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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급한 서민 앞에…대형금융사 앞세워 연쇄 대출사기

입력 2020-10-07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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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돈이 급한 사람들 앞에 "좋은 조건으로 대출을 해주겠다"는 업체가 나타났습니다. 금융회사를 대신해서 고객을 모으는 '대출 모집 업체'였습니다. 대출을 신청했던 사람이 법원에 낸 확인서입니다. "코로나로 가게 일도 못 하고 은행에서도 대출이 어렵다고 해서 소문을 듣고 신청했다" 이후 신분증에 통장까지 넘겨줬는데 이 업체 사람들은 118억 원을 대출받은 뒤에 잠적해 버렸습니다.

먼저 정해성 기자입니다.

[기자]

경기도 남양주의 한 임대 아파트입니다.

신한캐피탈과 계약한 A 대출 모집업체는 "이 아파트에 전세 계약을 하면, 전세금의 95%인 2억9백만 원을 빌릴 수 있다"고 내세웠습니다.

여기에 생활안정자금 5000만 원까지 무이자로 대출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김모 씨/신한캐피탈 대출사기 피해자 : 생활 안정자금이라고 하니까. 정부에서 그런 걸 많이 진행하고 그러니까 의심할 여지는 없었습니다.]

업체는 아파트 전세 계약서와 신분증, 도장, 통장, 휴대전화 등을 요구했습니다.

대출 심사를 위해서라고 설명했습니다.

통장을 넘기는 건 현행법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신용도가 낮아 은행에선 대출이 쉽지 않고, 급하게 돈이 필요해 꼬드김에 넘어가 버렸다"고 했습니다.

[김모 씨/신한캐피탈 대출사기 피해자 : 그것도 못 받아 가면 바보다. 정말 이건 귀한, 귀한 찬스다 이래가지고.]

대출 모집업체 관계자들이 신한캐피탈 직원인 것처럼 위장한 정황도 있습니다.

[정모 씨/신한캐피탈 대출사기 피해자 : 신한캐피탈 (직원)이라고 소개를 해서. 신한캐피탈에서 내 서류를 가지고 가서 (대출) 심사를 한다고 해서 준 거예요.]

한 달 후 통장에 2억 원 넘는 돈이 입금됐습니다.

대출 계약서에 서명도 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피해자들의 휴대전화와 통장을 갖고 있던 대출모집업체는 이 돈을 자신들의 계좌로 빼돌렸습니다.

[김모 씨/신한캐피탈 대출사기 피해자 : 대출하려면 전화 와서 제가 대답을 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서명도 없고. 3분 만에 그 돈이 다 없어졌어요.]

취재 결과, 이 대출모집업체는 피해자들에게 얻은 정보로 '가짜 계약서'를 만든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임대아파트 전세 보증금을 다 낸 것처럼 계약서를 꾸며 신한캐피탈로부터 대출을 받은 겁니다.

전세 계약서, 대출 약정서도 모두 위조했습니다.

[정모 씨/신한캐피탈 대출사기 피해자 : 내 글씨가 아니죠. 이거, 난 쓴 사실도 없죠.]

[최모 씨/신한캐피탈 대출사기 피해자 : 가짜로 작성했는데. 그것도 날짜가 다 틀려. 서류 검사가 제대로 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돈을 내주냐.]

대출 모집업체를 관리하는 금융감독원의 규준입니다.

금융회사는 대출 전 중요 사항이 담긴 계약서를 본인에게 제공하고, 본인 확인 절차도 거쳐야 합니다.

하지만 신한캐피탈로부터 이 계약서를 받았다고 한 피해자는 없습니다.

[신한캐피탈 관계자 : 대출받으려고 요청했으면 본인인 줄 알지 그러면 이게 뭐 제3자라고 생각을 했겠습니까? 우리가 걔네(A 대출모집업체)를 관리할 수 있는 상황은 못 되죠.]

신한캐피탈은 이 사실을 지난 4월에서야 파악하고, 해당 대출모집업체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지금까지 피해 액수는 118억, 대출 건수는 57건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앵커]

취재진은 이 대출 모집 업체를 추적해 봤습니다. 그동안 회사의 이름을 바꿔가며 대출 사기를 벌여 왔습니다.

강희연 기자입니다.

[기자]

신한캐피탈을 상대로 사기를 벌인 대출 모집업체 A법인의 사무실을 찾아가 봤습니다.

[공유오피스 관계자 : 거의 오시질 않으세요. 2018년도 10월에 계약하시고 (내년) 4월 7일까지 계약이 되어 있어서 지금 쓰고 계신데…]

여러 회사가 같이 쓰는 공유 오피스로, 주소만 걸어두고 실체가 없는 사무실입니다.

2018년 11월에 세워진 이 법인의 사내이사는 정모 씨와 서모 씨입니다.

둘 다 이번 사건으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씨는 또 다른 대출모집업체 B법인의 등기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취재 결과 이 업체는 2018년부터 오릭스캐피탈을 상대로 대출 사기를 벌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수법은 신한캐피탈의 사례와 비슷합니다.

사기단은 살 집이 필요했던 피해자에게 접근해 전세자금대출을 받게 했습니다.

[피해자 : 저는 그 집에 살려고 했고. 부모님도 지금은 다 정리를 거의 하시고 (같이) 살려고 했는데.]

사기단은 이때 얻은 피해자의 정보로 서류를 위조해 오릭스캐피탈에서 2억900만 원을 대출한 뒤 사라졌습니다.

[한모 씨/오릭스캐피탈 대출사기 피해자 : (오릭스캐피탈에서) 갑자기 전화가 오더니 이중대출을 받으셨대요, 저한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오릭스캐피탈은 들어보지도 못했으니까.]

총 피해 규모는 3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사실상 사기단이 두 개의 법인을 이용해 이름만 바꿔가며 사기를 벌인 겁니다.

금융위와 금감원이 2017년 내놓은 대출모집인 규제 강화 방안입니다.

주주나 경영진은 다른 대출모집법인을 만들거나 임원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기단은 규정을 대놓고 어겼고, 금융당국이 이를 파악하지 못하는 사이 피해는 점점 불어났습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 : 아시겠지만 저희들이 대출모집인에 대한 직접적인 검사 감독권이 없거든요. (금융회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사항인 거고.]

금융당국이 대출모집업체와 계약하는 금융회사를 더 엄격하게 감독해야 한단 지적이 나옵니다.

[김득의/금융정의연대 대표 : 관리감독을 간접적으로 하더라도 그러면 금융회사들이 관리감독이 안 되었다는 거잖아요. 자기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종합감사 나가서 대체 뭘 봤는지 저는 모르겠어요.]

(영상그래픽 : 김정은 / 인턴기자 : 신귀혜·남예지 / VJ : 김정용·손건표 / 영상디자인 : 황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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