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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한국어 교수님"이라 불리지만…처우는 '단기 사무원'

입력 2020-10-07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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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모레(9일)가 '한글날'이지요. 우리말과 글을 배우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이 계속 많아지는데, 대학에 있는 한국어학당에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처우는 나아진 게 없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인정도 받지 못하고 기본급 1200만 원으로 버티는 이들을 밀착카메라 서효정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Q. 한국어를 왜 배우나요?

[엘리자베트/독일 : 한국 정치가 아주 참 재미있어요.]

[유석/중국 : 사실 저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하피자/브루나이 : 한류, K팝에 관심이 많아요.]

Q. 좋아하는 한국 가수 있나요?

[싸이]
[방탄소년단]
[악동뮤지션]
[위너]

[위 아래 위위 아래]

[하피자/브루나이 : NCT. NCT127 가장 좋아해요.]

Q. 누가 한국어를 가르쳐 주나요?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실바나/콜롬비아 : 이 예쁜 언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계세요.]

[엘리자베트/독일 : 칠판에 한글 글씨 멋지게 쓰는 게 좋아요.]

한 대학 강의실, 마스크를 쓴 남성이 모니터를 뚫어지게 봅니다.

[이창용/한국어학당 10년차 교원 : 학생들한테 제일 먼저 가르친 단어가 '마스크' '코로나바이러스' 평소 같으면 이런 걸 안 했겠죠.]

최근 상황에 맞게 교재를 다시 정리하느라 쉬는 날에도 바쁩니다.

[이창용/한국어학당 10년차 교원 : 이 문법을 생활에서 학생들이 직접 쓸 수 있으면 제일 좋으니까…] 

숙제 검사가 시작됩니다.

[이창용/한국어학당 10년차 교원 : 채 아니고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해요. 책들 자는 지구가 하고 실임들? (이게 무슨 말이지?) '미안합니다. 뭘 말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어요.']

격려로 마무리합니다.

[이창용/한국어학당 10년차 교원 : (그래도 항상 칭찬해 주시네요.) 네, 쓰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 아닌가요.]

외국인 학생을 가르치다 보니, 교실 밖에서의 상황을 돕기도 합니다.

자립을 돕거나 문화를 알려주기도 합니다.

[이수현/한국어학당 15년차 교원 : 선생님들이 갑자기 밤에 나가서 응급실에 데려다주고 돈이 없다고 하면 선생님이 대신 내주는 경우들도 생기게 되고 특별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누가 봐도 교수나 선생님입니다.

그런데 교실 밖을 나오면 다릅니다.

한국어학당 강의실 안입니다.

여기서는 강의하는 사람을 교수님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같은 건물에 있는 다른 방을 보면 이름이 또 다릅니다.

여기에선 이 사람들을 연구원이라고 부릅니다.

어학당이 생긴 지 50여 년, 학교에서의 신분이 계속 달라졌습니다.

[이창용/한국어학당 10년차 교원 : 처음 왔을 때는 총장 발령의 시간강사, 저보다 더 선배이신 선생님들이 연구원으로 계셨고 그러다가 시간강사가 없어지고 직원 신분만 남았죠.]

정부에선 이들을 강사로 보지 않고 있습니다.

대학의 정규 과정이 아니라는 게 이유입니다.

[이창용/한국어학당 10년차 교원 : 2000년만 해도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요' 하면 오히려 신문이나 잡지에 나갔죠. 새로운 직업 하나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과정에서 지위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지위를 놓고 싸우는 건 나은 편입니다.

대부분 계약직이라,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합니다.

최혜영 선생님은 4년간 일했습니다.

하지만 일하는 동안 3개월마다 학교와 계약을 새로 해야 했습니다.

[최혜영/한국어학당 4년차 교원 : 굉장히 부당하고 공포스럽죠. 왜냐하면 파리 목숨인 거잖아요. 재채용 과정이라는 게 학교가 해고라는 정당한 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 쓰는 수단이거든요.]

어떤 경우엔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해고 통보를 받기도 했습니다.

법원 판결로 복직했지만, 불이익을 받았습니다.

[최혜영/한국어학당 4년차 교원 : 강의를 주지 않아서 행정실에서 그냥 사무원 형태로 있었는데 윽박지르고 그러는 경험도 굉장히 많이 했고요.]

소송은 아직도 계속 중입니다.

서울시내 주요 대학들은 10주 과정에 1인당 적게는 100만 원에서 200만 원을 받고 있습니다.

외국인 학생 수에 따라 수입이 계속 늘어나는 겁니다.

하지만 어학당 선생님들에게 돌아오는 건 많지 않습니다.

이수현 선생님도 A대학에서 15년째 한국어를 가르칩니다.

시간당 받는 돈은 4만 원, 학교에서는 기본 강의 시간으로 주 8시간을 요구했습니다.

기본급이 연 1280만 원인 셈입니다.

[이수현/한국어학당 15년차 교원 : (학생 1인당) 170만원 정도를 내고 있는데, 한 반에 10명이에요. 그러면 1700만원을 선생님 두 명이 나눠 갖는 것처럼 생각하는 애들이 있더라고요. (제가 받는 월급 액수를) 비슷하게만 얘기해도 깜짝 놀라요. '이게 뭐냐' 이런 식으로…]

그럼에도 이들은 이 일을 계속할 거라고 말합니다.

[최혜영/한국어학당 4년차 교원 :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학생들의 눈빛이 읽혀요. 말로 하지 않아도…]

이들은 내일 정당한 대가와 지위 안정을 주장하기 위해 거리로 나옵니다.

한글은 외국인에게도 배우고 싶은 자랑스런 문화유산이 됐습니다.

하지만 정작 한글과 우리 '문화'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모습은 어떤가요.

제대로 된 시스템과 제도가 있어야 교육도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VJ : 최진 / 영상디자인 : 강아람·배장근 / 영상그래픽 : 한영주 / 인턴기자 : 김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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