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1993년 이건희 회장이 부인과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한 뒤 20여 년 만에 삼성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품질로 승부하자는 이 회장의 경영 철학이 오늘의 '글로벌 삼성'을 만들었다는 평가죠.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해 불법을 저질렀다는 의혹과 끊임없이 불거진 정치권과의 유착, 또 노동자 권리를 무시한 무노조 원칙으로 '삼성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지난 삶을 안태훈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1987년 삼성그룹 회장직을 이어받은 이건희 회장.
곧바로 '글로벌 삼성'을 선언합니다.
[이건희/삼성 회장 (1987년) : 미래 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입니다.]
당시 삼성그룹의 총 매출액은 9조 9천억 원.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해인 2014년에는 338조 6000억 원에 이릅니다.
삼성의 덩치를 약 34배로 키운 겁니다.
이건희 회장은 미래 산업을 먼저 챙겼습니다.
1992년 세계 최초로 64메가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한 삼성은 지금도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 1위입니다.
10여 년 전부터 급성장을 거듭한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삼성은 여전히 애플과 맞먹는 유일한 상대입니다.
삼성 변화의 시작은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임원 회의였습니다.
[이건희/삼성 회장 (1993년) : 극단적으로 얘기해 농담이 아니야. 마누라·자식 빼놓고 다 바꿔 봐. 소비자한테 돈 받고 물건 파는데 불량품 내놓고 하는 게 미안하지도 않으냐 이거야.]
이 같은 선언에도 품질 개선이 이뤄지지 않자, 2년 뒤 불량품을 모두 모아놓고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충격요법입니다.
[내가 땀 흘려 생산한 제품이 고객들로부터 외면당해 가치를 잃은 채…]
이건희 회장은 우리 경제성장을 이끈 큰 주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그림자도 있습니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에버랜드의 전환사채 헐값 발행으로 촉발된 논란에 이 회장은 고개를 숙이기도 했습니다.
[이건희/삼성 회장 (2008년) : 도의적이든 법적이든 제가 모두 책임을 지겠습니다. 경영진의 쇄신 문제도 깊이 생각해 볼 것입니다.]
삼성의 경영 철학처럼 얘기된 무노조 경영도 사회의 지탄을 받았고, 여러 차례 정경유착에 연루돼 삼성 공화국이라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화면제공 : 삼성전자·YTN)
(영상디자인 : 조영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