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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41년째 '창살 없는 감옥'…한센인 마을 '한' 풀릴까

입력 2020-11-09 21:17 수정 2020-11-09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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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금은 치료할 수 있지만, 한때는 세상의 차별과 편견 때문에 사회에서 멀리 떨어져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센인들인데요. 전국 곳곳엔 아직 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습니다. 세상의 시선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 곳에 고립돼 있죠. 최근에서야 주위 환경을 바꿔보자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창살 없는 감옥에 사는 주민들의 응어리가 이제는 풀릴 수 있을까요.

밀착카메라 이선화 기자입니다.

[기자]

시멘트벽이 그대로 보이는 건물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정돈된 모습입니다.

무채색 건물들 양옆으로는 파란 지붕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한센인들이 모여 사는 경북 경주의 '희망농원'입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던 파란 지붕은 주택입니다.

뒤쪽으로는 계사가 바로 붙어있는데요.

닭을 기르는 곳입니다.

처음에 강제 이주당했던 사람들한테는 이처럼 집이랑 계사 한 채가 주어졌다고 합니다.

[A씨/주민 : 이걸 '정부막'이라고 해요, 우리가. 정부에서 지어준 거라 '정부막'이라 그랬는데…]

260여 명의 한센인들은 1979년 이곳에 정착했습니다.

앞서 보문관광단지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가, 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또다시 옮겨진 겁니다.

[B씨/주민 : 우린 안 가려고 그랬지, 이리로. 뻗대니 심지어 막 물리적으로 포클레인 가져와서 집을 들이밀고…]

자활 목적이라곤 했지만, 사실상 사회로부터의 격리였습니다.

이때부터 시작된 사회적 고립이 41년간 이어져 왔습니다.

[A씨/주민 : 맞기도 많이 맞고 어른들도 많이 맞았어요. 살면서도 그 사람들한테 사람 취급 못 받고 살았지. 다 같은 사람인데 자기들 가정에는 환자가 안 나오라는 말 없을 텐데. 울기도 많이 울고 그랬어요.]

닭을 키우는 사업을 해도 쉽지 않았고,

[김용원/희망농원 대표 : '(한센인) 정착촌 계란이다' 하면 안 먹어요. 구매를 안 합니다. 남들보다 DC를 많이 해서 팔았고, 그러니까 타산도 안 나오고.]

정부가 지어준 건물이지만 등기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김용원/희망농원 대표 : 정부가 약속을 했습니다. 등기도 해주고 문화 시설도 해주고 모든 걸 편의시설 다 해주겠다. 정권이 바뀌고 이러면서 그 누구 한 사람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어요.]

결국 당시 지어진 이곳의 건물이 모두 불법 건축물이 됐습니다.

자연재해를 입어도 보상받을 수 없고, 늘리거나 다시 짓지도 못합니다.

발암물질 때문에 최근엔 사용할 수 없는 슬레이트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이유입니다.

건물 윗부분이 뻥 뚫려있습니다.

지붕으로 쓰였던 폐슬레이트들은 바닥에 부서진 상태로 놓여있고요.

그나마 건물을 지탱했던 나무 구조물들은 가라앉아있는 모습입니다.

이곳은 원래 양계장으로 쓰였던 곳인데요.

주민들 대부분이 고령이다 보니 열에 아홉은 이렇게 방치돼있습니다.

정화조 시설도 낡아, 인근 강의 오염원이 된다는 지적이 수십 년째입니다.

아래쪽에 있는 관로가 형산강으로 통하는 겁니다.

형산강은 경주와 포항 시민의 취수원인데요.

그런데 비가 조금이라도 많이 내리게 되면 이곳 침전조의 물이 흘러내린다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가축 분뇨가 흘러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B씨/주민 : 여길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자연적으로 숨기게 되고. 그래도 어쩝니까. 우리가 정부의 시책에 따라야 될 수밖에 없고. 누구 말마따나 약한 사람이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그나마 이곳엔 최근 기대를 거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경주시와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지난달 현장을 찾아, 환경 개선을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손대기/경주시청 투자유치과 팀장 : 제일 안타까운 거 뭐 있나, 네 꼭지 210억이 나왔어요. 본예산이 안 된다면 내년 추경예산이라도 반영해달라고 권익위에서 중재를 해줬고…]

전국 최초로 한센병 치료병원이 들어서면서 한센인들이 정착한 전남 여수의 도성마을입니다.

역시 오갈 곳 없는 주민들은 생계를 위해 축산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방원빈/도성마을 이장 : 철조망 시키고(설치하고) 외부인들이 출입을 통제하고 또 안에 있는 사람도 밖으로 나가는 걸 통제하고 그러니까.]

마을이 고령화되면서 지난 여름, 마지막 두 집마저 폐업했습니다.

하지만 축사에 쓰였던 슬레이트와 악취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태훈/도성마을 재생위원회 위원장 : (축사) 슬레이트 철거를 전부 하려면 150억원이 들어가요. 단일 면적에서는 아마 전국에서 가장 클 거라고 생각해요. 그때는 발암물질인 줄 모르고 국가에서 장려하니까 그걸로 막사, 모든 막사를 지었는데…]

여수시도 최근에서야 여건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한센병 환자에 대한 강제 격리 규정은 57년 전 폐지됐습니다.

하지만 사회로부터의 고립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단 하루라도, 보통 사람들과 같은 날을 보낼 수 있기를 오늘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VJ : 서진형 / 인턴기자 : 김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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