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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못지켰다 자책감에'…눈물바다된 한 소방대원의 장례식

입력 2019-08-08 18:26

3년 전 태풍 '차바'때 함께 출동한 동료 잃어…"나 혼자 살아서 미안" 원망 속 세월 보내다
캐비넷 속에 숨진 동료 소방관 상의도 보관돼…울산 소방당국, 순직 승인 신청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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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못지켰다 자책감에'…눈물바다된 한 소방대원의 장례식

2016년 10월 울산을 할퀸 태풍 '차바'는 깊은 상흔을 남겼다.

그 어떤 피해보다도 소중한 인명이 3명이나 희생됐는데, 그중에는 소방대원인 고(故) 강기봉 소방교가 포함돼 있다.

당시 강 소방교는 "고립된 차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동료들과 함께 울주군 회야강변으로 출동했다가, 불어난 강물에 휩쓸렸다. 그는 이튿날 강 하류를 따라 약 3㎞ 떨어진 지점의 강기슭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강 소방교 영결식에서 조사(弔詞)를 낭독한 한 동료는 "마지막으로 명령한다. 강기봉 소방교는 귀소하라"며 응답을 들을 수 없는 명령을 하며 울부짖었다. 그의 죽음에 지역사회는 비탄에 빠졌다.

그러나 강 소방교의 희생을 슬픔이나 비통 정도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사고 당시 강 소방교와 함께 출동했던 A(40대 초반) 대원이다.

두 사람은 함께 전봇대를 붙들고 세차게 흐르는 강물을 버텼으나, 결국 힘이 다해 급류에 휩쓸렸다.

A씨는 약 2.4㎞를 떠내려가다 가까스로 물살에서 탈출했으나, 강 소방교는 끝내 수마(水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A씨는 자책했다.

동료이자 가장 아꼈던 동생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원망의 무게는, 단순히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정도였다.

사고 이후 꾸준히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으면서 죄책감의 덫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그런데도 A씨는 간호사 면허를 보유한 구급대원답게 앞장서서 구급대 업무에 임했고, 자신의 아픔을 티 내지 않으려 했다. 그의 동료들도 그런 모습들이 아픈 기억을 극복하는 과정이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A씨와 가까운 사람들은 걱정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평소 "나만 살아남아서 기봉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곤 했기 때문이다.

어린 자녀들과 아내가 있는 젊은 소방대원 A씨는 지난 5일 저녁 한 저수지 옆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통스러운 기억과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 삶을 등진 것으로 보인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A씨가 숨질만한 다른 이유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귀가하지 않았다는 신고를 받고 일대를 수색해서 A씨 시신을 발견한 사람들은, 그와 함께 근무하는 소방서 동료들이었다.

한 A씨 동료는 "현장 출동에 누구보다 솔선수범하고 밝은 표정이어서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인 줄로만 알았다"면서 "속이 곪을 대로 곪는 데도 혼자서 견뎌냈을 생각을 하니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A씨의 장례식장은 울산 소방관들의 눈물바다가 됐다.

A씨가 소속된 소방서와 울산소방본부는 A씨의 진료기록 등을 토대로 순직 승인을 신청할 예정이다.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접한 A씨 동료들은 그의 캐비닛에서 유품을 정리하다가 또다시 고개를 떨구며 먹먹한 가슴을 쳤다.

캐비닛 속 그의 옷가지 사이에는 3년 전 태풍 차바 때 숨진 동료, 강 소방교의 근무복 상의가 걸려 있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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