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태일이' :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앵커]
이렇게 외치면서 제 몸을 불사르고 스물두 살, 전태일이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됐습니다. 반백 년이 지난 그의 이야기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요.
강나현 기자입니다.
[기자]
[창작판소리 '전태일' :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배가…고프다.]
세상과 이별하는 순간까지, 가난과 허기는 스물두 해 짧은 생을 내내 휘감았습니다.
청계천 전봇대에 붙은 '시다구함' 네 글자는 가난과 싸우기도 벅찼던 전태일에게 착취의 다른 이름인 노동자의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했습니다.
[2020 연극 전태일 '네 이름은 무엇이냐' : 평화를 반 토막 낸 평화시장 다락방에서 시들어 간다네, 폐가 썩어 간다네.]
풀빵을 건네주는 따뜻한 인정만으론 끝낼 수 없는 비극임을 알아차린 그에게 뒤늦게 발견한 근로기준법은 잠깐의 희망이 됐지만,
[애니메이션 '태일이' : 그러니까 누군가 바보짓을 해서라도 바꿔야 해요.]
법을 지켜 달라는 그 당연한 말은 제 몸을 불태우고 나서야 세상에 들릴 수 있었습니다.
[창작판소리 '전태일' : 근로기준법 책을 한 손으로 치켜들고, 또 한 손으로 호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더니…]
노동자의 존엄을 향한 시간은 더디게 흘러 50년이 지났고,
[영화 '하늘아래 방한칸' (1990) : 어깨가 내려앉도록 막일을 해도 방세조차 따라잡지 못하는 우리가 사람이야?]
비정규직·계약직·외주노동자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나뉘어진 이들을 향해 일터의 위험은 점점 아래로 고여 산재 사망률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습니다.
[심재명/'태일이' 제작자 : 여전히 '시다'들이 존재하는…일터에서 일하다 사라지고, 이런 현실은 여전히 계속된다 생각합니다.]
(영상그래픽 : 박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