내려갔다 출퇴근하다 보면 보이고.]

한라산을 가로지르기 때문에 노루가 많은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개체가 많아서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노루 로드킬 사고가 두 번째로 많은 5.16도로, 갓길에도 차를 대야 할 정도로 차가 많습니다.

관광객들을 태운 렌터카들입니다.

[관광객 : 너무 밟아요, 너무 밟아. 시속 40㎞가 뭐예요. 보니까 시속 80㎞ 이상 밟는 것 같은데.]

속도 제한 표지판을 곳곳에서 볼 수 있지만, 지키는 차는 거의 없습니다.

밤이 되면 속도는 더 빨라지고, 운전자들도 불안해합니다.

[정복희/경기 수원시 금곡동 : (동물을 만나면) 급정거를 해야 되겠죠? 박아야 된다고, 박아야 된다고 들었는데…]

사체 처리반은 더 바삐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동환/제주 서귀포시 로드킬 사체처리반 : (같은 날인 것 같은데. 이것도 사고 난 거네, 이것도.) 네, 이건 사고 나서 현장에 가니까 누가 가장자리로 밀어놨었어요. 좀 큰 거였죠.]

하도 많이 죽으니, 흉흉한 소문도 돌 정도입니다.

[오동환/제주 서귀포시 로드킬 사체처리반 : (현장 가보면) 없는 경우도 많아요. 옛날부터 보신한다고 해서 주워가는 모양이에요.]

취재진도 밤길을 다녀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신고는 없었습니다.

다음 날에서야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아, 노루 사체 길에 있다고요? 아, 그렇구나. 알겠습니다. 저희 빨리 갈게요.]

굽이진 길을 올라가던 도중, 발견했습니다.

노루 로드킬 사고가 제일 많이 일어난다는 이 5.16 도로에서 어김없이 사고가 났습니다.

현장에 와 보니 이렇게 갓길로 노루가 치워져 있는데, 사고가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오동환/제주 서귀포시 로드킬 사체처리반 : 어제저녁 정도? (어제 저희가 지나다녔는데?) 지나가도 그걸 잘 신경을 안 쓰면 안 보이죠. 차에 받혀서 튕겨서 죽어 있는 것 같아요.]

뿔을 보면 나이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세 살 정도, 어른 노루입니다.

사체에 살충제를 뿌리고, 비닐로 싸는 작업이 이어집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해동물이었지만, 로드킬 사고로 많이 죽다 보니 해제됐습니다.

노루가 주로 먹는 게 이렇게 푸른빛을 띄고 열매까지 같이 있는 청사철이라는 나무입니다.

이런 나무들을 먹으러 도롯가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구조센터로 가더라도 거의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박용희/제주야생동물구조센터 구조관리사 : 하루를 못 넘기는 경우가 되게 많고요. 골반이 틀어지거나 아예 갈비뼈가 나가는 경우도 있고.]

살아남아도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릅니다.

[김봉균/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 저게 지금 시력이 상실된 상태여서. 가뜩이나 한쪽 눈도 안 보이는데 달리기까지 못 해서는 방생이 어렵다고 판단해서…]

희생된 동물 대부분은 어린 개체들이었습니다.

요즘이 어미에게서 새끼들이 독립하는 시기라서 사고가 많은 것 같다고 추정합니다.

[김봉균/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 올해 6월 내지 7월에 태어났을 것으로 보이는, 4~5개월 정도밖에 안 된 친구인 것 같아요. 어린 친구일수록 위험에 대한 경험, 학습, 인지능력 이런 게 부족해서…]

정부는 로드킬 사고를 막기 위해 생태터널이 마련돼 있는 고속도로 외에, 사고 건수가 높은 국도나 지방도 50개 구간에도 유도 울타리를 설치하겠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하지만 주변에 주민들이 살고 있는 도로 특성상 펜스로 로드킬을 막는 데도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김봉균/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 야생동물은 자기가 사는 지역 인근 도로에서 자동차들이 어느 정도로 달리는지 알고 있어요. 제한속도만 지켜줘도 사고를 현저히 줄일 수 있을 거라고 평가하고 있어요. (속도를 줄이는 게) 사람 간에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도 중요하잖아요.]

야생동물은 현세대와 미래 세대의 공동자산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말 같지만, 야생동물 보호법에 담긴 문구입니다.

사람이 이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위협이 되는 로드킬 사고, 이제는 막아야겠죠?

(화면제공 :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VJ : 최진·박선권 / 영상그래픽 : 이정신 / 인턴기자 : 김아라·주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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